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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스포츠

중국에서 탁구가 정상적인 운동이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by 중은우시 2024. 8. 14.

글: 신신묵존(新新默存)

파리올림픽 남자단체전 결승 현장

중국남자탁구팀의 코치인 왕하오(王皓)가 코치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아마 모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의 경기장에서의 표정과 동작은 선수들의 그것보다도 훨씬 주목받고 있었다는 것을.

경기내내 죽을 상을 하고 있어, 누구든지 그가 마음 속으로 긴장하고 초조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수들보다 더 많이.

가끔 주먹을 쥐고 소리치면 피가 끓어오르지만, 가끔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 모습이 굳어있다. 선수에게 전술을 분석할 때의 목소리는 너무 커서 관중석에서까지 들릴 정도였다.

탁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경기장에서 선수가 점수 한점을 낼 때마다 기실 왕하오에게 심리적 압력을 하나씩 덜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어떤 사람은 심지어 이런 말까지 했다. 올림픽 탁구경기과정은 기실 판쩐둥(樊振東)이 왕하오를 구원하는 과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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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의 오랜 팬들은 잘 알고 있다. 왕하오가 왜 그렇게 긴장하고 초조해하는지.

탁구는 소위 국구(國球)이다. 왕하오가 이끄는 남자탁구팀이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왕하오의 마음 속에서 분명 순수한 스포츠경기의 승리와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영예, 지도자의 입장, 팬들의 기대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압력이 층층이 내려온다. 여러가지 요구사항, 여러가지 격려, 각종 지표, 각종 시선, 각종 기대, 각종 우리가 모르는 그 모든 것들이 이때 모두 왕하오의 몸에 집중되어 있고, 그의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왕하오의 경기장에서의 여러가지 표정은 솔직히 말해서, 필자가 보는 과정에서도 우려를 해야 했다. 그는 이를 악다물기도 했고, 손바닥을 뼈가 으스러져라 치기도 했으며, 쥐고 있던 음료수병을 찌그러뜨리기까지 했다.

가련할 정도이다.

누구든지 알고 있다. 탁구는 중국에서 특수한 운동종목이라는 것을 누구도 그것을 정치와 갈라서 얘기할 수 없다.

1950,60년대에 자그마한 탁구공으로 신중국은 세계적인 영광을 얻어낸다. 중국인민이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1970년대, 이 자그마한 탁구공은 큰 공을 굴려서 미중간 수십년간 닫혀 있던 문을 열 수 있었다. 이 자그마한 탁구공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각국인민과의 우의를 다질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개혁개방시기에 접어들면서, 이 자그마한 탁구공은 세계 다른 나라에서 흔들 수 없는 은빛장성을 만들고 세계패주로 군림하게 만들었다.

이런 이야기는 책으로도 펴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영예감이 이미 중국인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버렸다는 것이다. 중국탁구관중의 마음 속에서 그것은 확실히 보통의 스포츠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인민이 자부심을 획득하는 장성불쇠(長盛不衰)의 보루이다.

필자는 청두(成都)에서 개최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혼합단체전의 현장에 간 적이 있다. 느낌으로 그것은 스포츠경기현장이 아니었다. 애국주의교육기지였다.

그곳은 국기를 흔들고, 미친 듯이 소리치며, 스스로를 놓아버리고, 또한 주류매체가 주목하고 지지하는 장소였다. 또한 매번 미친 듯이 소리치는 응원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 중국팀은 결국 개선곡을 소리높이 울리면서 승리를 거둔다.

청두는 그저 구석진 곳이다. 필자는 세계의 그 어느 지방에서 거행되는 탁구계의 중요행사든 리우데자네이로, 런던, 도쿄, 파리, 두델도르프, 부다페스트, 휴스턴, 부산등등, 결승전이 열리면 반드시 중국인이 관중석을 꽉 채운다. 반드시 오성홍기가 나부끼고, 노랫소리와 사람들의 함성이 경기장 지붕을 뚫을 기세이다.

