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정(丁丁)
제갈량의 임종전에, 개인의 후사에 대한 내용은 얼마 되지 않고, 많은 것은 촉한의 인사안배였다. 정치 방면의 후계자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 제갈량이 지정한 사람은 장완(蔣琓), 비위(費褘)이고, 사실상 동윤(董允)도 있다. 이들 3명은 제갈량과 더불어 "촉한사상(蜀漢四相)'으로 불린다. 그런데, 군사 분야의 후계자는 제갈량이 지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견해로는 제갈량이 가장 마음에 둔 사람은 강유(姜維)와 양의(楊儀)이고, 위연(魏延)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갈량이는 위연이 반란을 일으킬까봐 걱정했기 때문에 제갈량은 죽을 때 계책을 세워서 위연을 죽이고 촉한의 후환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반란을 일으키려고 생각한 자는 양의였던 것이다. 당연히 제갈량이 군사대권을 위연에게 넘기려고 했는지 아닌지에 대하여는 계속 논쟁이 있다.
기실, <제갈량전>을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위연도 좋고, 양의도 좋고, 아니면 나중에 진정 촉한의 군사대권을 장악한 강유도 좋고, 그들은 모두 제갈량이 염두에 둔 군사후계자가 아니었다. 제갈량이 군사대권을 진정으로 넘겨주려고 생각한 인물은 다른 사람이다. 그는 아마 모두 생각지 못한 인물일 것이다. 왜냐하면 <삼국지>이건 <삼국연의>이건 별로 많이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으로는 <출사표>에 이름이 나온다. 그가 누구인가? 그는 바로 장군 향총(向寵)이다.
모두 알고 있다. 제갈량은 중원북벌전에 후주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린다. 천여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출사표>를 읽어보면, 누구든지 제갈량의 촉한에 대한 충성심에 감동받을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제갈량이 후세인들에게 계속하여 칭송되는 근본원인일 것이다. 제갈량의 <출사표>는 주로 5가지 뜻을 품고있다, 첫째는 제갈량이 자신의 촉한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낸다. 그것은 하늘이 알고 해와 달이 안다는 것이다. 둘째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다. 그리고 국가의 통일사업에 대한 강렬한 바램을 나타낸다. 셋째는 후주 유선이 힘을 내서 국가의 앞날을 생각해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넷째는 이번 중원북벌은 두려울 것이 없고, 기꺼이 나아가서 죽을 결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섯째, 후주에게 미리에 중용할 수 있는 인재를 추천한다. 자신에게 만일 불행한 일이 생기면, 후주 유선은 그들을 중용하여, 국가의 안전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제갈량이 자신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한 후사처리이다. 그래서, <출사표>의 중점은 기실 제갈량 북벌후의 국가의 인사안배에 있다.
<출사표>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제갈량이 몇 사람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곽유지(郭攸之), 비위, 동윤, 향총의 4사람이다. 그중 곽유지, 비위, 동윤은 문관이다. 곽유지가 나중에 행방이 묘연한 것을 제외하고, 비위, 동윤은 모두 미래의 치국지재이다. 사실상 촉한 미래의 동량이다. 그런데, 향총은 제갈량이 언급한 유일한 군사장수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이러하다: 장군 향총은 성격과 행동인 숙균(淑均)하고, 군사를 잘 알며, 예전에 써봤을 떄 선제(유비)가 "잘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논의하여 항춍을 독(督)으로 추천했다. 신이 생각하기에 군사에 관한 일은 모두 그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러면 반드시 군대가 화복하고, 잘하는 자와 못하는 자를 적절하게 쓸 것이다. 제갈량의 향총에 대한 평가를 보면 주로 5가지이다: 첫째는 향총이 군사방면에서 뛰어나다는 것이다. 둘째는 향총은 이미 여러번 검증을 거쳤다는 것이다. 셋째는 향총은 유비가 인정한 장수라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넷째는 향총은 단합을 잘하고 군대를 잘 다스리며 어느게 좋은 것이고 어느게 나쁜 것인지를 잘 안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국가에 대하여 절대적인 충성심이 있다는 것이다. 제갈량의 눈에, 촉한정권내에서 그보다 뛰어난 자는 없다는 것이다. 그 글자의 행간에서 우리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제갈량은 자신의 이후 촉한의 군사지도자를 이미 안배해 둔 것이다. 바로 향총인 것이다.
