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회/중국의 농민

중국농촌: "인다지소(人多地少)"의 시대는 흘러갔다

중은우시 2008. 5. 14. 13:14

글: 정아문(程亞文)

 

자주 시골에 계시는 부친과 통화를 하고 있다. 며칠전에 부친과 전화로 얘기를 나누는데, 부지불식간에 마을에 살던 사람들의 변화에 대하여 얘기했다. 부친은 우리 집앞에 살던 아저씨가 얼마전에 온 식구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땅을 버리고 양계장을 하러 갔다는 것이다. 현재 농촌에 상주하는 사람은 이미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마을의 논에 벼를 심는 경우는 갈수록 적어지며, 버려두거나 다른 것을 심는다, 평소에 먹는 쌀도 기본적으로 사서 먹는다; 마을을 점점 더 조용해지고, 곳곳에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란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한다.

 

오늘은 이 집이 떠나고, 내일은 저 집이 이사간다. 최근 몇년동안 매번 부친과 통화를 할 때면, 항상 이런 소식을 듣게 된다. 기억속의 시끌벅적하고 봄이오면 벌판에 파랗게 벼를 심고, 가을이 되면 누렇게 황금벌판이 되던 마을은 어느 새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다. 적막으로 빠져드는 시골 땅은 내가 작년에 온 식구가 이사를 나오기 전에 특히 강하게 느꼈다. 젊은 남녀는 보이지 않고, 노약자나 부녀자 혹은 어린아이만 있다. 저녁이 되면 그렇게 익숙하던 개짖는 소리마저 잘 들리지 않는다.

 

이 안휘성 동남쪽의 작은 마을은 최근들어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인구이다. 이 글의 작자가 중학생이던 20년전에 마을에는 29호의 사람들이 살았고, 상주인구는 144명이었다. 촌민들은 주로 논농사를 짓고 살았으며, 중간중간에 자잘한 장사를 하였다. 1990년대이래, 마을의 청장년 남녀들이 가족들을 이끌고 도시로 나가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십여년이 지나자, 바깥에 일거리를 찾아나가거나 아이의 공부를 시키러 도시로 나가게 되어, 마을에서 4호가 줄어들었고, 상주인구는 예전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7호는 집안의 유일한 아이가 최근들어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거나 일을 해서, 사실상 도시사람이 되었고, 부친들처럼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는 2,30년내에 적어도 7호는 이 마을에서 사라진다는 말이다. 계속 시골에 남아 생활하는 집들도 식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1980년대의 엄격한 계획생육정책으로, 마을의 생육구조는 심각하게 바뀌었다. 마을의 청소년들은 남자아이가 많다. 그리고 최근 20년동안 4호를 제외하고는 첫째아이가 남자아이면 다시는 둘째를 낳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은 자식을 많이 낳고자 하지 않는다.

 

안휘 고향에서 보는 것은, 실제로 현재 중국농촌의 축소판이다.  비록 지방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추세는 같다. 즉, 중국농촌이 점차 위축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사회학자 혹은 현대회이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바로 1970년대 이래로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중국에 가져온 '농촌의 종말'이다. 농촌인구는 이미 대규모 도시로 이주했다. 데이타가 말해준다. 개혁개방이 막 시작된 1978년, 중국의 도시화율은 18%에도 미치지 못했다. 2007년이 되어서, 이 데이타는 이미 45%로 상승했다. 2020년이 되면, 아마도 55%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도시인구의 증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중의 하나는 바로 농촌인구의 대폭적인 감소이다.

 

농촌인구의 감소와 농민의 비농업취업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인사부가 공포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농촌에는 2억이상의 농촌인구가 비농업취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도시로 가서 일하는 농민공이 1.2억이다. 이처럼 대규모로 '농민의 도시진입'과 '비농업취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장기간 누적된 결과는 바로 농촌이 외부로 내보내는 잉여노동력이 점차 감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무원발전연구중심이 전국 2749개 농촌마을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세이하의 청장년노동력은 마을마다 평균 299명이다, 동부지역은 323명이고, 중부지역은 260명이며, 서부지역은 298명이다. 농촌청장년노동력의 취업구조로 보자면, 농촌을 떠나 도시에 상주하며 일하거나, 비농업취업을 한 경우가 마을별로 평균 154명이다. 동부는 182명이고, 중부는 120명, 서부는 144명이다. 이 조사에서는 74.3%의 마을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청장년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겨우 1/4의 마을만이 아직도 외부로 내보낼 수 있는 청장년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9월 중경시 농업판공실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중경시에서 온식구가 도시로 나간 농민공이 85.88만호이며, 전체 농민호구총수의 11.96%이다; 온식구가 도시로 간 농민공의 수는 224.17만이며, 도시로간 노동력 총수의 31.74%에 달한다.

