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원지쟁(府院之爭): 단기서(段祺瑞) vs 여원홍(黎元洪)
글: 비정상역사연구실(非正常歷史硏究室)1916년 6월 6일, 원세개(袁世凱)가 병사하고, 육군총장(陸軍總長), 단기서(段祺瑞)는 부총통(副總統) 여원홍(黎元洪)을 후임 대총통(大總統)에 추천했고, 여원홍은 그 보답으로, 단기서를 국무총리(國務總理)에 임명했다. 여원홍은 무창의거(武昌義擧)의 원로이고, 남방혁명당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대총통에 오른 후, 즉시 국회(國會)와 을 회복시키고, "홍헌칭제(洪憲稱帝)"의 여파를 제거했다.다른 한편, 단기서는 원세개의 후계자였고, 북양계(北洋係)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두 사람의 합작은 이 나라를 정상궤도로 되돌려놓은 것같았다. 그러나, 사실상 처음부터 여원홍과 단기서간에는 갈등이 심각했다. 갈등의 원인은 자연히 권력다툼이다.남북의화(南北議和)이후, 원세개의 ..
2025.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