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자룡)

<<삼국연의>>의 조자룡 나이에 관하여

중은우시 2008. 4. 2. 18:39

 

글: 사마평방(司馬平邦)

 

유덕화의 새 영화 <<견룡사갑(見龍甲)>>의 이야기는 나이 일흔이 넘은 촉한의 노장 조자룡(趙子龍, 趙雲)이 봉명산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이기 전후의 생명역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때문에, <<삼국연의>>원본을 여러번 뒤적여 보았는데, 그러다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조자룡의 나이가 일흔이 넘었다는데 대하여 의혹이 들게 되었다.

 

<<삼국연의>>에는 명확히 조자룡이 나이 일흔(年登七旬)인 노장이지만 제92회 "조자룡역참오장"에서 나이에 굴복하지 않고, 봉명산에서 서량의 대장 한덕부자 5인을 참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바로 촉한 건흥4년에 발생한 일이다.

 

그리고, 2년후, 즉 촉한 건흥6년에 제갈량은 한중에서 여러 장수들에게 연회를 베풀 때, 돌연 마당의 큰 나무가 바람에 부러지는 것을 보고는 조자룡의 명운이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과연 조자룡의 두 아들이 와서 부친상을 당했음을 아뢴다. 조자룡이 병사하니, 일대의 명장은 이렇게 떠나갔다.

 

건흥6년은 서기228년이다. 건흥4년에 조자룡의 나이가 일흔에 달하였고, 건흥6년에 죽었으니, 조자룡은 72세일 것이다. 이렇게 추정해보면, 조자룡은 서기156년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04회에서 '운대성승상귀천'에서 제갈량의 죽음이 건흥12년 8월 23일이라고 하였으니, 서기234년이며, 조자룡장군이 죽은지 6년이 지난 후이다. 이때까지 살았더라면 조자룡은 78세일 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제갈량은 겨우 54세였다. 즉, <<삼국연의>>에 따르면 조자룡은 제갈량보다 24살이나 많았다.

 

다시 책을 뒤져보니 제85회 "유선주유조탁고아"에서 유비가 백제성에서 죽은 것이 바로 촉한 장무3년인데, 바로 서기223년이다. 책에서 유비는 63살까지 살았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추정해보면, 유비의 출생년도는 서기160년이 된다.

 

유비, 관우, 장비에 조자룡을 더하여 도원결의를 한번 더 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자룡은 유비가 '사제(四弟)'라고 불렀고, 이들 세 의형제의 막내동생처럼 나타난다. 그렇다면, 조자룡의 나이는 유비, 관우, 장비보다 적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삼국연의>>에서 쓴 내용에 따르면, 조자룡의 출생년도는 156년으로 160년에 태어난 유비보다도 4살이나 많다.

 

관우가 동오의 손에 피살된 것이 건안2년, 즉 서기219년이다. 책에서 관우는 58세로 죽었다고 되어 있으니, 여기서 추정해보면, 관우도 161년에 태어났다. 장비는 부하를 채찍으로 치다가 보복을 받아 암살당하는데, 시간은 장무원년 즉,221년이다. 죽을 때 55세였다. 이로써 추정해보면, 장비의 출생년도는 166년으로 유비보다 6살이 적고, 관우보다 5살이 적다. 그런데, 이 유비, 관우, 장비의 나이는 모두 <<삼국연의>>에 나타난대로라면 조자룡보다 어리다.

 

재미있는 것은, 적벽대전이 서기208년에 발발하는데, 책에서는 적벽지전이 있기 전에 있었던 장판파(長板坡)에서 조자룡은 조조군의 진영을 칠진칠출하면서 신출귀몰하게 아두를 구해내는 전설적인 영웅의 행적을 보인다. 이 사건으로 조자룡 본인은 젊고 잘생겼으며 용감한 장수로 이름을 떨친다. 그러나, 156년에 그가 태어났다면, 적벽대전때 그의 나이가 이미 52세가 된다. 관우가 58세에 죽을 때 노장으로 불리웠는데, 52세인 조자룡에게 이러한 임무를 맡기는 것은 나관중이 너무 조자룡에게 가혹했던 것은 아닐까?

 

다만 <<삼국연의>>에서는 확실히 제92회에 조자룡의 나이가 일흔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그 많은 나이에도 뛰어난 공을 세웠다고 치켜세우고 있다. 책을 여러번 읽었지만, 조자룡이 갑자기 나이들어버린 것같은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제71회의 "거한수조운과승중"에서 조운은 아직 연부역강한 것으로 나온다.

 

어떤 사람은 <<삼국연의>>는 그저 소설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엄밀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나관중은 삼국시대의 혼란과 여러개인 연호의 순서등을 아주 잘 지켰다. 필자는 사서를 찾아보았지만, <<삼국연의>>에서 쓴 연호와 시간은 진정한 역사와 기본적으로 일치했다.

 

그런 점에서 조자룡에 대하여만 갑자기 나이를 손댔을 가능성은 적다. 조운의 수명은 <<삼국연의>>의 실수일까?

 

필자 개인적으로는 조자룡이 일흔이라고 한 것을 예순으로만 고치면 기본적으로 말이 될 것이라고 본다. 즉, 208년 적벽대전때 42살이면 아직 연부역강한 수준이고, 출생시간도 10년이 뒤로 밀려 장비와 같은 나이가 된다. 조조가 나중에 병으로 죽었을 때도 63세가 되는데, 이러한 수명은 <<삼국연의>>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과 비교하여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조조는 66세(154-220)까지 살았고, 손권이 71세(181-252)까지 살아서 장수군주에 속한다.

 

[참고: 이 문장의 작자인 사마평방은 모든 나이를 만으로 계산했는데, 통상적으로는 허세(虛歲, 만나이가 아닌 한국식 나이)로 보아, 조자룡의 생년을 158년으로 보고, 다른 사람들도 1-2년씩 뒤로 보는 것이 일반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