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종고관금(縱古觀今)
사료로 보면, 영락제 주체(朱棣)는 확실히 건문제(建文帝) 주윤문(朱允炆)을 찾아내지 못했다. 당시 황궁은 불이 붙었고, 궁전이 모조리 불타버렸으며, 주윤문의 시체도 찾아내질 못했다.
그리하여 일련의 전설이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주체가 후기에 계속하여 주윤문을 수색했다고 하고, 정화의 7차에 걸친 하서양(下西洋)까지도 모두 주윤문의 행방을 찾기 위한 활동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 주체는 왜 요란하게 주윤문을 찾아다녔을까? 혹시 뭔가를 감추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었을까? 목적은 아주 간단하다. 세상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이다: 건문제는 내가 핍박해서 죽은 것이 아니고, 그는 아직 살아있다. 그저 민간에 도망쳤을 뿐이다.
그렇게 되면 시군살질(弑君殺侄)의 죄명을 덮어쓰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건문제가 실종되었기 때문에, 그가 어쩔 수 없이 황위에 오른 것이라고 할 수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명나라의 호적제도를 가지고 이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명나라의 호적제도는 아주 엄격했다. 유민(流民)은 일종의 치욕이다.
주원장은 세수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했다. 그리고 세수와 직접 관련된 것은 자연히 인구이다. 당시 모든 가정은 호구본이 있었다. 당시에는 호첩(戶帖)이라 불렀다. 여기에는 상세하게 모든 가족구성원의 성명, 수량, 재산등을 기록했다. 누구의 집에 재산이 얼마이고, 몇 사람이 있으며, 각각 뭐라고 부르는지는 호첩만 보면 바로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이갑제도(里甲制度)
나중에 주원장은 다시 이갑제도를 실행한다. 매 110호를 하나의 리(里)로 편제하고, 생산력이 비교적 강한 10호를 이장(里長)이라 불렀고, 나머지 100호를 10갑으로 나누었다. 1개의 갑에는 10호가 소속된다
환과고독(鰥寡孤獨) 즉 홀아비, 과부등 혼자사는 사람은 요역을 부담할 수 없었다. 자연히 일하러 나갈 필요가 없다. 다만 반드시 상세히 기록해야 하고, 매년 엄밀하게 조사를 받는다.
주체가 등극한 후, 인구조사를 다시 한번 실행할 수 있고, 주윤문이 민간에 숨어 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엄밀한 호적제도에 의해 드러났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호첩이 없으므로 어느 집에도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사유민(嚴査流民)
백성들은 주윤문을 위하여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집안에 숨겨주지 않았을 것이다. 호구는 조사를 하고, 일단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이 발견되면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게 될 것이고, 원래 호적이 어디에 있는지, 왜 이사를 왔는지를 추궁당할 것이다.
유민은 주원장이 보기에, 아주 부끄러운 일이기때문이다. 그래서 주원장은 유민을 아주 엄격하게 조사한다. 유민이 나타나면 바로 조사해서 층층히 보고되게 된다.
중이 될 수도 없다.
그 외에 주윤문은 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중이 되려면 자격증이 필요했다. 즉 도첩(度牒)이다. 도첩이외에 승려들도 호적에 편입된다. 만일 토지를 가지고 있으면 세금을 내야 하고, 토지가 없으면 요역은 필요없지만 반드시 기록해놓아야 한다. 그들을 기령(畸零)이라 부른다.
