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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1333

동문병(董文炳): 쿠빌라이가 형님으로 부른 한족... 글: 자귤(紫橘)​고등학교 교과서에 따르면 원나라는 4등인제도(四等人制度)를 실행했다. 그러나 실제상 이 4등인이 각족의 고위층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고, 이는 일반인에 대한 제한이었다. 그리고 이 사등인제가 정식의 제도였는지 아닌지에 대하여도 의문이 있다. 1등인인 몽골인의 하층은 모두 착취를 당했고, 그들도 원나라에 원한을 가졌다. 그래서 명나라초기의 삼천영(三千营), 대내()의 등양사위(腾骧四卫)는 모두 몽골인이었고, 매번 초원을 토벌할 때 그들이 가장 앞장섰다. 마찬가지로 3등인 한인의 고위층도 호화사치스럽게 살았고, 원나라황제의 신임과 존경을 받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쿠빌라이가 '동대가(董大哥, 대가는 큰형님이라는 의미임)'로 부른 동문병이다.​농민에서 관료로​동문병의 동씨집안.. 2024. 6. 20.
한선제(汉宣帝) 유순(刘询): 중국역사상 최초로 감옥에 갇혔던 황제 글: 조심방(赵心放) 한선제 유순은 서한 중기의 ‘중흥’군주이다. 그는 친정후 관료사회를 정돈하고, 세금을 경감하며, 처벌을 감경했으며, 효과적으로 생산을 발전시켰고, 서역도호부를 설치하였다. 대내적으로는 한무제 말기의 사회경제가 쇠락한 국면을 되살려냈고, 대외적으로 한왕조와 주변각족과의 관계를 발전시켰다. 한소제, 한선제 시기에 사회가 안정되고, 국세가 흥성한 것을 두고 이 시기를 후대인들은 “소선중흥(昭宣中兴)”이라 부른다.​1. 역사상 최초로 감옥에 갇혔던 황제​유순은 한무제(汉武帝) 유철(刘彻)의 증손자이고, 위태자(卫太子) 유거(刘据)의 손자이다. 유거는 고혹지화(蛊惑之祸)를 당해 일가족이 멸문지화를 당한다. 성문에 불이 나면 그 재앙은 연못의 물고기에도 미치는 법이다. 태어난지 수개월밖에 되지.. 2024. 6. 12.
조자양(赵紫阳, 자오쯔양)은 왜 권력투쟁에서 실패했는가? 글: 왕단(王丹)​올해는 "6.4" 35주년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다보면, 여하한 회고나 반성도 모두 별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6.4"사건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35년전에 발생했던 많은 일들은 우리가 오늘날의 중국정치를 정확하게 판단하는데 있어서, 여전히 중요하고 신선한 참고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조자양은 왜 권력투쟁에서 실패했을까. 이는 지금까지도 우리가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이 문제에 대하여, 과거 35년간, "6.4"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다. 주로 다음의 두 가지이다:​첫째, 조자양은 학생운동초기의 중요한 시기에 베이징에 남아서 국면을 주재하지 않고, 오히려 원래의 일정에 따라 북한을 국사방문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2024. 6. 3.
주순수(朱舜水): 일본의 근대화에 영향을 끼친 "명나라유민(明的遗民)" 글: 자귤(紫橘)주순수가 일본에서 학문을 가르친 곳노신은 그의 藤野先生)>에서 일본의 중국인 주순수(朱舜水)를 언급하면서, 그를 "명나라의 유민(明的遗民)"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의 일본 이바라기현(茨城县, 역사상의 미토번(水户藩))에는 주순수의 동상이 있다. 일본에 망명한 중국인이 어떻게 하여 이렇게 큰 영향력을 지니고,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기념하고 있을까? 그것은 주순수가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维新)의 씨를 뿌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주순수의 원래 이름은 주지유(朱之瑜)로, 절강여요(浙江余姚)사람이고 명나라말기 5대학자중 한명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후 스스로의 호를 '순수(舜水)'라 하였는데, 이는 고향의 강을 잊지 않고 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숭정11년(1638년), 주순수는 문무가 모두 뛰어.. 2024. 5. 30.
진옥성(陈玉成): 스스로 "총재(总裁)"라 칭한 태평천국의 장수 글: 설역사적묘소저(说历史的喵小姐)​진옥성은 태평천국 후기의 주요지도자중 한명이다. 그와 이수성(李秀成)은 후기에 가장 능력있는 두 명의 군사지휘관이었다.​진옥성은 부대를 엄정하게 지휘했으며, 용맹하고 모략도 있었다. 가장 뛰어난 점은 정면으로 포위공격하면서, 별도로 일부 병력을 보내어 기습을 하며 퇴로를 차단한 후 다시 되돌아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태평천국내에서 그에 대한 칭호는 "삼십검점회마창(三十检点回马枪)"이었다. ​진옥성이 태평군에 가담할 때는 겨우 15살이었다. 무창(武昌)전투때 그는 가장 먼저 무창성에 올라, 최고의 공을 세운다.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장수의 반열에 들어가게 된다.​"천경사변(天京事变)"후, 태평군은 조직을 재편하게 되는데, 오군주장제(五军主将制)로 돌.. 2024. 5. 30.