만일 중국인의 민족자부심을 느끼고 싶다면, 세계의 그 어느 지방에서든 열리는 탁구경기의 결승전현장을 가보면 된다.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것이고, 충분히 소리치고 즐기게 해줄 것이다. 다 보고나면, 가슴 속에는 행복과 자부심을 충만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천말로 하자면 타이하이(胎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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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중국탁구가 계속 승승장구하는 원인을 연구해본 바 있다.

어떤 사람은 거국체제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중국인의 체질구조, 대뇌피층구조때문이라고 한다.

모두 맞지만 모두 틀렸다.

필자가 보기에 중국인은 모방을 잘하고, 열심히 연습하여 정교하게 다듬는다.

"봉쇄훈련"이라는 말은 오래되었고, 지하에 여러 해동안 묻혀 있었다. 그것을 다시 끄집어 낸다면 호미로 며칠을 파내야 비로소 문화재가 될 것이다.

다만, 이 말은 아직도 쓸모가 있다.

파리올림픽전에 중국탁구팀은 청두에서 "봉쇄훈련"을 했다. 이건 정말 봉쇄였다. 매체가 그렇게 발달한 청두에서, 그 어느 기자도 그들의 훈련현장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기실 이건 중국운동선수들이 큰 경기를 맞이하기 전의 전통적인 방식이다. 거국체제의 중요구성부분이며 장점을 발휘하는 측면이다.

중국운동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은메달을 따내는 많은 종목은 모두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

표준적인 중국특색이다.

비록 세계는 이미 정보화시대에 접어들었고, 세게의 어떤 구석도 바로 순식간에 세계가 주목하게 만들 수 있으며, 세계의 모든 경기는 라이브를 통하여 하나하나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운동종목에서 비밀무기(기재(器材)와 운동선수 포함)에 의존하여 승리를 거두는 방식은 이미 끝난지 오래이다.

다만 우리는 여전히 전통을 계승하여 '봉쇄훈련'을 한다.

무엇을 훈련하는가?

계속하여 비밀이었고, 절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필자는 자신의 그다지 총명하지 않은 대뇌로 그저 추측해볼 수 있을 뿐이다.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가? 그것도 얘기해줄 수 없다.

청두의 훈련기지에 있는 한 요리사가 부지불식간에 털어놓은 한 마디는 반드시 깊이 반성해야할 점이라고 본다.

그 요리사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탁구팀이 청두에서 봉쇄훈련하는 기간 육류식품의 공급은 모두 비행기로 운송해왔고, 청두 현지의 것을 먹지 않았다.

당연히, 필자는 이것을 흥분제검사를 통과하기 위한 안전상의 고려때문이고 정상적인 범위내라고 이해한다.

다만 이런 일을 통해서, 최소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국가영예을 위하여, 국구의 영예를 위하여, 국가가 얼마나 많이 신경쓰고 있는지이다.

몇몇 출전하는 운동선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전문가팀들이 도와주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체력훈련을 시키고,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기술지도를 책임지고,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다른 선수를 모방해서 훈련대상이 되어주고,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운동상처의 치료를 책임지는지, 그리고 다른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들까지.

어떻게 말하든, 중국선수의 훈련수준은 세계최고이다. 이건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이 종목 운동의 모든 동작, 기술은 수백수천개의 요소로 나눌 수 있고, 수천수백개의 요소는 전문가들이 분해해서 가르친다.

그래서, 중국국가대표팀의 운동선수들이 결승전에 올라갔을 때의 심리상태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분명 무수한 점수가 뒤쳐지는 상황을 겪었고, 핵심포인트를 따내는 상황에 대한 모의훈련을 거쳤기 때문이다.

운동경기장에서 나타나는 모든 상황은 기실 극본을 반복적으로 훈련한 이후 현실에서 재연된 것일 뿐이다.

현장의 관중은 그저 깃발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기만 하면 된다.

기실 이런 것들은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중점이 아니다.

중점은 국구라고 불리는 탁구가 기실 전체 기술발명, 기재(器材)발명방면에서 그다지 독특한 점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것은 그저 모방했을 뿐이다. 국가의 지원을 통해, 현대과학기술, 인재선발과 우리의 전통적인 힘들게 고생하면서 땀흘리는 기초 위에서, 오랫동안 연습해서 잘하게 된 것일 뿐이다. 같은 분야에서 네가 100번 연습하면, 나는 10000번 연습한 것이다.

