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왜(倭)": 일본인들은 이 칭호를 어떻게 보았을까?

중은우시 2024. 7. 4. 12:41

글: 옥미수(玉米穗)

"왜(倭)"는 옛날 중국에서 일본을 부르던 명칭이다. <삼국지>에는 <위지.왜인전(魏誌.倭人傳)>이 있고, <후한서>에도 왜인(倭人)에 관한 기술이 있다. 왜인은 바로 옛날의 일본인이다. 현재의 중국인은 "왜"라는 글자에 대하여 대체로 약간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왜"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명나라때의 "왜구(倭寇)"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키는 작지만 무예는 뛰어나며 흉악하고 악독한 일본낭인이 중국의 연해지구를 돌아다니면서 살인약탈방화를 저지른다. 왜구를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척계광(戚繼光)과 척가군(戚家軍)이다.

현재 중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왜"라는 명칭으로 일본 혹은 일본인을 부르지 않는다. 가끔 그렇게 부르면 멸시의 의미를 담고 있을 때이다. 마치 "일본"의 앞에 "소"자를 추가하여 "소일본(小日本)"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전에 일본인들이 중국을 "지나(支那)"라고 불렀을 때 모욕과 멸시의 의미를 담았다. 지금의 일본에서 중국을 적대시하는 우익분자들 예를 들어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지나" 혹은 "지나인"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듣기에 고의로 도발하는 의미를 품고 있는 것같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이 일본을 "왜"라고 부를 때, 일본인들은 어떻게 느낄까? 이것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최근 이미 고인이 된 일본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와 진순신(陳舜臣)의 대담록 <사고중국(思考中國)>을 읽어보았는데, 거기에 "왜"라는 칭호에 관한 토론이 들어 있었고, 아주 재미있었다. 원문은 조금 산만하고 중복되기 때문에 필자가 아래에 간략히 요약해보도록 한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일본인들은 "왜"를 차별적인 용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라고 칭해지는 것에 대하여 예전의 일본인들은 그게 모욕이라고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속으로 좋아했다. 왜냐하면, "왜(倭)"이는 "사람인(人)"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왜"라고 칭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사람으로 대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시카섬(志賀島)에서 출토된 "한위노국왕(漢委奴國王)" 금인(金印)은 동한의 광무제가 당시 왜인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진위여부에는 논쟁이 있다). 그 도장에서는 "위(委)"라는 칭호로 상대방을 불렀고, 거기에는 사람인(人)이 아직 붙지 않았다. 이는 당시 "왜인"은 아직 한인에 의해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족은 주변의 소위 "만이적융(蠻夷狄戎)"을 개화되지 않은 종족으로 보았고, 칭호에서도 "사람인"자를 붙여주지 않고, 오히려 자주 개견(犬)자 같은 것을 써서 상대방에 대한 멸시를 표현했다. 그래서 "왜"에 "사람인"을 붙인 것은 이미 특수한 대우라는 것이다. 비록 "왜"라는 글자는 "왜소(矮小)"하다는 인상을 주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으로 대우한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왜인들은 만족했다는 것이다.

"왜"는 수(隋)나라때 "일본"으로 개칭된다. 수양제때 일본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수양제에게 국서를 전달하는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수양제가 그 국서를 보고 대노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국서에 일본은 자칭 "해가 끄는 곳의 천자(日出處天子)"라고 하고, 상대방을 "해가 지는 곳의 천자(日沒處天子)"라고 불러서, 수양제는 상대방이 하늘높은 줄 모르는 무례하고 미개한 자라고 생각해서이다. 이런 견해는 중국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일본학계에서는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시바 료타로는 일본학계의 관점을 소개하는데, 수양제가 진노한 원인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해가 뜨는 곳의 천자, 해가 지는 곳의 천자"라는 표현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최초의 국서에 "왜(倭)"라고 자칭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 원인은 당시 중국은 주변의 번속국중에 단일한 한자로 부르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소국이 중국의 번속국이 되면 일률적으로 두 글자의 한자명칭을 부여받는다. 예를 들어, 조선(朝鮮), 안남(安南)등이다. 오직 땅도 넓고 인구도 많은 중국만이 단일한 한자로 부를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周), 진(秦), 수(隋), 당(唐)처럼. 동해의 작은 섬에서 온 왜인들이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단일한 한자인 "왜"를 사용한 것은 참월하여 중국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칭호를 두 글자인 "일본"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많은 중국인들은 일본이 "왜"라는 글자를 싫어해서 국명을 "일본"으로 바꾼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바 교타로와 진순신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왜"라는 칭호는 유래가 오래 되었고,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우아하지 않거나 좋지 않은 칭호가 아니라고 여겨졌었기 때문이다.

그외에 한 연호(年號) 문제도 언급된다. 이전에 조선같은 번속국은 자신의 연호가 없었고, 모두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여 중국에 대한 공손함을 표시했다. 일본은 대화(大化, 645년부터)연간부터 자신의 연호를 사용한다. 그때 이미 하나의 독립국가라는 분위기가 농후했었다. 이에 대하여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중국(당)은 하고싶은대로 놔두고 방임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견당사(遣唐使)가 올리는 국서에서는 일본연호를 쓰지 않고, 여전히 당나라의 연호를 써서 존경을 표현했다. 국내에서는 몰래 자신의 연호를 사용하고, 외교관계에서는 당나라의 연호를 사용하여 공경을 표시했다. 이는 당시 일본과 중국의 관계를 반영한다.

위에서 언급한 "왜"라는 칭호에 대한 느낌에서 중국인과 일본인이 동일한 사물에 대하여 서로 다르게 느끼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많은 중국인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이 일본인에게는 전혀 다른 것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인이건 일본인이건 피차 상대방이 동일한 사물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