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회/중국의 심리

중국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중은우시 2024. 2. 27. 11:46

글: 안순구(顔純鉤)

최근 들어 사상해방이 해외에서 핫이슈로 되었다. 사상해방은 개혁개방초기 등소평, 호요방등이 독재사상의 굳건한 얼음을 깨고, 인민의 적극성을 자극하기 위한 영단묘약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다시 옛날 수법을 들고 나오다니 일이 조금 기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공은 반세기동안 이데올로기를 통제했고, 사상의 벽을 꽁꽁 틀어막았다. 오직 당의 의지만 있을 뿐, 백성들의 사상의 자유는 없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엄격하게 통제하고, 문화적으로도 일방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경제가 고인물처럼 된 근본원인이다. 등소평은 중공정권이 위기에 빠졌을 때, 의연히 뱃머리를 돌려서, 사방의 시장경제발전의 도로를 따라갔다. 사상해방이 발단이 되어 계속 순항했으며, 정치, 경제, 문화의 금기를 깨트렸다. 그로 인하여 40년간의 영광을 불러왔다.

유감스럽게도, 중공의 개혁개방은 환골탈퇴의 장기적인 전략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미봉책이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뿌리를 내리기 전에 중공의 본래 자태가 다시 살아나, 원래의 길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이 10년간 역행하는 길을 걸으면서, 거품이 잔뜩 끼어있던 자산을 망쳐버렸고, 내정과 외교는 점점 퇴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돌고 돌아 다시 절벽에 도달했다.

금년들어, 시진핑은 내외투쟁같은 거창한 말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동승서강(東昇西降)은 입에 꺼내기도 남부끄럽다. 다시 경제발전이라는 구호를 내놓고, 외교적으로도 전랑의 모습을 거두어 들이고 있다. 후난성위(湖南省委)에서 '사상해방'이라는 구호를 내놓았는데, 이는 탐색성의 신호이다. 그 뜻은 전체 사회의 질식할 듯한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것이다.

경제의 난제는 두터운 얼음이 하루 춥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그 근원은 단지 경제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전체 사회를 범정치적인 근좌정서가 주도하고 있다는데 있다. 각종 시대의 흐름과 배치되는 악법이 전후로 만들어지고, 중공은 전면적인 일원화영도로 되돌아갔으며, 안정유지가 사회의 곳곳을 파고 들었고, 사상통제는 물샐틈없이 엄밀하고, 대외적인 전랑자태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샀다. 전체 사회의 봉쇄는 냉혹하고 비인간적이었으며, 여러 해동안 활발하게 생활하고, 생기발랄했으며, 기운이 충만했던 것과 정반대가 되었다.

사상이 죽으면, 문화도 무너진다. 야심과 창의는 질식되고, 미래에 대하여는 희망을 잃는다. 이런 사회분위기하에서, 누가 경제발전에 기대를 걸 수 있을 것인가?

경제가 구렁텅이에 빠진 난제를 해결하려면, 오로지 먼저 사회를 얼어붙게 만드는 공기를 개선해야 하고, 먼저 사상문화를 살려야 한다. 그래야 경제와 생활이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그래야 경제를 빈사상태에서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후난성위가 돌연 사상해방을 부르짖게 된 진정한 원인이다. 사상해방을 해야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상해방이라는 구호를 부르짖는 것이다. 약간의 '해방'이라는 겉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상해방의 본질이 무엇인가? 사상에 금기가 없는 것이다. 생각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한계를 둔다면 그것은 사상해방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건 그저 반쪽짜리 '해방'이기 때문이다. 새장 안에서 춤추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뛰어보아야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

