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의보(議報)
참고: 우크라이나에 남은 한 중국인이 남긴 영상유언 (daum.net)
전쟁터에서 졸지에 전화(戰火)의 습격을 당한 사람은 어떻게 먼 곳에서 깃발을 흔들면서 전쟁을 부추기는 사람들에게 이치를 따지면서 얘기할 수 있을까? 이건 정보의 싸움이고, 더 나아가 직접 겪으면서 얘기하는 인간의 싸움이다. 각종 SNS에서 십만, 백만에 이르는 조회수를 기록하는 그의 컨텐츠는 진상의 환원을 지향하는 것일까, 아니면 입장의 선택을 지향하는 것일까? 이는 사회여론의 논의 속에서 가치관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문명관계에 관한 물음이다. 사이버세계가 반영하는 것은 또 다른 세계의 모습이고, 우리는 반드시 거기에서도 문명의 최소한은 지켜내야 한다.
이런 '전장'에서 모든 사람은 무형의 '전쟁'에 휘말린다. 누가 적인가. 누가 친구인가. 지금 사람의 사상을 분열시키고 있다. 관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영국사상가 로크가 말한 것처럼 "진상과 가상은 모두 증명해야할 문제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후, 지금까지 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
입국한지 2달이 지난 지금 그는 더 이상 이 나라에 투자이민온 '상인'이 아니라, '여론장'에서 중국의 '저명한 네티즌'이 되어 버렸다.
2021년 12월 27일, 새해를 3일 앞두고, 왕지셴은 마케도니아를 떠나 우크라이나로 이사를 왔다.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다운타운에 위치한 80평방미터짜리 집에는 침실, 거실, 주방이 있고,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곳은 라이브극장처럼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모두 거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순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새벽3시, 약간 렌즈가 흔들리면서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발코나밖으로 이끌었다. 불꽃이 일어나면서 방공경보음이 들리고, 베이징 토박이의 말투로 지구의 저편에서 전세계로 그의 목소리는 퍼져나갔다.
"나는 왕지셴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평안하다고 말씀드립니다." 모든 영상은 이 말로 시작한다. 2월 26일부터, 3월중순까지, 그가 이 말을 할 때마다 어투가 달랐다. 가볍고 편안한 정도, 말의 빠르기 정도, 그리고 그가 핸드폰으로 자신을 찍을 때의 눈빛과 표정까지. 마치 그의 심정의 바로미터같았다.
그의 심정은 전쟁의 상황이 수시로 바뀜에 따라 바뀌었고, 더더구나 들려오는 소리들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심정은 신경쓰지 않았고, 사람들은 두 파로 나뉜다. 하나는 그를 옹호하는 파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물어뜯는 파이다.
1. 전쟁발발
2월 24일 새벽4시, 오데사의 밤은 평소처럼 조용했다.
"뚜뚜뚜!" 핸드폰이 급하게 울리면서 방안의 고요함은 깨져버린다. 전화소리에 잠이 깬 왕지셴은 투덜거리면서 일어나 잠이 덜깬 눈으로 보니 전화는 신입직원인 우크라이나인 Igor Kolodka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는 의아해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빨리 도망치세요. 폭발합니다!" 전화의 저편에서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창밖에서는 몇번의 폭발음이 들렸다. 그는 깜짝 놀라고 있는데, 전화기에서는 동료의 목소리가 들린다: "전쟁입니다!" 그는 멍해졌다. 그러나 몇번의 폭발음은 그를 정신차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한밤중에 어디로 간단 말인가. 직원은 그에게 알려주었다. 창가에 있지 말고, 엄폐물을 찾으라고. 만일 집안에 지하실이 있으면 빨리 지하실로 가라고.
지하실은 없다.
그는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 있으면서, 초조하게 핸드폰으로 뉴스를 찾아보았다.
공습은 새벽4시에서 6시까지 계속되었다. 2시간이 지난 후, 날이 밝았고, 그는 급히 집을 나서서 먹거리를 준비했다. 그의 직원은 "사장님 오늘 재택근무해도 될까요?"라고 묻는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무슨 출근이란 말인가.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우크라이나사람은 너무나 선량하구나.
