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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각애(羊角哀)와 좌백도(左伯桃): 결의형제(結義兄弟)이야기의 원조

글: 자귤(紫橘)​도원삼결의(桃園三結義)를 배울지언정, 와강일주향(瓦崗一炷香)은 배우지 말라. 유비, 관우, 장비가 결의형제를 맺은 후, 생사를 같이 하기로 하는 형제가 된다. 그들이 결의를 맺은 이야기는 후대에까지 칭송받고 있다. 이후 형제결배(結拜)이건 아니면 흑방결배이건 모두 도원결의의 여파라 할 수 있다. 다만 실제로, 유관장의 도원결의 이야기는 명(明)나라때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명나라이전에 형제간의 결의를 맺을 때는 양각애와 좌백도를 따랐다. 이 두 사람 간에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별로 유명하지 않은 형제정의​양각애, 좌백도의 이야기는 정사(正史)에 실려 있지 않다. 두 사람의 이야기의 출처는 서한시대 유향(劉向)의 이다. 아쉽게도 원문은 송나라때 이미 유실되었고, 오늘날 볼..

원세개(袁世凱) 칭제(稱帝) 막후의 몇몇 추동자들...

글: 소전유(蘇全有)​1915년 12월 12일, 원세개는 소위 민중권진서(民衆勸進書)를 받아들여, 등극을 선포한다. 역사에서 홍헌황제(洪憲皇帝)라고 불리게 된다. 1916년 3월 22일, 원세개는 어쩔 수 없이 하야한다. 이렇게 83일간의 황제생활은 끝이 난다. 그리고 6월 6일 요독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원세개는 모략이 비범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왜 그가 천하의 금기를 어기고 역사의 조류를 거슬러 황제에 올랐을까? 여기에는 원세개 본인의 원인외에 나머지 몇 사람이 막후에서 부추긴 것도 있었다. 그 요소를 분석해보지 않을 수 없다. ​원세개는 임종전에 힘들여 네 글자를 내뱉는다: "그가 나를 해쳤다(他害了我)". 그렇다면 여기의 "그(他)"는 도대체 누구일까?​원씨가족들은 원세개가 죽기 전에 말한 "그가 ..

당덕종(唐德宗): 큰 일을 하려다, 큰 일을 당하다

글: 최애역사(最愛歷史)​안사의 난(安史之亂)이후, 당나라는 이미 "부고모갈(府庫耗竭, 국고를 소모하여 고갈되다)", "금군미약(禁軍微弱)"의 곤경에 빠진다. 그러나, 제오기(第五琦), 유안(劉晏), 양염(楊炎)등 이재(理財)대가들의 노력을 거쳐, 당덕종 즉위초기인 건중원년(780년)의 국고세수는 이미 1305만관곡(貫斛)에 이른다. 정상적인 세입외에 매년 700만관곡에 이르는 염리(鹽利)세수도 있었다. ​그의 부친 당대종(唐代宗)의 즉위초기와 비교하면 국고수입은 몇배로 늘었다.​이런 자금은 당덕종의 허리를 튼튼하게 만들었고, 그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삭번(削藩)"전쟁을 시작한다.​그는 큰 일을 하고자 했다(大幹一場). 그러나 역사는 오히려 이를 피동문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1​안사의 난 이후, 당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