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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1355

홍수전(洪秀全)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글: 조대부화실(赵大夫话室)진시황시대부터, 2천여년의 중국대지에서, 압박과 폭정에 반항하는 걸출한 인물은 계속하여 출현했다. 영향력으로 따지면, 홍수전은 이들 걸출한 인물들 중에서도 두드러진 인물이라 할 것이다.어렸을 때 받은 교육과는 달리, 최근 들어 듣는 홍수전은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쓰레기라는 것이다. 학식도 없으면서 굳이 과거에 계속 응시하다가 계속하여 떨어졌다. 30살이 될 때까지 홍수전은 수재라는 명칭도 얻지 못했다. 비록 '배상제회(拜上帝会)'를 창립했고, 기본적인 교의(教义)는 그가 쓴 것이지만, 태평천국의 전도조직업무는 모두 풍운산(冯云山)이 했으며, 천경(天京)을 점령할 때까지, 지휘부를 이끈 것은 양수청(杨秀清)이었다. 홍수전은 그저 명목상의 교주였다. 그는 음험.. 2024. 5. 31.
등소평(邓小平)이 쫓아낸 15명의 "국가지도자" 글: 간중국(看中国)​'문혁'이 끝난 후, 등소평은 중공의 제2대지도자에 올랐다. 모택동의 옛측근, '자산계급자유화'에 반대하거나, '6.4'기간동안 전후로 15명의 중공 '국가지도자'를 중앙주석, 중앙군위주석, 국무원총리, 중앙총서기, 중앙부주석, 중앙정치국상위, 중앙정치국위원, 중앙서기처서기, 국무원부총리, 전인대부위원장등의 자리에서 쫓아냈다. 모두 면직, 사직, 퇴직등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화국봉(​华国锋): 중공중앙주석, 중앙군위주석, 국무원총리​화국봉은 중공 호남 상음현, 상담현위서기를 지냈고, 나중에 호남성위서기로 승진한다. 문혁때 승진을 거듭하여 전후로 중공9대중앙위원, 중공10대중앙정치국위원, 국무원부총리 겸 공안부장을 맡는다. 모택동이 죽기 전에 화국봉을 중공중앙제1부주.. 2024. 5. 29.
시진핑의 양대호법(两大护法), 삼대금강(三大金刚), 그리고 한명의 팔부순안(八府巡按) 글: 호해(胡亥)​중국의 장후시대(江胡时代, 장쩌민, 후진타오시대)의 "구룡희주(九龙戏珠, 아홉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놀다. 아홉마리의 용은 9명의 정치국상위, 여의주는 권력을 의미함)", "칠룡희주(七龙戏珠)"를 얘기하면 해외여론은 그것을 집단지도체제의 상징이라고 여긴다. 그러면서 이를 중공이 정치체제방면에서 '진보'한 상징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이는 장쩌민이 조직의 인원수에서의 우세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억누르며 대권독점을 확보하려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구룡희주"는 집단지도체제가 아니고, 각각 자신의 업무를 책임지거나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것도 아니다. 더더구나 핵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 본질은 허수아비 후진타오를 집단으로 압박하며, 포위공격태세.. 2024. 5. 24.
옹정제(雍正帝)의 죽음 글: 무풍각기념(无风却起念)​1735년 8월 20일, 대청제국의 옹정제가 돌연 병으로 쓰러지고, 3일후 총총 세상을 떠난다. 영명하고 냉혹한 것으로 알려진 이 황제의 사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왜 그의 죽음에 대하여 에서는 자세히 기록하지 않고, 그저 간단한 몇마디만 남겼을까?​옹정제의 병이 발발하고나서 붕어할 때까지 짧으 3일동안 자금성의 안팎은 혼란에 휩싸인다. 시종 권력의 최고봉에서 정국을 조종하던 옹정제가 어찌 돌연 병사하게 되었을까, 그것도 이렇게 빠르게? 황제의 돌연한 사망은 어느 왕조에서이건 작은 일이 아니다. 세부적인 사항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궁중시위의 말에 따르면, 옹정제는 병이 발발하기 전에 조정업무로 계속 바빴다. 비록 몸이 피로한 상태이긴 하지만 여.. 2024. 5. 21.
모택동의 진짜 유언은 무엇이었을까? 글: 섭영렬(叶永烈)1976년 5월의 모택동비록 모택동이 이미 화국봉을 중공중앙제1부주석으로 지정했지만, 왕홍문은 화국봉을 무시했다. 그가 보기에 화국봉은 그들의 적수가 되기에 등소평보다 훨씬 약했기 때문이다.​1976년 7월, 왕홍문은 다시 그의 비서 소목(萧木)에게 그를 위해 전면적인 발언개요를 초안하라고 지시한다.​반년전, 왕홍문은 주은래(周恩来)가 사망한 후 자신이 중앙업무를 주재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비서 소목에게 전면적인 발언개요를 작성하라고 하여, 소목은 설날연휴마저도 쉬지를 못했었다.​이번에, 왕홍문은 다시 한번 소목에게 고생을 하라고 시킨 것이다. 그것은 그가 강청, 장춘교, 요문원과 상의한 내용이다. 왜냐하면 그가 부주석이었기 때문에 그가 나서서 초안을 준비하는 것이었다.​이 '.. 2024. 5. 9.