다음 날 저녁, 여전히 방공경보음이 울렸다. 그는 심신이 초췌해졌고, 마음 속으로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중국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틱톡에서 유머영상들을 찾아보면서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 속에서 불이 끓어올랐다.
그는 보면볼수록 말이 안된다고 여겼다. 평상시에 시사뉴스에는 그다지 주이하지 않던 그는 돌연 초조함에 휩싸인다. 틱톡에는 "우라우라! 러시아 잘한다!"는 내용이 있었고, 틱톡은 아예 이런 편향된 입장을 담은 전쟁뉴스를 별도로 보내고 있었다.
2월 26일, 그는 첫번째 영상을 제작했다. 1분 54초짜리였다. 제목은 "전쟁전에 최대한 잘 먹자"였다.
"전쟁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 먼저 양고기나 사자"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색 외투를 걸치고, 외투의 우상쪽 잘 보이는 곳에는 약 1밀리미터길이의 중국국기를 붙였다. 건물을 내려가면서,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었다. 대문을 나서서, 길거리로 나섰다. "딩! 딩! 딩!...." 종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종소리가 끝나자 "아하...." 왕지셴은 장탄식을 내뱉는다. 이런 탄식은 조금 전의 종소리에 호응하는 것같았다.
오데사의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골목끝까지 걸어나서 가지고 나온 쓰레기를 버린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멀리 중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려는 것같았다. 여전히 생활해야 하고, 두려움은 없다.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빵집 한 곳을 지나가면서 그는 가게안으로 들어간다. 점포안에 진열해놓은 각양각색의 빵을 보여준다. 그리고 수퍼마켓에서 판매원은 계산하고 있었고, 상품진열대에는 고기류, 식품류가 가득 쌓여 있었다. "아주 충분하다" 그는 일부러 한 마디 덧붙였다. 한 우크라이나 중년남자가 그의 영상에 나타난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를 쳐다본다. 그런데, 한 네티즌은 댓글을 남겨 그 중년남자는 날카롭게 그를 노려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영상은 3,262명으로부터 '좋아요'를 받았다. 그리고 가장 좋아요를 많이 받은 댓글은 "중국국기를 붙이고 다니지 말라. 위험하다"는 것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대댓글을 남겼다.
그는 같은 영상에서 우크라이나 평민이 차를 몰고 가다가 습격을 받는 과정을 올렸고, 헤르손의 실제상황도 올렸다. 그가 이 영상에 붙인 제목은 "침략자에 반대한다!"였다.
이때 주위에는 폭발음이 멈추었으며, 세계는 잠시 평온을 되찾은 것같았다.
그는 마음 속으로, 일단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 다른 전쟁이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중국의 네티즌들이 미친듯이 그의 유투브, 틱톡등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어떤 네티즌은 그를 조롱했다. 어떻게 그런 엉망인 곳에 갔느냐고. 빨리 전쟁터에나 나가라고. 또 다른 네티즌은 영상을 찍으려면 말을 깔끔하게 하고,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전쟁이 난 걸 어떻게 미리 알았느냐고 비웃었다. 또 어떤 사람은 귀국하지 말라, 너는 필요없다고 하기도 하고, 네가 싫다. 너는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그가 마케도니아에 있을 때 알고 지내던 대사관의 직원이 그에게 보낸 두 마디 말이었다.
"나는 너를 차단할 수밖에 없다. 네가 하는 말은 국가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는다."
"네가 단체방에 올려야 돈을 버느냐. 서로 차단하자. 안보겠다."
힌밤중에 떨어지는 폭탄소리는 여전히 그의 수면을 방해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너는 전쟁터에 나가지도 않았고, 직접 탱크를 보지도 않았고, 그저 주민거주지역에 있으니, 더 이상 우크라이나사람들이 억울하다는 식의 말을 하지 말라고 질책했다.
그는 그런 댓글을 보자 눈썹이 찡그려졌다.