망의중앙(妄議中央)할 수 없다면, 무슨 사상해방인가? 모든 일을 시진핑의 말 속에서만 토론해야 한다면 그게 무슨 해방인가? 시진핑 사상에 도전하는 것은 죽을 길을 찾는 것이고, 시진핑의 헛소리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그것은 실제를 향할 수 없다. 이런 사상해방은 그저 쇼일 뿐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인가? 시진핑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국내외중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진정한 사상해방은 가득찬 시진핑저작을 끌어내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진핑의 그 평범한 내용의 글들에 둘러싸여서는 사상해방이 있을 수 없다. 시진핑사상을 들어내고, 다시 각급간부들에게 중앙의 정책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자유를 주어야 하고 백성들에게는 당을 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느 정도 사상개방의 공간이 생길 것이다. 모택동시대에는 당내에 어느 정도 말을 할 자유가 있었다. 여산회의에서 팽덕회가 감히 나서서 모택동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내에 한 목소리 뿐이다. 전국이 한 목소리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만신창이이고, 그 근원은 오직 시진핑에게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각급간부는 모두 '시진핑'을 배우기에 급급한데, 무슨 사상해방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헛소리라고 하더라고, 왜 후난성위는 이렇게 사상해방을 소리높여 외치게 되었을까? 진정한 원인은 사상해방에 있지 않다. 그저 '사상해방'의 겉모습을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침체된 사회분위기를 활발하게 만드는 것이고, 백성들이 쌓인 것을 쏟아내게 만드는 것이다. 쌓인 것을 쏟아내게 되면 마음이 안정되지만, 계속 마음 속으로만 가지고 있게 되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사람들이 그것을 터트리게 되면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현재 가장 부족한 것은 바로 미리에 대한 믿음이다. 중공의 일당독재로 전국에는 그저 중공이라는 하나의 핵심만 있다. 중공의 핵심은 다시 시진핑 한 사람이다. 시진핑은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못난이이다. 13억 중국인의 미래를 이런 기이한 인물에게 맡겨놓다니 믿음을 가질래야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 믿음이 가장 부족한 것이다.

일단 사상해방의 구호를 외치게 되면, 마치 세상이 바뀐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마치 등소평의 실용주의사상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느낄 것이다. 현재 내외적으로 진퇴양난이어서 출로를 찾는 것을 고심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상해방이라는 한 마디가 살길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사상을 어떻게 해방하든지간에, 해방이후 다시 무슨 사상이 나타나든지 간에 그저 '해방'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고, 기대를 걸만한 일이다.

병이 위중하면 아무 의사나 찾는 법이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무슨 엉뚱한 아이디어도 꺼내놓을 수 있다. 사상해방운운하는 것을 조금만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바보일 것이다. 해방과는 아무른 쓸모도 없는 사상보다는 딴 살림을 차리는 것이 낫다. 공산당을 버리고, 보편적가치를 따르는 것이다. 오늘날 서방민주주의국가가 흥성하고 대만조차도 크게 발전하고, 시장경제를 따르는 소국들도 모두 소강(小康)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데, 오히려 중국만 천길 낭떠러지도 떨어지고 있다. 문제는 사상해방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중공이냐 아니냐에 있다.

모택동이 명언을 남겼다: "사료장도호(死了張屠戶), 불흘혼모저(不吃混毛猪)"

중공을 무너뜨리면, 중국인은 영원히 사상을 해방할 수 있다.

("사료장도호(死了張屠戶), 불흘혼모저(不吃混毛猪)"; 어느 마을에 장씨성을 가진 도축업자가 있었다. 그는 도축을 독점하면서 가격을 비싸게 받을 뿐아니라, 양도 적게 주고, 심지어 돼지털마저도 깨끗하게 정리해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장씨는 만일 내가 없으면 털달린 돼지고기마저도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씨가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어느 날 장씨가 돌연 죽었고, 사람들은 고민했으며 앞으로는 털달린 돼지고기마저도 먹을 수 없겠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길거리에는 돼지고기를 파는 가게가 여럿 생기고, 가격도 예전보다 쌌고, 돼지털까지 꺠끗하게 정리된 것이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다. 장씨가 없어지니, 오히려 털깍인 돼지고기를 먹게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