그렇다면, 향총은 어떤 사람인가?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사실상 향총은 명문집안 출신이다. 그는 촉한의 중신인 향랑(向朗) 형제의 아들이다. 222년, 유비가 동오를 정벌하는 이릉전투를 일으켰을 때, 향총은 유비 수하의 문아장(門牙將)으로 동정에 나선다. 비록 유비가 이릉전투에서 대패를 당하고, 각 군영이 참혹한 손실을 입지만, 유독 향총이 이끄는 군영만은 아무런 손실을 입지 않았다. 그리하여 유비의 주목을 끈다. 제갈량이 <출사표>에서 그가 선제의 칭찬을 받았다는 말은 기실 향총이 이릉전투에서 보여준 행동에 근거한 것이다. 유선이 즉위한 후, 제갈량의 추천으로 그는 도정후(都亭侯)에 봉해지고, 궁정숙위군을 지휘하는 책임을 맡는다. 실제로 수도방위사령관인 셈이다. 227년, 제갈량이 한중으로 북상하고, 나중에 북벌할 때, 향총은 중령군(中領軍)에 임명된다. 이를 보면, 제갈량은 시종 향총을 미리의 군사지도자로 배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수수께끼는 제갈량이 중원북벌한 후에 다시 발생한다. 제갈량이 미래의 군사후계자로 배양되었던 향총은 234년,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병사한 후 아무런 소식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저 위연, 양의가 군사지휘권을 놓고 다투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투쟁의 결과는 위연이 피살되고, 양의는 좌천되며, 강유가 최종적으로 군사지휘권을 차지하는 것이다. 장완, 비위, 동윤은 차례로 정치대권을 차지하는데, 군사방면의 후계자인 향총은 소식이 없다. 촉한은 사관을 두지 않아서, 왜 향총이 최종적으로 제갈량의 군사지도자가 될 수 없었는지, 여기에는 분명히 우리가 모르는 어떤 비밀이 있을 것이다. 비밀이 무엇인지는 아마도 영원히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기실, 위연피살이 정말 제갈량이 생전에 계획한 것인지도 역사의 수수께끼이다. 향총이 제갈량의 군사후계자가 되지 못한 것을 보면, 우리는 누군가가 제갈량의 최종유언을 고쳐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지울 수가 없다. 삼국에서 왜 촉한의 역사에만 이렇게 수수께끼가 많을까? 표면적으로는 촉한이 사관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실제로는 촉한이라는 국가가 실제로 너무나 신기했고, 뭐든지 국가비밀이되고, 비밀로 인하여 국가는 사관을 두지 않은 것이다.
다만, 향총의 사적이 끝난 것은 아니다. 240년, 한가지구의 오랑캐가 반란을 일으킨다. 향총은 군대를 이끌고 가서 평정하는 과정에서 혼전중에 사망한다. 향총은 평상시에 인심을 얻고 있어서, 향총의 부하는 향총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힘을 다해 싸워서, 향총의 유해를 빼앗아 오고, 성도로 보내어 안장한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향총의 군사적인 영향력은 아주 컸었고, 부하들이 모두 받들어 모시는 정도에 이르렀으며, 향총은 직위가 무엇이고 승진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한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결국 전쟁터에서 전사하였다. 이를 통하여 제갈량의 향총에 대한 평가가 정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총이 이릉전투에서도 죽지 않았고, 북벌전투에서도 죽지 않았는데, 내란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죽었다. 아마 이것도 영원히 풀리지 않을 역사의 수수께끼일 것이다. 정말 신기한 나라이다.
다만, 비록 제갈량이후, 향총이 제갈량의 군사방면의 후계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제갈량이 가장 마음에 두었던 인물이 향총이고, 향총을 배양하여 자신의 군사후계자로 삼으려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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