다만 그는 진실한 상황을 직면해야 했다. 매번 방공경보가 울릴 때마다 그는 침실의 발코니에서 멀리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심장이 뛰었고,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그는 언젠가 미사일이나 폭탄이 자신의 집으로 날아와서 자신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3월 1일, 키이우시간으로 새벽1시반, 왕지셴은 거의 40시간동안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우크라이나직원인 Irina Blious는 예전에 모델이었고, 그의 회사로 와서 HR(인사)을 담당했다. 이때 그녀는 집안에서 자원하여 화염병을 만들고 있었다. 술병에 휘발유를 넣고, 위에 면화로 막았다. 그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서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모델을 했으면서도 전혀 오만하지 않았다. 이전에 그는 여러번 업무를 하면서 그런 점을 보았고, 그래서 우크라이나로 와서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인터넷에서 네티즌들 중에서 "너는 죽는 걸 겁낸다" "능력이 있으면 전쟁터로 가라" "너는 우크라이나사람이다"라는 식으로 조롱하는 것이었다. 이런 것은 더욱 기운빠지게 했다. 특히 전쟁에 처한 초조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항상 그는 "시간"을 생명이 존재한다는 증거물로 삼게 된다. 그후 영상에서 매번 사람들에게 "지금은 키이우시간으로 ....시입니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2. 우리의 신앙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극도로 피로해진 왕지셴은 억지로 잠에 들었다.
"잠을 잤다. 친구. 다행히 저녁인데 여기는 조용하다. 너도 일찍 쉬어라.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나는 네가 아주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소용없다. 그들은 정말 나쁜 놈들이다."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중국인친구가 그에게 저녁인사를 보내왔다.
그는 예의바르게 회신했다: "우리는 전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국가의지를 배신하는 매국노인가?"
"당연히 전우이지. 그딴 거 신경쓰지 말라. 우리가 죽으면 무슨 집이 있고 국가가 있느냐"
천천히, 대화창이 조용해진다.
전쟁이 시작되기 1주일전에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몰랐다. 사망소식이 수시로 들려온다. 바로 얼마전에 왕지셴은 우크라이나에 투자하여 인공지능회사를 창업했고, 이미 직원이 10명에 이르렀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인재풀'이라고 여겼다. 아주 우수한 IT인재들이 넘쳐났다. 그래서 그는 여기서 제품을 만들어 유럽으로 팔 생각이었다. 그들이 평상시 업무할 때는 영어로 소통했다.
이번에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이 회사에 걸었다. 그런데, 전쟁이 발발하자, 은행자금은 모조리 '동결'되었고, 그는 졸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이곳에서 몸을 빼내 도망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아주 초췌하다. 아주 초췌하다. 피곤하다. 정말 피곤하다." 왕지셴은 마음이 평정되지 않았다. 그는 그에게 관심을 보내주는 얼굴을 본적도 없는 낯선 사람에게 글을 써서 보낸다:
"여기는 정말 아주 조용합니다. 나는 심지어 새가 짖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조용하냐구요? 왜냐하면 우리는 밖에서 방공경보음이 들리면, 언제든지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옷을 벗을 수도 없고, 옷을 입고 준비를 한 상태에서 잠을 자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걸 알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3월 1일, 키이우시간으로 정오12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양국의 제1차 평화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방공경보음은 계속 끊이지 않았다.
이날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관건적인 하루가 되었다. 이 현실세계에서 한편으로 폭탄을 떨어뜨리면서, 한편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그는 안녕을 추구하면서, 또한 분노했다.
어떤 네티즌은 그를 조롱했다. 넌 무섭지 않다면서 왜 불을 끄느냐. 그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내가 불을 끄는 건 잠을 자기 위해서이다.
어떤 네티즌은 쉬샤오둥의 영상을 보내주었다. 그는 아주 유머스럽게 그들에게 대답했다: "그는 유명한 사람이고(名人), 나는 사람이름(人名)이다. 여기는 전쟁중이고 우리는 곧 죽을 것이다. 진짜 이름을 남긴다. 왕지셴, 북경인. 우리집안 친척, 중학교 선생님이 내 이름을 듣는다면,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그는 영상에서 자신의 진실한 신분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죽음에 대하여, 그는 겪은 바가 있다. 어렸을 때 오토바이사고를 당했는데 그 충격으로 신체에 상처를 입어 지금까지도 인상에 깊이 박혀 있다. 베이징에서 노점상을 하던 부친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위험을 당해도 그것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네가 한번 그것을 무서워하면, 평생 그 일은 너를 겁주게 될 것이다. 네가 한번 무서워하면 평생 그것을 무서워해야 한다" 그의 부친이 한 이 말은 그가 영상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부친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의 우크라이나에서의 안위를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일은 그를 다르게 만들었다. "내가 불공정한 일을 당했을 때, 무서운게 아니라 분노한다."