그래서 방대한 명나라에서 주윤문이 어디로 도망쳐 숨을 수 있겠는가? 해외로 나가지 않는 다음에야. 그러나 당시 해외로 나가기는 어려웠다. 배를 타고 해외로 가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명나라말기 이정국은 영력제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을 극력 반대했다.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면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주윤문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만큼 멍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체의 즉위는 합법적이지 않지만 합리적이었다. 주윤문이 아들을 데리고 도망쳤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주윤문은 주원장이 직접 정한 후계자이다. 주원장의 적법한 승계자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주체가 무력을 권력을 탈취한다면, 그것은 주원장의 스물 몇명이나 되는 아들들이 모두 무력을 권력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주체의 등극은 합법적이 아니다. 다만,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합리적이었다. 왜냐하면 주체는 남경성을 함락시켰고, 주윤문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룡무수의 상황하에서, 주체가 등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황태자(皇太子) 주문규(朱文奎)는 건문제가 건문원년 황태자가 된다. 연왕 주체가 쳐들어왔을 때, 그는 7살이었고, 행방이 묘연했다. 작은 아들 주문규(朱文圭)는 나이 2살이었다. 연왕 주체가 남경성에 들어온 후 그를 중도(中都) 광안궁(廣安宮)에 유폐시키고, 건서인(建庶人)이라 부른다. 명영종이 복벽한 후, 그는 아무런 죄가 없으므로 풀어주려고 한다. 좌우에서는 안된다고 말렸다. 그러자 황제는 이렇게 말한다: "천명을 받은 자는 스스로 되는 것이다." 대학사 이현(李賢)이 찬탄하며 말했다: "이는 요, 순의 마음이다." 그리하여 태후에게 청하여 내신 우옥으로 하여금 주문규를 내보내서 봉양에서 마음대로 거처하게 한다. 내시 20명, 비첩 10여명을 주어 그가 부리게 한다. 이때는 주문규가 뮤폐된지 57년이 되는 해였다."
주윤문에게 아들이 있었던가? 정말 있었다. 큰아들은 태자 주문규(朱文奎)이고 차남은 주문규(朱文圭)이다. 이 두 아들 중에서 합법적인 계승권이 있었던 태자는 마침 큰 불 속에서 실종된다. 이는 너무 기이하지 않은가?
차남은 살아남았다. 당시는 겨우 2살이었다. 그렇다면 이 차남을 황제로 세울 수 있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체가 등극한 것은 합리적이고 국가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
당시 남경성은 혼란스러웠다. 주윤문 혼자서 도망치는 것만 해도 이미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그가 태자까지 데리고 도망치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주윤문이 아들을 데리고 도망쳤더라도, 아예 남경성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더더구나 절로 들어가서 중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도망쳤을 가능성은 기실 크지않다고 본다.
주체는 왜 주윤문을 찾는 것처럼 했을까?
당시 주체는 아주 상심한 것처럼 행동했다. 주윤문이 큰 불에 타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주윤문의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필자는 의문이 하나 든다. 모조리 타서 새카맣게 되었는데, 어떻게 주윤문인 것을 알아본단 말인가? 황궁에는 황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위도 있다. 그래서, 새카맣게 탄 시신이 발견되더라도 그것이 주윤문이라고 확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체의 생각에 주윤문은 이미 죽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황제인 조카를 핍박해서 죽인 원흉이 된다면, 그것은 천하인들에게 질타를 받을 일이다.
자신의 명예가 조금이라도 적게 영향받게 하기 위해서, 주체는 당연히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주윤문은 기실 죽지 않았다. 그저 도망쳤을 뿐이다. 큰 불로 궁전이 모두 불에 탔지만, 주윤문이 불에 타 죽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태자 주문규를 황제로 세우면 되지 않는가? 그러나, 묘하게도 태자 주문규도 주윤문과 함께 도망쳤다. 그래서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주체는 할 수 없이 스스로 황제에 오른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황제가 되려면 반드시 순리를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나중에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저항에 부닥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주체는 자손들에게 골치거리를 남기는 셈이 된다.
결론: 필자는 주윤문이 이미 죽었다고 본다. 주체는 그저 허장성세한 것이다.
명나라의 엄격한 호적제도로 보면, 주윤문은 도망칠 곳이 없었다. 만일 그가 해외로 나갔다면 반드시 그럴듯한 선단이 있어야 했다. 최소한 대형선박이 한 척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이렇게 바다로 나간 기록은 당시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윤문은 남경성이 함락될 때 이미 죽었다고 믿을 수 있다.
주체가 주윤문이 죽지 않았다고 한 것은, 스스로 오명을 뒤집어 쓰기 싫어서이다. 이는 당태종이 현무문사변을 일으킨 후, 역사서에 "그들이 먼저 손을 쓴 것이고, 나는 그저 정당방위한 것이다!"라고 고쳐쓰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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