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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후)51

등소평 vs 화국봉: 20일간의 싸움... 글: 섭영열(葉永烈)​1978년 5월 11일​​​는 이렇게 평가한다: 1978년 5월 11일, 에 필명으로 발표된 글이 실린다. 제목은 이며, 이 문장은 등소평을 옹호하는 역량이 두번째로 내는 소리가 된다.​이 글의 작자인 호복명(胡福明)은 당시 남경대학 철학과 교수이고, 중공당원이다. 나중에 그가 말한 바에 따르면, 1977년 가을 그가 이 글을 발표할 때, '양개범시(兩個凡是)'에 반대한 것은 완전히 그가 스스로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만일 '양개범시'같은 교조적인 입장을 반대하지 않으면 등소평이 새로 권력을 장악할 희망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라는 글은 '양개범시'를 겨냥하여 썼다는 것이 명확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문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양개범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때.. 2025. 6. 20.
한국전쟁때 중국을 선택한 21명 미군포로의 운명은...? 글: 지식도학잡료(知識都學雜了)​1953년말에서 1954년초의 겨울에 21명의 한국전쟁때 중국군대에 포로로 잡힌 미군전쟁포로가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중국에 거주하기를 선택했다. 그들의 행위는 당시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많은 미국인들은 그들을 배신자라고 비난했으며, 그들의 가족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반세기 이상 흘렀는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이들 전쟁포로는 대부분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윌슨은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는데, 집안에 아이가 8명이었고, 그가 장남이었다. 현지인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거나 혹은 현지의 제분공장에서 일했다.​그뿐 아니라, 이들 21명 중에서 대다수는 부모가 이혼한 결손가정 출신이다. 당시에는 이혼이 그다지 흔하지 않았는데, 이런 가정배경은 그들의 성격.. 2025. 6. 11.
"사인방체포" 소식은 어떻게 민간에 전파되었을까? 글: 풍수원(楓樹苑)​1976년 10월 6일 저녁 8시부터 8시 30분까지, 강청(江靑), 장춘교(張春橋), 요문원(姚文元), 왕홍문(王洪文)과 모원신(毛遠新)이 화국봉(華國鋒), 섭검영(葉劍英)을 비롯한 당중앙에 의해 "격리심사"를 받게 된다. 당중앙은 국면을 안정시키기 위해, 이후 반달여동안, 점진적으로 당의 고위층 내부에 "사인방이 타도되었다"는 소식을 전달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미디어에서 공개적으로 관련소식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다만, "항간의 소문"은 신속히 전국으로 퍼져간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처음에는 놀라고, 의심하다가, 그후에는 기뻐한다. ​전달: 고위층에서 하위층으로, 당내에서 당외로...​​10월 6일 저녁 10시경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북경과 외지의 중공중앙 정치국.. 2025. 6. 9.
신중국 건립후의 3대 치욕사건 글: 열정적두호리(熱情的逗狐狸)​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지 70여년이 흘렀다. 중국은 가난하기 그지없는 나라였으나, 지금은 세계무대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 과정에서 휘황도 있었고, 굴욕도 있었다. 특히 개혁개방이후, 3차례의 사건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잊을 수가 없다. 그 세 건의 사건은 은하호사건(銀河號事件), 베오그라드대사관피폭사건, 남해비행기충돌사건이다. 이는 단순한 외교분쟁이 아니고, 말그대로 국치이다. 나라가 약하면 얻어맞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라가 강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는 너의 머리 위에 걸터앉아 마음대로 할 것이다. 여기에서 이 세 건의 사건에 대하여 전인후과를 알아보기로 하자.​은하호사건ㅇ먼저 은하호사건을 보자. 이 사건은 1993년에 발생했다. 주인공은 "은하호"라고 부르는 중.. 2025. 3. 26.
문혁의 비극: "인흘인(人吃人)" 글: 임배서(林培瑞) 1996년 12월호​2년전 중국의 작가 정이(鄭義)는 타이완에서 책을 한권 출간했다. 제목은 이다. 책에서는 문혁시기 광시(廣西)에서 발생한 식인현상을 묘사하고 분석했다. 출판이후 해외중국인들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났으며, 지난 달에는 미국에서 영문번역본이 출판되었다.​중국인과 중국에 관심있는 외국인은 일찌감치 문혁에 관한 잔인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왔고, 많이 알고 있다. 더욱 잔인한 이야기는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당국이 말하지 못하게 할 뿐만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이야기 자치게 나무나 추악하여, 말로 한다는 것 자체가 문명언어의 기본적인 수준에 위반하기 때문이다.​다만, 사람들은 항상 일종의 상반된 느낌이 있다. 만일 우리가 인류의 가장 추악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2025. 1. 22.
문혁(文革)시기 북경홍위병의 "소혼단(小混蛋)"사건 글: 미학도(米鶴都)2014/08/27​(1968년 여름, 문혁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북경에서 "소혼단사건"이 벌어진다. 여러 해동안 왕삭(王朔)의 소설, TV드라마 등 문예작품의 소재가 되었고, 이 사건은 이미 강호의 전설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여러가지 설이 돌고 있다. 제662기에 실린 미학도의 글은 이 사건의 내력을 파악하게 해준다)​"이 일의 앞뒤 사정, 특히 마지막 장면은 여기에 앉아 있는 당사자들만이 분명히 말해줄 수 있다. 나머지 여러 소문은 대부분 날조된 것이다." 조도도(曹都都)가 필자에게 해준 말이다.​2008년부터 2013년까지 사이에, 필자는 여러번 사건의 핵심당사자 왕남생(王南生), 중요참여자 유호생(劉滬生), 강소로(江小路), 목격자 왕기예(王冀豫), 조도도등을 인터뷰했다.. 2024.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