누군가 그에게 말했다. "네 집이 폭격당했느냐? 너의 집도 괜찮고, 수퍼마켓도 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
수퍼마켓에서 원래 41흐리브냐(우크라이나 화폐단위)에 귤 2근을 살 수 있었고, 인민폐로 계산하면 8위안정도였는데, 가격이 오르진 않았다. 야채시장도 영업을 하고 있다. 냉동만두, 달걀도 충분하다. 그리고 콜라도 있고, 마실 물도 있다. 그는 영상 속에서 사람들에게 그에게 닥친 생활을 이렇게 얘기한다: "살아있다. 평안하다!"
다만, 인터넷의 이해할 수 없는 소리에 대하여는 분노를 금치 못한다. 3월 1일, 잠들기 전에 그는 3편의 영상컨텐츠를 올렸다. 이로 인하여 그는 금방 '무대의 중앙'으로 끌려나와야 했다.
어떤 사람은 "네가 죽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너는 도대체 우크라이나에 있긴 한 거냐?"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너는 배우냐?"라고 했다. 그는 이들 네티즌들을 키보드워리어라고 불렀다. 그는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이곳에 있는 중국인은 그 혼자만이 아니고, 많은 현지의 상인들은 무장을 하고 집결하고 있다. "이건 우리의 점포이다. 나는 다시 우리의 점포가 파괴되는 것을 그냥 두고보지 않겠다."
그는 이들 키보드워리어들에게 러시아지원군으로 들어가라고 권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반드시 러시아군의 휘장을 달고 나오라고 말했다. "우리 전쟁터에서 보자. 이곳으로 쳐들어와라."
그는 여전히 중국국기를 그의 외투에 부착하고 있다. 그는 힘껏 손가락으로 국기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건 나의 여권이다. 나의 영상을 그들 키보드워리어들에게 전해줘라."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으며 그는 이를 악물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간 전사처럼. "만일 감히 온다면, 우리 전쟁터에서 만나자. 너는 우리 집으로 올 수 있다. 여기는 우리 집이다. 키보드워리어들이여 와라. 너희의 칼을 들어라."
네티즌들은 그가 왜 죽고 싶어하지 않으면서, 굳이 그곳에 머물러 있는지 궁금해 했다. 그때 인터넷에 넘쳐나는 것을 교민철수, 도망, 그리고 전쟁을 고취하는 목소리들이었다. 그의 거동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따로 영상을 만들어 자신이 왜 떠나지 않는지를 설명했다. 이 영상은 더욱 많은 관심을 끌었다. 특히 앞에 중국여권을 들고 있는 모습은 신속하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고, 10만의 리포스트를 기록한다.
그는 그가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도망가는 길에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는 폴란드로 가지 않는다. 그는 중국여권을 카메라에 대고 카메라앞의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게 했다: "이 여권을 제출하면 난민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살기위해서는 여권을 난민증을 바꿔야 한다. "나는 존엄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공항은 모두 폭파되었다. 방공포의 포성도 계속 들린다. "어떻게 떠난단 말인가? 하늘위를 날아다니는 것은 모두 적군인데."
"나는 남았다. 이건 나의 결정이다."
이번에 그는 선글라스를 끼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국기는 여전히 그대로 있고, 중국여권이 하나 더해졌을 뿐이다.
더 이상 말끝마다 키보드워리어라고 하지도 않았다. <동포 여러분은 이번 정보전에 끼어들지 마십시오>라는 영상을 시작하면서,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동포여러분, 동지여러분,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호칭도 바뀌었다.