"중경담판(重慶談判)": 제2의 '홍문연(鴻門宴)', 장개석은 왜 모택동을 풀어주었을까? 글: 조대부화실(趙大夫話室)​초한상(楚漢相爭)에서 항우(項羽)는 원래 절대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유방(劉邦)을 죽여버릴지 말지를 결정하는 문제를 두고 항우는 무척 망설인다. 초나라 귀족출신인 그는 내심으로 이 건달을 멸시하고 있었다. 그는 유방이 지금 거둔 성취는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여긴 것이다. 홍문연에서 항우는 유방을 풀어준다. 그러나 결국 그는 천하를 잃고, 패왕별희(覇王別姬)하고, 오강에서 자결하게 된다. 항우의 실수로 대한(大漢)강산은 4백년간 지속되고, 세계최대의 민족인 한민족(漢民族)을 형성하게 된다. 홍문연때, 항우는 꿈에도 이런 점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2천년이 지난 후, 대일항전이 끝나고, 국공(國共)간에는 '홍문연'과 유사한 중경담판이 벌어진다. 장개석은 원래 모택동.. 2024. 5. 7.
황팔자(皇八子) 윤사(胤禩)가 황사자(皇四子) 윤진(胤禛)에게 패배한 주요 원인은...? 글: 양각풍(杨角风) ​ 를 본 사람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강희제(康熙帝)가 임종때 황위를 황사자 윤진에게 넘겨주었으며, 이로 인하여 황팔자 윤사는 수십년간 쏟아부었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을. ​ 비록 그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였고, 사전에 상세한 준비와 배치를 해놓았다. 그러나 상대방의 수준이 너무 뛰어났고, 자신쪽은 백밀일소(百密一疏)가 있었다. 그리하여 황팔자당의 핵심인원들은 장정옥(张廷玉)이 창춘원(畅春园)을 통제하면서 소식이 바깥으로 전할 수 없게 했다. 그리고 황상을 대표하는 금패영전(金牌令箭)이 소리소문없이 황십삼자(皇十三子) 윤상(​胤祥)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고, 강희제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달되기 전의 시간차를 이용하여 풍대대영(丰台大营)을 장악했다. ​ 이제, 상황은 정리되었.. 2024. 4. 22.
주은래(周恩来)의 세 명의 양녀 작자: 미상 ​ 주은래의 큰조카딸이자 전국정협위원을 역임한 주병덕(周秉德)이 쓴 의 157페이지를 보면 등영초(邓颖超)가 문혁기간 손유세(孙维世)가 박해받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주병덕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병덕아, 너는 알고 있느냐? 우리의 양녀가 되면 모두 팔자가 사납구나. 사람들은 나와 백부가 양자가 몇명이고 양녀가 몇명이고 말들을 많이 하는데. 그런 일은 없다. 사실 우리가 진정 받아들인 것은 3명의 양녀뿐이다. 한명은 섭정(叶挺)장군의 큰딸 섭양미(叶扬眉)인데, 어린 나이에 부친과 비행기사고로 죽어버렸다. 하나는 연안에 있을 때 큰 비가 내려서 요동이 무너지면서, 그 안에서 깔려 죽어버렸다. 오직 손유세만이 우리와 오랜 시간을 같이 하면서 서로 감정이 깊었는데, 지금 다시 참혹하게 .. 2024. 4. 18.
유비(刘备)의 부인은 10명이 넘었을 것이다. 글: 역사대작회 ​ 유비에게는 감부인(甘夫人), 미부인(糜夫人), 손부인(孙夫人)과 오황후(吴皇后) 네명의 부인이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료의 기재를 보면, 유비의 부인은 이 네명만이 아니다. 칭제이후에 몇명의 비빈을 들였는지에 대하여는 정사에서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아 통계를 내기 어렵지만, 여기에서는 유비가 칭제이전에 몇명의 부인을 거느렸는지를 알아보자. 네 명은 훨씬 넘고,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열명은 넘을 것같다. 아래에서 차례로 살펴보겠다. ​ : "선주(先主, 유비를 가리킴)의 감황후. 패(沛)의 사람이다. 선주가 예주(豫州)에 있을 때, 소패(小沛)에 살았는데, 그때 첩으로 거두었다. 선주는 적실(嫡室)이 여러번 죽어서, 그녀가 항상 집안일을 관장했다(常摄内事)" ​ : "여포.. 2024. 4. 12.
시진핑의 "주체곤경(朱棣困局)" 글: 규양(葵阳) ​ 여러해전에 나진우(罗振宇)가 '독수독과'의 이슈를 얘기한 바 있다. 그가 인용한 것은 조카로부터 권력을 찬탈한 주체(영락제)는 일생동안 집권합법성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그후 폭력적이고 냉혈광포하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 나진우가 얻어낸 결론은 이러하다. 나쁜 짓을 한 이후의 보응은 하늘의 천벌이나 다른 사람의 보복일 필요는 없고, 스스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심리적으로 뒤틀어질 가능성이 많다. 이런 뒤틀어짐은 당사자로 하여금 더욱 많은 나쁜 짓을 하게 하고, 더더구나 계속하여 해결될 수 없는 싸움을 벌이면서, 스스로의 두려움과 괴로움을 감추려고 하게 되는 것이다. ​ 명나라때 주체가 권력을 잡은 과정에 대하여는 이미 정설이 나와 있다. 그가 아무리 황실의 순수한 혈통이라 하더라.. 2024.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