 

농촌인구가 대량 도시로 이동하는 것은 한편으로 농촌이 갈수록 쓸쓸해지며, 다른 한편으로 중국이 전통농업에서 현대농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장기간동안 중국농업발전을 가로막은 장애중의 하나는 바로 농촌의 "인다지소(사람은 많고 땅은 적다)"였다. 농업경영이 규모화를 이루기 힘들었다. 도시로 가서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농촌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 경작할 수 있는 토지규모가 점차 늘어나게 된다. 이는 바로 농민들이 신축적으로 토지자원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다지소'의 곤경을 벗어나면서 토지를 이용하여 소강사회를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시골의 농민들에게 출로는 토지이다. 토지가 너무 분산되면, 농업의 산업화를 이룰 수 없고, 시장화운영을 할 수가 없다. 현재 중국의 2.5억 농가호구는 평균경영규모가 0.48 헥타르에 불과하다. 이는 선진국에 비하여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소이전(小而全, 작지만 모두 함)', '소이산(小而散, 작고 흩어짐)'의 가족경영위주인 국면에서, '소'는 생산규모가 작다는 것이고, '전'은 농업의 전문화, 사회화협업의 정도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촌가정경영은 거의 독자적으로 농업생산의 거의 모든 과정을 완성한다; '산'은 농가가 분산경영하고, 서로간에 분업협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상황하에서, 전통농업생산은 그저 온포(溫飽)만 보증된다면 만족하고, 부유해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토지는 농민과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유리한 자원이 되지 못하고 있다.

 

만일 토지의 유통정도를 제고하여, 농민이 이용하는 토지의 규모를 확대하면, 토지는 아마도 다시 한번 농민의 수입증가와 농업부흥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1960년대에 국토정비방안을 마련하여, 농촌과 농업발전을 지원했다. 그 중의 한 정책이 토지경영규모를 확대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1970,80년대이후에 농업진흥을 하였고, 마찬가지로 농업생산규모를 보장하고자 하였따. 규모가 없으면 효율이 없다. 당연히 지적해야 할 점은, 미국과 아르헨티나등에는 큰 농장이 많다. 독일은 중형농장이 대부분이다.

 

농촌인구가 대량으로 감소하는 것 및 중국의 식품소비구조에서 양을 만족시키는 것에서 품질을 제고시키는 것으로 수요가 변화했다. 중국농업은 부흥과 농민의 현지취업에서 새로운 발전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이런 기회는 국가의 일부 정책이 뒷받침되면 더욱 현저히 드러날 것이다. 주체에 따른 공능지역설계, 도시농촌통합발전의 전략계획등이 그 예이다. 작년 6월, 중경, 성도는 이미 국가에서 도시농촌통합잘전종합일체화개혁시험구로 지정되었다. 중경시의 신임 서기 보시라이는 작년 연말에 부임한 후, 중경시의 다음단계 도시건설에서 확보해야 할 세 가지중의 하나를 바로 농촌인구가 질서있게 도시로 진입하고 도시농촌이 통합적으로 발전하는 문제라고 하였다. 농촌인구가 도시로 더 많이 진입할수록, 농촌에 남겨진 인구는 더 줄어든다. 농민이 이용할 수 있는 토지규모는 더욱 커지고, 농업업그레이드와 산업화, 시장화의 전망은 갈수록 넓어진다.

 

현대세계의 하나의 주제는 "농민소멸"이다. 중국의 각 지방에 있어서, 단순히 "농민소멸"시키고, 농민을 도시에서 흡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농촌인구가 대량감소된 후, 더욱 효율적인 정책환경을 마련해서, 농민이 수중의 토지경영권리를 더욱 잘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농업을 업그레이드시키고, 토지자원을 농민수입증가와 부유하게 이끄는 마르지 않는 원천으로 삼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