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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기의(南昌起義)의 총지휘관을 비당원인 하룡(賀龍)이 맡은 이유는?

글: 옥미수(玉米穗)​1927년 8월 1일 발발한 남창기의는 중공당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그 의미가 크다는 점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에 무력으로 대항한 첫번쨰 사건이며, 그후 20여년간 지속된 국공전쟁의 서막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남창기의 당시에는 국민당좌파의 기치를 내걸었고, 기의후에 건립된 혁명위원회의 명단에는 송경령(宋慶齡), 등연달(鄧演達), 장발규(張發奎), 하향응(何香凝)등 국민당원들의 이름이 들어 있었지만, 그건 그저 내건 것에 불과했고, 진정 기의를 기획, 조직, 발동한 사람은 모조리 공산당원이다. 국민당좌파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혁명위원회 위원중 한명인 장발규는 기의발발후 위대를 이끌고 기차를 타고 현장으로 가서 기의를 막으려고 시..

법가(法家)는 GDP에 관심이 없다

글: Achilles​한번은 누군가 나의 지후(知乎)의 답글에 댓글을 달아놓았다: "한비자(韓非子)는 대철학가(大哲學家)이다." 나는 크게 놀랐다. ​여기에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씀드리자면, 나는 중국고대에는 철학가가 없었다고 보는 그런 무지한 사람은 아니다. ​만일 누군가 노자, 장자를 철학가라고 말한다면, 나는 전혀 이의가 없다. 공자, 맹자가 철학가라고 말한다면, 윤리학도 철학으로 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한비자는 아니다. 한비자의 학설에서 학문을 하는 것은 모두 사회의 좀같은 존재이다. 그와 동창인 이사(李斯)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행하지 않았던가. 어디 철학가가 자신의 판을 깨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한비자도 철학..

원세개(袁世凱)의 장례식: 국장으로 서태후에 못지 않았다.

글: 성도일보(星島日報)​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봉건황제제도를 무너뜨린 후, 원세개는 중화민국의 초대 대총, 제2대 임시대총통을 지냈다. 그는 북양정부의 최고지도자였으며, 북양군의 창시자겸 영도자였다. ​그의 장례식은 호화의 극치를 보여주었으며, 규모도 엄청났고, 그 규격은 청나라황제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였다.​1915년말, 원세게는 황제에 오르고, 연호를 홍헌(洪憲)이라 한다. 그러나, 사회각계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저항한다. 특히 병권을 장악하고 있던 당계요(唐繼堯), 채악(蔡鍔), 이열균(李烈鈞)등 실력자들이 호국군(護國軍)을 조직하여 무력으로 원세개를 토벌하고자 한다. 금방 원세개의 황제꿈은 "토원(討袁)"의 소리에 사라지게 된다. 그때 그의 사람들은 거의 떠나갔으며,..

지방채무해소(地方化債): 중앙정부가 세 발의 화살을 한꺼번에 쏘다(三箭齊發).

글: 왕혁(王赫)​11월 8일, 전인대상무위원회가 폐막했고, 당국은 비교적 강력한 힘으로 지방채무해소를 추진했지만, 대규모경제부양계획은 내놓지 않아 투자자들을 실망시켰다. 그날, A주의 3대지수는 초반에 상승했지만, 다시 꺾여서, 상해는 0.53% 하락, 선전은 0.66% 하락, 창업반은 1.24% 하락했다.​그리고, 이번 지방채무해소에 대하여 당국(중앙정부)는 "세 발의 화살을 한꺼번에 쏘았다(三箭齊發)". 기실 이건 모두 날카로웠다. 한발 한발이 지방의 급소를 찔렀고, 지방정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당국의 연구와 판단에 따르면, 중국경제에서 가장 위험한 지뢰는 지방정부채무라고 보았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지방정부의 숨은 채무이다. 일찌기 2018년 목표를 정한 바 있다. 각 지방의 채무증가를 확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