"어떤 일은 나도 보았다. 너는 전쟁터에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은 사도(蛇島)의 수비군이 포로로 잡혔다고 말한다. 그곳은 내가 있는 곳에서 1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맹렬한 포화를 나는 들었다." 이 애매모호한 말은 나중에 네티즌들에게 공격꺼리를 주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추궁한다. "15킬로미터라고? 그렇게 먼데, 들렸단 말인가?"
그러나 그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무 이웃에게 물어도 모두 "HERO"를 말할 줄 안다. 러시아어로는 герой이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 그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동포들과 싸우는 것이다." 마치 그의 동포가 그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듯이.
전쟁의 세부적인 상황에 대하여 그는 가짜뉴스의 황당함을 얘기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방공부대를 습격했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우크라이나는 자신의 영토에서 러시아군을 습격한 것이다. 나는 이 단어는 당연히 '자위반격'이라고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조용한 저녁이다. 만일 내가 내일도 아직 살아있다면. 나는 전쟁속에 있다. 내가 보는 것은. 내 생각에 나의 이웃 여자아이와 아래층의 그 개는 죽어서는 안되었다."
"죽어서는 안되었다"는 말은 전쟁속의 선언과 같았다. 그러나 누가 그것을 이해하겠는가? 내일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에 있어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내가 현재 너와 나누는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나의 유언이 될 수 있다. 내 말을 귀하게 여겨달라. 내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귀하게 여겨달라. 내가 중복해서 말하지 않도록.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이 전화는 너희가 말하는 '평화회담'속에서 싸우는 것이다." 오데사는 이미 새벽1시이다. 이미 피로에 지친 그의 말은 갈수록 느려졌다.
"이것이 나의 전화이다. 최소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우리는 바깥에서 잘됐다, 너무 좋다. 이들은 죽어마땅하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말자.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이번에, 선글라스도 쓰지 않고, 중국국기는 부착하고 있었고, 그는 그의 전화도 제공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반전가를 올리고, Z자군과 러시아점령지역의 군중도 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호소했다: "러시아의 어머니들이여. 당신의 자식을 전쟁에 내보내지 마세요. 우리는 지금 그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전쟁이 없다면, 그들은 마땅히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것입니다."
짧은 잠을 자고나서도 생사에 대한 생각으로 그는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했다. 다음 날, 그는 깨어나서 영상에 이야기를 올린다. 그의 유언삼아서.
이때는 전쟁이 시작된지 5일째였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맨손으로 탱크를 막았다. "이건 우리의 집이다. 너희는 여기와서 뭐하는거냐." 그들이 무서웟을까.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나 눈을 부릅뜨고 그들은 탱크와 러시아군인들에게 소리쳤다: "여기로 오지 말라. 너희가 오면 나의 아이가 죽는다. 여기서 떠나라."
"너희는 하르키우를 박살내자고 말한다. 너희는 탱크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가? 우리의 집이다."
"살아있는 것. 사람처럼 존엄있게 살아가는 것. 우리의 신앙은 살아있는 것이다. 나의 영상을 여기에 남긴다. 유언으로." 울었다. 그는 울었다.
"또 공습이 왔다. 우리 여기는 초록색이다. 오늘은 3월 2일, 봄이 왔다."
9분 17초짜리 유언자술은 마치 곧 전쟁의 폐허로 들어가기 직전의 작별인사같았다. 그리하여 10만명의 리포스트를 불러왔다. 죽음은 사이버세계에서는 쓸데없이 긴 자아신음이 되고 말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아연소년들>은 아프간전쟁으로 끌려가는 소련병사에 대하여 썼다. "총알이 그의 머리에 맞았다. 두 팔을 벌리며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뇌수가 날아서 튀었다. 그는 뛰면서 머리를 붙잡았다." 어떤 때는 사람들의 전쟁에 대한 태도는 왕왕 전쟁의 잔혹함을 직접 겪어보았는지 여부에 다라 결정된다.
그를 이해하는가? "우리의 신앙은 살아있는 것이다."
3. 나는 감히 구글에서 내 이름을 검색해보지 못한다.
이때부터 매일매일은 그가 살아있다는 증명이다.
