중국과 사회/중국의 심리

중국인의 인내

중은우시 2007. 5. 5. 15:54

글: 이편(李扁)

 

아침에 방송을 들었다. 중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이 적은 민족중 하나라고 한다. 가장 불평을 많이 하는 나라는 첫째가 스위스, 둘째가 영국, 셋째가 호주, 넷째가 카나다이다. 중국은 끝에서 세번째이다.

 

중국인은 왜 불평이 적은가? 왜 끝에서 세번째인가? 끝에서 첫번째와 두번째는 어느 나라인가? 이것은 정말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불평도 하나의 제품으로 본다면, 이해하기 쉬울지 모르겠다. 마치 원정광(袁正光) 교수가 말한 것처럼, 국민소질은 메커니즘과 시스템의 산물이라는데 아무런 의문이 없다. 불평도 마찬가지이다.

 

제품이 시장에서 유통될 수 없고, 팔아치울 수 없을때, 생산량은 감소하게 된다. 불평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되면, 너무 괴로워 창자가 끊어질 것처럼 되게 되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을 하여 모종의 자체조절작용을 통하여 괴로움과 불평의 생산규모를 감소시키게 된다.

 

중화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인내심이 강한 민족이다. "이것을 참는다면 무엇을 더 못참겠는가(是可忍, 孰不可忍). "인(忍)자의 머리에는 칼(刀)이 한 자루 있다" 왜, 잘 참는가? 그것은 만일 참지 못하게 되면 창자가 끊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머리가 잘리는 문제로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금니를 악물고 어금니까 깨지면 그것을 뱃속에 삼키면서 참아야 한다.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늦지 않다.

 

충효(忠孝)는 모두 참는 것이다. 진지무(陳志武)라는 사람이 <<우리의 불행을 직시하자>>라는 글에서 "금융의 각도에서 보면, 전형적인 중국인은 일평생 불행하다"라고 적었다. 왜 그런가?

 

"어릴때는 무조건적으로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한다; 젊을 때 가장 돈을 잘 쓸 수 있지만, 돈을 써서는 안된다; 나이가 들어도 역시 불행하다. 만일 두, 세명의 아이가 있으면, 부모를 모시는 문제는 분명히 서로 미루려고 할 것이다. 부모가 되어서 분명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왜 아직도 죽지 않았는가. 내가 왜 그들이 베풀어주는 것에 의지해서 살아야 하는가.' 그러면서 스스로가 짐이 된다고 느낄 것이고, 더 불행해질 것이다. 나는 모든 중국인을 얘기하거나, 모든 중국가정이 모두 불행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지 않은 범위의 불행을 직시할 용기가 있어야 하고, 다시 불행의 원인소재를 구명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효도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효도는 스스로 자진해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고, 일종의 미덕이다. 이것이 노인들의 유일한 양로방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재미있는 대비는, 많은 미국가정에서 부모와 아이는 왕왕 평등하게 교류하는 관계이다. 감정교류가 주된 관계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부모는 스스로 자기가 많은 경제적인 보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아이들을 자신의 노년의 보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금융상품조합을 통하여 자기의 미래의 여러가지 보장을 잘 어레인지 하고 있고, 아이들이 자기말을 시키는대로 듣도록 기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중국의 일부전통가정관념은 금융시장발전이 불완전함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나타난 것이다"

 

"당초, 신문화운동을 창제하고 연구하며 추진하는 학자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외부의 발달한 보험, 증권, 대출등의 금융상품을 모른다. 그들은 큰 소리로 '공자사상'을 타도하고, 국민들의 개성을 찾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자고 떠들지만, 결과적으로 실현되기 힘든 것들이다. 이치는 간단하다. '공자사상'이 유지시켜오던 숨어있는 금융계약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래를 어찌할 것인가? 그들은 어떻게 미래의 리스크를 회피할 것인가? 그렇게 많은 전통사회가 모두 집단주의문화를 숭상한 것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집단주의문화를 숭상하고 개인들이 자아를 잃어버려야만이, 인격화된 숨은 금융계약이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상품을 잘 개발하는 것이 아마도 '공자사상'을 타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진지무의 견해가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의 견해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컨센서스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컨센서스의 형성은 일정한 기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진지무는 예일대학 경영대학원 금융학의 종신교수이고, 청화대학 경제관리학원의 특별초빙교수이므로, 그의 견해는 현실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이다.

 

불평을 유지하는 전통적ㅇ니 국가와 민족은 불평을 금융상품으로 만들고, 사회보장의 참신한 메커니즘을 만드는데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불평을 없애는 방법은 바로 "참을 인(忍)자"를 받드는 것뿐이었다. 입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언론자유를 부르짖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혼자 속으로 불만을 삭이고 있고, 겉으로 하는 말은 70년대의 어조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언제인가, 불평이 순조롭게 금융상품으로 전화될 수 있고, 메커니즘과 시스템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이 불평은 비로소 생산력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