같은 기술은 너도 할 줄 알고, 나도 할 줄 알지만, 내가 더 숙련되었다.

먼저 기재(器材)를 보자. 국구라는 중국탁구팀에 모든 운동선수들이 쥐고 있는 무기는 왕추친(王楚欽)의 그 발에 밟혀 부러진 무기를 포함해서 모두 국산이다. 모두 세계에서 몇개의 큰 탁구기재생산회사의 것이다. 바닥판에서 고무까지 연구개발하고 제작하고, 운영하고 판매하는 것은 모두 몇개의 국제적인 기재생산회사들이 독점하고 있다. 중국운동선수는 기것해야 그들의 선전하는 좋은 거리가 될 뿐이다. 시험할 때의 참고용으로.

다시 기술을 보자. 탁구에서 사용되는 각종 기술은 모두 중국인이 발명한 것이 아니다.

만일 체조처럼 동작 하나하나를 사람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다면, 탁구운동의 모든 기술동작에서 가장 이름이 많이 붙는 것은 구미의 이름이나 일본의 이름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느 점이 강한가?

강한 것은 모방능력이 뛰어나고, 힘들게 훈련하여 기술을 숙달하는 것이다.

이 동작을 네가 발명했는가? 상관없다. 내가 빨리 배우고 내가 너보다 100배 많이 연습하면 된다. 왜냐하면 나의 뒤에는 강력한 자원과 실력으로 받쳐주고 있으니까

당연히 중국선수도 기술동작에서 우연히 새로운 발명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스카이서브나 뒷면을 이용한 백핸드어택같은 것이다. 다만 현재의 중국운동선수들은 이런 기술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백핸드어택같은 것은 프랑스의 안경잡이 르브론이 숙련되게 사용한다.

중국팀에는 또 다른 몇 가지 '발명'이 있다. 다만 국제탁구연맹에서 금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서브할 때 가로막아서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든지, 서로 다른 러버에 같은 색깔을 입히는 것이라든지.

왜 그런지는 몰라도, 중국은 탁구라는 종목에서 수십년간 세계를 훨씬 앞서갔다(遙遙領先).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은 화웨이를 떠올리고, 중국고속철을 떠올리겠지만.

왜 외국선수들은 모방이 불가능한가. 왜 외국선수는 중국선수만큼 숙달되게 할 수 없을까?

탁구를 제패하는 배후의 원인은 혹시 그것이 전체 경제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까? 전체 경제발전을 이끄는 산업이 될 수 없기 때문일까? 다른 사람은 그다지 중시하지 않기 때문일까. 화웨이등의 전자제품이 세계를 독패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런 거대한 시장을 내주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탁구는 바로 수십년전의 화웨이나 고속철이 아닐까?

3

2022년 아직 마스크를 끼고 있을 때, 청두는 성공적으로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치른 바 있다.

이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위하여, 유치부터 조직, 준비까지 그리고 거행까지 청두는 많은 심혈과 열정을 기울였다.

청두는 왜 이렇게 했을까?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도시 이미지를 제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청두를 스포츠경기를 개최하는 유명도시로 알릴 수 있는 모범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탁구경기이지만, 탁구수퍼리그에 대하여는 각지방정부가 그다지 열정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치대로라면 탁구는 중국의 소위 국구이고, 중국선수는 탁구분야에서 세계를 질타한다. 중국의 탁구수퍼리그도 마땅히 잘 나가고 모든 사람이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탁구수퍼리그를 얘기하자면, 현재 탁구계의 장문인 류궈량(劉國梁)은 가슴아픈 눈물을 흘릴 것이다.

수십년간 운영해온 탁구대회이지만 지금은 갈수록 계륵(鷄肋)이 되어가고 있다.

