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방체포" 소식은 어떻게 민간에 전파되었을까?
글: 풍수원(楓樹苑)1976년 10월 6일 저녁 8시부터 8시 30분까지, 강청(江靑), 장춘교(張春橋), 요문원(姚文元), 왕홍문(王洪文)과 모원신(毛遠新)이 화국봉(華國鋒), 섭검영(葉劍英)을 비롯한 당중앙에 의해 "격리심사"를 받게 된다. 당중앙은 국면을 안정시키기 위해, 이후 반달여동안, 점진적으로 당의 고위층 내부에 "사인방이 타도되었다"는 소식을 전달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미디어에서 공개적으로 관련소식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다만, "항간의 소문"은 신속히 전국으로 퍼져간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처음에는 놀라고, 의심하다가, 그후에는 기뻐한다. 전달: 고위층에서 하위층으로, 당내에서 당외로...10월 6일 저녁 10시경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북경과 외지의 중공중앙 정치국..
2025. 6. 9.
문혁(文革)시기 북경홍위병의 "소혼단(小混蛋)"사건
글: 미학도(米鶴都)2014/08/27(1968년 여름, 문혁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북경에서 "소혼단사건"이 벌어진다. 여러 해동안 왕삭(王朔)의 소설, TV드라마 등 문예작품의 소재가 되었고, 이 사건은 이미 강호의 전설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여러가지 설이 돌고 있다. 제662기에 실린 미학도의 글은 이 사건의 내력을 파악하게 해준다)"이 일의 앞뒤 사정, 특히 마지막 장면은 여기에 앉아 있는 당사자들만이 분명히 말해줄 수 있다. 나머지 여러 소문은 대부분 날조된 것이다." 조도도(曹都都)가 필자에게 해준 말이다.2008년부터 2013년까지 사이에, 필자는 여러번 사건의 핵심당사자 왕남생(王南生), 중요참여자 유호생(劉滬生), 강소로(江小路), 목격자 왕기예(王冀豫), 조도도등을 인터뷰했다..
2024.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