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복녕객(福寧客)
팔진도전설은 삼국시대때 제갈량이 만들었다는 하나의 진법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제갈량은 적을 맞이할 때 돌맹이로 석진을 쌓아서, 둥갑으로 생(生), 상(傷), 휴(休), 두(杜), 경(景), 사(死), 경(驚), 개(開)의 8개 문(門)을 만들어 변화가 많아서, 10만정병을 막아낼 수 있었으니, 무적의 진법이라고 할 만했다고 한다. 제갈량의 "팔진도루(八陳圖壘)"는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영얀궁 남강탄에 있다고 한다. 바로 금단 유림진 동남쪽의 대로서촌과 소로서촌이다. 수백년의 변화를 겪어서 '팔진도촌락"은 일찌감치 옛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제갈량의 팔진도는 비록 아주 유명하지만, 현재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삼국지>의 기록은 아주 간략하다. 후세의 대군사가들이 비록 계승하고 발휘했지만, 얼마나 진실성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삼국지.제갈량전>에 진수가 편집한 <제갈량집목록>이 잇는데, "팔진도"라는 장은 보이지 않는다. 진(晋)나라대 황제는 명을 내려 한 사람에게 제갈량의 병법을 익히게 하였는데 익혔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삼국연의>를 보면, '팔진도'는 너무나 신비스럽게 그려져 있다. 미궁처럼 적이 생문사문을 찾지 못할 뿐아니라, 육정육갑의 신력도 있는 것같다. <양가장>등 평서에도 여러가지 진법이 나오는데, 마치 사전에 어느 한 장소를 찾아서 진을 펼치고, 적이 오면 깨고, 적이 오지 않으면 깰 수가 없다. 마치 옮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조영웅전>의 황약사와 황용은 팔진도를 알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김용이 써낸 것은 여전히 설득력이 없는 미궁이다. 몇 개이 흙무더기는 비록 효과가 있었지만, 발로 차서 쓰러뜨리니 진법은 파해된 것이나 다름없이 된다.
필자는 인터넷에서 누군가 팔진도를 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식은 '전투대형'이라는 것이었다. 밤에 할 일이 없어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여러분들이 판단해 달라.
첫째, 팔진도는 비록 이런 이름을 가졌지만, 그것은 분명 "팔진(八陳)" 즉 8가지 전투대형일 것이다. 하나의 큰 방진으로 그 안에 8가지 변화가 있는 것으로 이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적군이 포워권내로 와서 진을 공격하도록 하는 것도 비록 있기는 하지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8면매복의 큰 진형을 펼치려면 필요한 병력이 너무 많고, 조작하기도 너무 불편하다.
둘째, 팔진도는 하나의 전투편제의 8가지 대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 8가지 대형은 각각 긴공, 포위섬멸, 철수, 행군, 주둔, 휴식...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일 것이다. 그때 그때 각각 다른 대형을 펼친다. 그리고 큰 전투에서 각 소대는 전투의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르거나 혹은 서로 같은 대형을 만들어 서로 협력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필요하면 대형을 바꾸어 최선의 효과를 낸다.
셋째, 대형의 편제방법은 충분히 각종 병기의 운용과 인력의 협력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매 대형에는 몇몇 장창수를 배치하고, 몇몇 궁전수를 배치하고, 몇몇 패도수를 배치하고, 몇몇 보병을 배치하고, 몇몇 기병을 배치하는 등이다. 서로 다른 대형에서 각각 무슨 위치에 가 있어야 하고, 무슨 임무를 완성해야 하는지 등을 정해준다.
넷째, 이런 팔진도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숙련되게 훈련받고, 엄정한 기율이 있으며, 효율적인 통신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신축성있는 지휘가 필요하다. 그중 하나라도 없으면 안된다.
다섯째, 이런 팔진도의 기본원칙은 한 명의 병사가 여러명의 병사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하나의 화살이 몇 대의 화살을 막아내는 것이다. 동시에 사병들로 하여금 쉬고 싸우고 하는 것을 적절히 배합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하여 최대한 인력물력을 아끼고 효율을 발휘하는 것이다.
여섯째, 이런 진법은 설계에서의 난이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어느 정도 아이큐가 되고 학문이 있는 사람이면 설계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난이도는 훈련과 응용에 있다. 수만 내지 십만명이 숙련되게 이 대형변화를 익히고, 전투에서 제대로 사용하며, 지휘를 따르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반드시 장기간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장군은 손안에 있는 일너 진법을 사용하려고 해도, 상당한 노력을 드려야만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일곱째, 제갈량 본인의 실행을 보자. 그가 병력을 쓰는 후반기를 보면 팔진도의 위력은 최고도로 발휘되는 것같다. 위나라병사들은 감히 나와서 그와 싸우려 하지 않았다. 싸우면 반드시 졌다. 다만 팔진도의 위력은 마치 정면대결과 방어에서만 사용되었던 것같다. 엄밀히 대치하며, 나와서 싸우려 하지 않는 적에게는 효과적인 진격수단이 없었다. 제갈량은 당시에 격장법등 수단을 써봤지만, 사마의가 나와서 싸우지 않으니 그는 여전히 방법이 없었다.
여덟째 팔진도는 그다지 신비할 것도 없다. 아주 뛰어난 자원배치와 배치이동수단이다. 병법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것은 아주 적은 일부분이다. 육전에서의 교전에 적합하다. 제갈량의 용병수단은 팔진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다른 방면에서도 독특한 연구가 있었다. 예를 들어, 공성에서 학소의 진창을 칠 때, 제갈량의 수단은 아주 풍부했다. 여기서는 일일이 언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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