류궈량의 첫번째 눈물은 당당한 중국탁구수퍼리그가 자주 스폰서가 되어줄 기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폰서가 되어 이름을 거는 비용이 많지도 않다. 축구리그와 비교하면 자잘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런 자잘한 금액의 스폰서입찰마저도 자주 유찰된다. 중국탁구협회는 여러가지 수법을 동원해 보지만 목소리만 컸지 효과는 별로 없다. 이미 여러 차례 유찰을 겪었다. 이제 중국탁구수퍼리그는 스폰서없이 진행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류궈량의 두번째 눈물은 2022년 중국탁구협회가 새로운 정책을 내놓아, 세계랭킹 50위내의 각국선수들이 중국으로 와서 탁구수퍼리그에 참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류궈량이 이 결정을 내릴 때는 자신만만했다. 그는 세계의 여러 경기장에서 중국팀이 금메달, 은메달을 따는 장면을 보는데 익숙했고, 세계의 경기장에서 중국팬들이 깃발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는 열정을 보는데 익숙했다. 그는 아마도 대문을 열면 세계의 최고수선수들이 몰려들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난감한 상황이 초래된다. 새로운 정책을 발표한지 여러 날이 지나도록 세계의 유명선수들 중 한명도 신청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류궈량의 체면을 완전히 구겨버렸다.

다른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다. 내가 왜 너희의 그 리그에 참가해야 하는가. 관중도 적고, 상금도 적은데, 그저 중국선수의 훈련파트너로 생각하는 것인가.

더욱 류궈량을 난감하게 만든 일은 중국탁구와는 세계에서의 지위가 확연히 차이나는 독일과 일본의 탁구리그는 잘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하리모토 토모카즈(張本智和, 일본탁구선수)는 독일리그로 갔고, 린윈루(林昀儒, 대만의 탁구선수)도 독일리그로 갔다. 중국의 선수 허우잉차오(侯英超), 하오솨이(郝帥), 저우위(周雨), 허줘자(何卓佳), 장뤼(張瑞)는 일본리그로 갔다. 최신 소식에 따르면, 중국탁구팀의 량징쿤(梁靖崑)과 린까오위안(林高遠)이 독일리그를 뛴다는 것이다. 류궈량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그럼 무슨 방법이 있을까? 중국탁구수퍼리그에는 류궈량이 흘린 세번째 눈물이 남아 있다. 그것은 각 대도시에서 이 시합을 유치하는데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관중도 적다. 심지어 관중을 조직해서 현장에 데려가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탁구대국에서 탁구수퍼리그가 시골수퍼리그로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크게 의문을 지니고 있다. 중국인이 사랑하는 것은 이 운동이 아닌게 아닐까? 사랑하는 것은 그저 외국을 이겼다는 자부심이 아닐까? 사랑하는 것은 오성홍기를 흔들고, 노래를 부르는 열정적인 장면만이 아닐까? 지방지도자들이 사랑하는 것은 이 운동이 도시의 이미지제고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탁구팀의 지도자들이 사랑하는 것은 금메달을 많이 얻어내서 나라를 빛내고, 지도자를 만족시키고, 군중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상하지도 않다. 경기스포츠 자체로서의 수퍼리그는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알겠다. 중국에서 탁구는 탁구가 아니라, 탁구는 중국심(中國心)이다.

그렇다면 알겠다. 왜 중국탁구팀이 현재 기술도 단일하고, 기재도 대동소이한지. 전 국가대표님코치인 쉬샤오파(許紹發)이 왜 우려의 목소리를 냈는지.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다.

탁구의 장문인이 더욱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 운동의 발전이 아니다. 그저 더 많은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금메달을 딴다는 것이 유일한 표준이다. 그래서 양면반교(兩面反膠)만이 금메달을 따낼 수 있다. 무슨 커트, 백핸드, 스트레이트 이런 기술로는 아예 금메달을 딸 수가 없다. 그저 몇몇 구색을 맞추는 정도로만 양성해두면 된다.

여기까지 얘기했으니, 약간의 면을 할애하여 소위 탁구계의 "팬층"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필자는 한 가지 현상을 발견했다. 소위 '팬문화'에 대하여 중국탁구팀의 태도는 아주 기괴하다. 한편으로 각종 경우에 아주 엄정하게 팬문화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계속하여 팬문화를 억제하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탁구수퍼리그에 보러가는 관중이 없을 때는 팬이 필요하고, 소위 팬경제를 극력 제창한다. 그때는 팬이 마치 무슨 긍정에너지의 좋은 것이 된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팬들이 혼란을 불러오고, 탁구의 시합질서를 흐트리게 되면 다시 엄정하게 팬문화에 대해 분노한다.