문강(文强): 모택동의 사촌동생은 왜 국민당의 특무가 되었는가? 글: 유혜빙(游慧冰)​모택동의 사촌동생인 문강(文强)은 전설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그는 일찌기 중국공산당의 중요간부였고, 북벌전쟁, 8.1남창의거에도 참가했으며, 사천성위상위 겸 군위서기, 천동특위서기를 맡았었다. 나중에 공산당을 떠나 국민당 '군통'의 특무와 '국군'의 장교가 되어 회해전투에 참가했을 때 인민해방군에 포로로 잡혀, 감옥에서 26년간 지내다가 1975년에 비로소 특사를 받아 석방된다.​출옥후에 문강은 제6기, 네7기 전국정협위원, 민혁중앙 감찰위원, 황포군관학교 동문회이사등의 직위를 지낸다. 그는 광범위한 인맥을 이용하여 해협양안의 교류업무를 전개했고,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해 공헌했다. 그는 등소평을 존경하여, "나는 라는 책을 한권 쓰겠다"고까지 한다. 아쉽게도 그가 글을 쓰기.. 2024. 5. 28.
미방(糜芳)은 왜 싸우지도 않고 오(吴)에 투항했을까? 글: 지도제(地图帝)​219년, 관우(关羽)가 양양(襄阳), 번성(樊城) 및 한수(汉水) 일선에서 조인(曹仁), 서황(徐晃)과 대치하고 있을 때, 동오는 돌연 형주의 공안(公安), 강릉(江陵)을 기습한다.​동오쪽에서 여몽(吕蒙)은 이만여 인마를 거느리고 육구(陆口)에 주둔하여 관우의 절반 형주를 노리고 있었다. 몇해동안 손권(孙权)과 여몽은 계속하여 관우에게 암중으로 수를 쓰고 있었다.​손권은 유비(刘备)와 관우를 이간질하기 위해 사람을 강릉으로 보내어, 관우에게 정략결혼을 제안한다. 즉 손권의 아들이 관우의 딸을 취하겠다고 한 것이다.​유비는 일찌기 손권의 여동생 손씨를 취한 바 있고, 나중에 손부인은 동오로 도망쳐 돌아간다. 그리하여 유비와 손권간의 정략결혼은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만일 관우의 딸이 .. 2024. 5. 10.
우문화급(宇文化及): 수양제(隋炀帝)를 죽인 인물의 일생 글: 사설신어(史说新语)​고대에 황권은 지고무상으로 황제는 천하의 최고통치자일뿐아니라, 사람들이 눈독을 들이는 무수한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무수한 사람들은 황위를 차지하기를 꿈속에서까지 추구하고, 심지어 목숨을 댓가로 내놓기도 한다. 모든 왕조에서는 황위를 둘러싼 명쟁암투가 벌어지고, 형제간에 반목하고, 부자간이 원수로 되는 비극이 무수히 발생했다.​풍운이 일어나는 궁정에서, 이런 인물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황제의 곁을 지켰고, 황제의 신뢰를 깊이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내심의 욕망은 계속 팽창했다. 그는 더 이상 단지 황제의 신하로 지내는데 만족하지 못했고, 더 많은 권력과 지위를 갖기를 갈망했다.​마침내, 어느 어두운 밤, 그는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계획을 실행한다. 그.. 2024. 5. 3.
차이치(蔡奇): 중추를 장악했지만, 이빨없는 호랑이이다. 글: 호해(胡亥)​해외매체에서는 차이치를 "창위독공(厂卫督公)"이라고 불렀다. 그 뜻은 동창(东厂)의 우두머리라는 것인데, 이는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동창은 명나라때의 정보기구이고, 특무조직이며, 조정의 응견(鹰犬)이다. 차이치는 동창을 주관할 뿐아니라, 동시에 천하의 온갖 일을 관리감독하며, 중공의 일상사무도 처리한다. 그렇다면 '창공(厂公)'이 아니다. 오히려 사례병필태감(司礼监秉笔太监)에 가깝다. 황상을 도와 세상만물을 처리하며 재상의 권한을 대행하는 직위인.​저명한 중국문제전문가인 가오신(高新) 교수는 일찌기 아시아자유논단에 글을 올려, 시진핑이 왜 차이치를 신임하는지를 기술했다. 그는 푸젠(​福建)에서 저장(浙江) 그리고 다시 베이징(北京)까지 20여년에 걸친 "사적인 우정"외에 더욱 중요한.. 2024. 4. 29.
원소(袁绍) 휘하의 팔대맹장(八大猛将) 글: 사서능헌각(史书凌轩阁)​8. 순우경(淳于琼)​순우경. 자는 중간(仲简)이고, 영천(颍川)이다. 순우경은 성격이 강맹하고 뜻이 커서 조정으로부터 높이 평가받는다. 일찌기 효렴방정으로 서원팔교위(西园八校尉)가 되어 조정의 귀족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때의 순우경은 젊어서 성취를 거두고 큰 권력을 장악했으며, 명성도 드높았다.​순우경은 조조와 교분이 깊었다. 두 사람은 항상 함께 모였으며, 집안에서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교외에서 활쏘기를 함께 하기도 했다. 이는 모두 두 사람 간에는 깊은 우정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만 시국이 바뀌면서 동한의 난세가 펼쳐지고, 순우경은 점차 몰락한다. 그는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조정은 그런 그를 싫어했고, 황제의 총애를 잃는다. 그러나, 조조는 .. 2024.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