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려평(劉黎平)
제갈량이 출도하기 전에, 유비에 관한 멋진 장면은 당연히 서서가 조조군을 격파한 것이다. 명사 서서는 선복(單福)이라는 가명으로 스스로 유비를 찾아온다. 그리고 유비의 군사참모가 되어 조조군에 두번이나 승리를 거둔다. 그리하여 조조가 그를 주목하게 되고, 서서의 진실한 신분을 알아내고나서 서서의 모친을 인질로 잡아, 서서를 조조군영으로 오도록 만든다.
유비는 겨우 쓸만한 모사를 한명 구했는데, 부득이 조조군영으로 보내야하게 되었으니, 당연히 안타까운 심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 보내는 것을 아쉬워했다. 서서가 말을 타고 떠나갈 때도 유비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심지어 말채찍으로 서서의 등을 가리는 나무를 가리키며, "나는 여기 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리고 싶다."고 소리친다. 바로 이때 서서가 홀연 되돌아와서 유비에게 와룡 제갈량을 추천한다.
<삼국연의>에서 서서는 유비를 떠날 때 비로소 제갈량을 추천했다. 그렇다면, 역사상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삼국지>의 제갈량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서서가 유비의 수하로 있을 때 이미 제갈량을 추천한다. "당시 선주(유비)가 신야에 주둔하고 있을 때, 서서가 선주를 찾아뵙고, 선주는 그를 기용한다." 그리고 만났을 때 서서는 유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갈공명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와룡이다. 장군께서는 보길 원치 않으십니까?" 그리하여 유비는 삼고초려하고 제갈량을 만난다.
이를 보면, 서서는 유비를 떠날때 비로소 제갈량을 유비에게 추천해준 것이 아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서서와 제갈량은 한동안 같이 일을 했다. 그러면 서서는 언제 유비를 떠났을까?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조조대군이 형주로 남하하며, 유비는 장판파에서 패주한다. 이때 서서의 모친이 살고 있던 곳은 이미 조조의 군대가 점령하였다. 서서는 어쩔 수 없이 유비에게 보고하고 떠나게 된다. 그때 이렇게 말한다: "원래 당신과 함께 패업을 이루려고 했는데, 내가 가진 것은 바로 이런 진실한 마음이다. 그런데, 지금 늙은 모친이 적군의 손에 있으니 마음이 어지럽다. 할 수 없이 중도에 떠나서 북방으로 가야겠다." 당시 서서와 함께 조조에게로 간 사람은 석도(石韜)도 있다.
서서와 제갈량이 한동안 같이 일을 하다가 서서는 조조에게로 간다. 당연히 주동적으로 간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조조가 고의로 그의 모친을 인질로 잡고 서서를 협박한 일도 없다.
소설과 역사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서서는 모친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비를 떠난다. 고대인들을 효를 중시했다. 그래서 유비는 서서가 떠나는 것을 용인했고, 조조도 서서가 오는 것을 모두 이해했다. 나중에 강유가 제갈량에게 간 것도 모친이 촉군이 점령한 지역에 있기 때문이었다.
서서가 유비의 수하로 있으면서 조조의 군대에 승전을 거둔 것은 순전히 소설적 허구이다. 그런 일은 없었다. 당연히 소설의 예술적 각도에서 보자면, 이는 고명한 수법이다. 서서가 등장한 것은 제갈량의 등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조조의 군대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하게 만드는 그런 군사조차도 숭배하는 제갈공명이라면 그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 것인가? 제갈량의 멋진 등장을 위하여 충분히 공을 들인 것이다. 앞으로 글을 쓸 때는 이런 수법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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