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 1,500년의 "공백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글: 배포여행하(背包旅行呀)혹시 알고 있는가? 중국역사에 1,500년의 "공백기"가 있다는 것을. 아무런 역사기록도 없어서,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중화오천년역사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중국인에 있어서, 삼황오제(三皇五帝)부터 지금까지 5천년의 중화문명은 골수에 새겨진 문화유전자이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근대이래 역사학을 연구하는 서방인들은 중국인들에게 하나의 관점을 전해주었으니, 바로 "신사시대(信史時代)"라는 것이다. 그 의미는 사료기재가 확실한 역사시대를 말한다. 사료기재가 없는 시대는 "전설시대(傳說時代)"이다. 만일 이런 견해대로라면, 중국역사에는 확실히 최소한 1,500년의 '공백기'가 있다.중국에서 완전하고 정확한 연대기록이 있는 것은 기원전841년부터이다. 이해..
2025. 6. 10.
"삼가분진(三家分晋)"후 진(晋)의 국군(國君)은 어떻게 되었을까?
글: 세월유흔(歲月有痕)중국고대역서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진(晋)나라는 중요한 제후국이었다. 일찌기 춘추시기에 초(楚)나라와 쟁패해서 패주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진나라는 '삼가분진'이라는 역사사건을 거치면서 한(韓), 위(魏), 조(趙)의 삼가열경(三家列卿)이 나누어갖고, 진나라는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난다.그렇다면, "삼가분진"후 진나라의 국군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들의 최후는 어떠했을까? 진(晋)의 휘황과 쇠락진나라는 주(周)의 제후국중 하나이고, 최초의 국군인 당숙우(唐叔虞)는 주무왕(周武王) 희발(姬發)의 아들이고, 주성왕(周成王) 희송(姬誦)의 동생으로, "희성진씨(姬姓晋氏)"이다. 춘추시기 진은 초와 천하를 두고 쟁패했고, 당시 역사의 메인스트림이 된다...
2024.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