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명)

누가 방효유(方孝儒)를 죽였는가?

중은우시 2009. 12. 24. 19:34

글: 정만군(程萬軍)

 

영락제 주체가 방효유를 죽였다. 이에 대하여 역사상 아무런 의문도 없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의문이 남는다. 이 6살에 시를 지을 줄 알았던 하늘이 낳은 '독서인'이 재능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비명에 죽다니,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렇게 되었고,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방효유를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게 한 사건'은 그가 건문제(주원장의 장손)의 황위를 보전하게 하기 위하여, 반란을 일으켜 황제위를 찬탈한 연왕 주체(주원장의 아들)의 등극조서의 초안을 작성하기를 거부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책형(刑)을 당하였을 뿐아니라, '십족을 멸한다' 왜냐하면 방효유가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락제는 '구족'을 멸하는 전통적인 기록을 깨고, 혈연관계가 없는 제자들까지도 한꺼번에 죽여버렸다.

 

아무도 방효유의 절개를 경시할 수 없다. 중국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문인은 아주 드물다. 삶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문인은 방효유를 조소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방효유의 희생은 죽을 자리에서 죽은 것인가, 아니면 그냥 쓸데없이 죽은 것인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이슈이다.

 

방효유는 주윤문(건문제)가 황제위의 적법한 승계인이지, 그의 숙부인 연왕 주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체와 주윤문은 하나는 주원장의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주원장의 손자이다. 원래 주원장은 황제를 훔친 대도적이다. 대도적의 손자의 합법성은 인정하면서, 대도적의 아들의 합법성은 부인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주원장의 아들이 황제가 되든, 손자가 황제가 되든, 대명의 신하와 백성들에게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명왕조는 주씨의 천하이다. 국가정권이 교체되는 것은 주씨집안의 집안일이다. 집안의 종으로서, 목숨까지 잃어가면서 지켜야할 것이 있단 말인가? 대대로 '방효유들'이 제왕의 '집안일'에 골머리를 싸매면서 고민하고, 총명한 재주를 다 쏟아붓고, 심지어 생명까지 바쳤지만, 이런 노력이 역사를 진보시켰는가?

 

방효유는 구천지하에서 알지나 모르겠다. 그의 죽음이 대명왕조에 아무런 진보도 가져다주지 못했다는 것을. 그가 죽은 후 500년동안 중국사회는 혁신과 진보가 없었다는 것을. 생산방식이든 상부구조이건 아니면 사람의 관념이건 모조리 본질적인 변화가 없었다.

 

인재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재는 사회와 인류역사에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큰 공헌인가? 그들이 목숨을 바친 도라는 것은 영원한 사상인가 아니면 변환된 이익인가?

 

암흑의 중세기에, 유럽의 계몽사상가들은 진리를 위하여 희생당했다. 동방의 오래된 대국의 재자들은 정력과 재능 그리고 목숨까지 모조리 '황제'에 쏟았다. 거기에는 자연과학도 없고, 사회과학도 없다. 있는 것은 '강권(强權, 강력한 권력)'과 '도리(盜理, 도둑의 이치)'이다.

 

'황제가 걱정하기 전에 먼저 걱정하고, 황제가 즐긴 후에 즐긴다" 옛황제의 권력을 위하여 죽음으로써 새 황제의 권력에 항거한다. 재자 방효유의 죽음은 비장하고, 참혹하지만, 무고하기도 하다.

 

방효유는 죽기 전에, 절명시를 하나 지은 바 있다: "하늘이 어지러운데, 누가 그 연유를 아는가. 간신이 계책을 세워서 나라를 악적에게 바친다. 충신은 분개하여 피눈물을 흘린다. 이제 군주를 위하여 죽을 뿐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다. 오호라 슬프도다 나를 위해 걱정말아라."

 

이 절명시는 한 유생이 순절의 길을 선택한 정신원천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유교에서 말하는 순군진충(殉君盡忠, 임금을 따라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한다)이다. 중국유학사에서 방효유식의 희생을 가르치는 '교의'는 수두룩하다. 유교가 독서인들에게 끼친 해악은 바로 독서인들의 재능을 다른데 쓰게 한 것이다. 그것을 '어용(御用)' 혹은 '우용(愚用)'한 것이다. 창조력을 '순절'의 동력으로 전환시켰다. 그런데 이 도는 주군의 도이지, 영원한 진리가 아니다.

 

이제 방효유를 죽인 숨어있는 살인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바로 통치자들이 자기 하고싶은대로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하고싶은 것을 시키는 멍청이들의 법이다. '공맹(孔孟)'의 기치를 내건 '유교'이다. 죽음의 길을 선택한 방효유는 이 도에 성공적으로 세뇌를 당한 사람이다. 이러한 '도'는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다. 사람에게 잡아먹히기도 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이 잡아먹으라고 내놓기도 하고, 심지어 자기가 자기를 잡아먹기도 한다.

 

더 심하게 얘기하자면, '유교는 대천재 방효유를 해쳤다' 경건한 유교의 신도라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결국 '양재(羊才)'이지 '낭재(狼才)'가 아니다. 방효유의 절개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복하게 하지만, 그의 '순절'은 이같은 양의 길이다. 양은 늑대가 양을 사랑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늑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늑대의 입안에서 죽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