한번 조사해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탁구수퍼리그의 흥행을 도와주는 긍정에너지팬과 질서를 교란하는 부정에너지팬은 같은 사람이 아니던가?

한 가지는 있다. 팬이라고 하더라도 그 행위의 동력은 아주 기괴하고, 아주 다양하다. 많은 경우는 감정적이고 어떤 경우는 확실히 이성의 범위내가 아니다.

다만 필자는 생각한다. 그들의 행동 자체가 현장에서 위법위규한 상황만 초래하지 않는다면, 관방여론 내지 공안역량까지 동원하여 이들 팬문화를 억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오만이고 무례이다.

예를 들어, 올림픽 여자단식결승때, 더 많은 현장관중들은 쑨잉샤를 응원하는 표어를 내걸었다. 어떤 운동선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고, 정상적인 일이다. 탁구는 하나의 운동이고, 누군가 그 중의 어떤 운동선수를 좋아할 수 있다. 현장에서 즉각적이고 명백한 위험만 초래하지 않으면 설사 천멍이 외국인처럼 미움을 받더라도 뭐 그다지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질책한다. 두 중국팀의 선수가 결승에 참가했으면, 현장의 중국관중은 마땅히 둘 모두를 응원해야 한다고. 이건 다시 우리의 수십년간의 이슈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탁구경기가 운동현장인지 애국주의교육기지인지.

애국주의는 원래 자연적인 감정이다. 만일 열광적인 비이성과 격렿나 감정과 행동으로 나타난다면, 분명 위험하다. 그건 '특수한 팬층'이다.

중국탁구계의 팬문화가 형성된 원인은 아주 복잡하다. 그중에는 오랫동안 운동과 정치를 연결시켜온 것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발견했다. '팬문화'에 대한 한계는 기실 통일된 표준을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과거 어떤 여론은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의 중국인들이 과학자의 팬이 되지 않고, 나라를 빛내는 운동스타의 팬이 되지 않고, 화장기있는 오락스타들의 팬이 되다니 정말 세상은 말세라고.

이런 견해는 확실히 업종에 대한 차별적인 태도라는 점은 차치하고, 누군가 나라를 빛내는 스포츠선수의 팬이 되고, 그것이 조금 지나치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팬이 된 대상이 지도자가 원하는 그 선수가 아닐지라고 그게 비판받아야할 '팬문화'일까?

만일 사람들이 팬이 되는 대상의 이미지가 좋은 마룽이거나, 팬의 대상이 수도대왕(水稻大王) 위안룽핑(袁隆平)이라면, 동시에 팬이 너무 열정적이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여 행동이 약간 과격하게 되었다고 하여 그것이 비판받고 배척받을 '팬문화'라고 말했을 것인가? 이걸 보면, '팬문화'에 대한 질책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팬문화' 자체를 필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일부의 소위 팬들은 정말 무뇌아인 것같다.

다만, 필자는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간단하게 팬의 그런 행위를 비판하고 질책하는 것은 일종의 권력의 오만이고 참월이라고.

그외에 국가대표탁구팀이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좀더 친화적인 방식으로 팬과 아이돌간의 더 많은 교류기회를 갖도록 하여 그들의 신비감을 없애고 사람들이 더욱 건겅하고 더욱 정상적으로 교류하게 할 수 없을까?

이들 체육스타들은 거고임하(居高臨下, 위에서 내려다보는)의 관방기질이 있다. 나라를 빛낸 건아라는 신성불가침의 이유가 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팬들과 교류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특히 바라기는 중국탁구가 하나의 순수한 스포츠종목이 되는 것이다.

특히 생각하는 것은 국가대표팀코치가 경기장에서 그렇게 긴장하지 않고, 곁에 서 있던 스웨덴팀의 코치 페르손과 마찬가지로 교사처럼, 시험원처럼 경기장에서 진지하고 엄숙하면 된다. 주먹을 쥐고 휘두를 필요도 없고, 목이 찢어져라 소리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탁구의 본질은 경기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경기종목과 마찬가지로, 창조력과 아름다움을 내보이는 것이지, 금메달을 내보이거나, 나라를 내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