항상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오른 손을 높이 들고 카메라는 자신을 향한다. 매번 방공경보음이 들릴 때마다 그의 집 창밖은 다시 한번 라이브방송현장으로 바뀐다. 특히 쌍방간의 평화협상때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평화협상을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공습을 오는 것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라이브방송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프로그래머, 코드작성자. 이것이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신분이다.
3월 2일부터, 그는 더 이상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 더이상 중국국기를 부착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오데사의 집주소를 불러주었고, 그는 자신의 핸드폰번호도 공개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내가 원래 살던 곳과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구나." 3월 14일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위챗으로 그에게 말을 했고, 그는 회신을 햇는데, 위챗의 한도로 인하여 그는 모두에게 답장을 보내지는 못했다. "여러 곳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특별히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 나는 나에게 관심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회신을 하겠다."
다만 그는 틱독, 유투브의 댓글에는 글을 남기지 않았다: "욕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해라."
한 매체종사자는 매일 그의 영상을 본다. 그가 평안한지 궁금해서. 그리고 어떤 매체종사자는 "나는 그의 영상을 리포스트한다. 가족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 그들은 글을 읽지 않는다. 그러면 이 영상을 보여주면 된다."
북경에서 클라우드사업을 할 때 알고 지냈던 타이완의 린선생은 돌연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매체에서 그를 보았다고 말하면서 '안전에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그가 18살때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알게된 친구였다. 그리고 facebook에서 십년간 연락이 없던 인도네시아의 친구도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더욱 웃기는 일은 어떤 사람이 그를 애플의 고위직이라고 헛소문을 낸 것이다. 그는 좋아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지지하는 사람과 욕하는 사람. 잘한다는 사람과 유언비어라는 사람,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각양각색의 매체와 개인은 자신의 이해각도내에서 그를 해석했다. 그러나 그는 돌연 더 이상 분노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만 나는 죽어도 무섭지 않다. 상관없다." 그는 매일 여전히 영상을 올리고, 기분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어떤 중국인은 위챗으로 그에게 돈을 보냈다. 우크라이나사람들을 돕고 싶다면서. 그는 돌려보냈다. 그러나, 그는 즐겁게 우크라이나친구들에게 말해주었다. "봐라. 우리는 여전히 생명의 편에 서 있다."
그가 하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는 그저 웃는다. "중국인들의 체면을 조금 회복한 것이다. 나는 미미한 영향력이지만 이 전쟁에서 중국인을 위하여 존엄을 지켰다. 다만 나는 이로 인하여 더욱 많은 적을 만들게 되었다."
그는 매일 멀리 베이징에 있는 부친과 통화한다. 그는 그와 가치관이 같은 사람만을 믿는다. 최소한 이번 전쟁에서 "인간적인 편에 서 있는 사람".
16살때 구글 BSD Unix로 네트워크데이타 안전패치를 작성한 바 있고, 2002년, 부친이 준 2만위안으로 회사를 창업했다. 그의 성장의 길은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그때 우리 집은 가난했다."
인터넷은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나는 대학입시 하루전에도 여전히 고객센터에서 고객에게 회신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에서 그는 인생의 첫 목돈을 만진다. 그때 그의 나이 18살이었다.
대학에 입학한지 2년만에 그는 휴학한다. 그는 계속 인터넷업계에서 굴렀고, 회사를 창업하고, IT회사에 입사했으며, AI팀을 만들었다. 베이징에서 선전으로, 다시 마케도니아로, 그리고 다시 우크라이나로 인터넷과의 인연은 이렇게 깊다. 이제는 그가 인터넷에서의 '분쟁'에 휘말려 버렸다.
어떤 친구는 그를 부러워한다. "너는 SNS에서 이미 대단한 인물이다. 나중에 라이브방송을 하면 돈좀 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그는 마음 속으로, "전쟁이 끝나기만 하면, 나는 계정을 폐쇄할 것이다!" 그는 생활이 하루빨리 전쟁전으로 회복되기만을 바란다.
지금 그의 틱톡, 유투브의 조회수는 백만단위에 이른다. 그의 영상컨텐츠는 계속 리포스팅되고 있다.
"나는 지금 구글에서 내 이름을 감히 검색해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는 더 이상 또 다른 '전장'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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