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회/중국의 대학

1930년대 중국대학의 학비

중은우시 2007. 5. 31. 12:46

1930년대의 중국대학은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첫째, 공립대학(國立, 省立, 部立대학을 포함함).

 

학비가 가장 쌌고, 그래서 합격하기 가장 어려웠던 대학이다. 청화대학, 북경대학, 북경사범대학, 교통대학 중산대학등 국가의 교육비로 지원하는 대학들이다.

 

둘째, '귀족대학'으로 불리던 교회대학

 

협화의과대학, 연경대학, 보인대학, 상해성요한대학, 호강대학등등이다. 이들은 서방국가(특히 미국)의 대학을 배경으로 하는 서양적인 교회대학이었으며, 거의 외국대학의 분교와 같았고, 학비가 아주 비쌌다.

 

셋째, 사립대학

 

기부금이나 기금을 받아서 만들거나, 중국인이 개인적으로 설립한 사립대학이다. 천진의 남개대학, 북경의 조양대학, 중국대학, 중법대학, 상해의 복단대학, 대동대학, 대하대학, 광화대학등이 그들이다. 이곳들의 학비는 위의 양자의 중간쯤이 된다.

 

1. 공립대학의 학비

 

1932년에 수정한 <<국립북경대학입학고시간장>>의 제14조에는 명문으로 규정해 놓았다.

 

북경대학의 학비는 매년 은원(銀圓)20원(圓), 두 학기로 나누어 매학기 개학전에 납부하여야 한다. 제1학기는 9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10원을 납부하고, 제2학기는 2월부터 6월까지로 다시 10원을 납부하여야 한다. 또한 체육비가 매학기 은원 1원이다. 즉, 북대학생은 매년 22원을 납부하여야 한다. 기숙사비는 무료이다.

 

1930년대의 청화대학, 북평의학원, 공학원, 법상학원등등의 학비는 북대와 기본적으로 같다. 국립상해상학원, 국립상해의학원등의 학비도 모두 매학기 은원10원으로 매년 20원이다. 이외에 기숙사비12원을 납부하여야 했다.

 

철도부소속의 교통대학(본부는 상해에 있고, 북평에 분교가 있음)의 학비는 매학기 20원으로 매년 40원이다.

 

또한, 1936년에제정된 <<국립북평사범대학학칙>>에 의하면, "본 학교는 학비 기숙사비를 받지 않음" "입학학생은 등록저차를 하는 외에 보증금 20원을 납부하여야 함" "본대학학생이 납부하는 보증금은 졸업시 반환함. 단, 자퇴학생 또는 학교에 의하여 퇴학당한 자에 대하여는 기납부한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음" 전국각지의 사범대학은 학비,기숙사비를 일체 받지 않았었다.

 

2. 교회대학의 학비

 

1934년에 수정한 <<연경대학본과교무규칙>>에서 비용납부에 관한 규정이 있다.

 

연경대학생은 매학기 반드시 등록시, 아래의 비용을 납부하여야 한다.

- 본과정식생 학비                       55원

- 특별생부급생 학비 (학점당)         5원(최저15원)

- 기숙사비(전기, 수도, 난방등)      20원

- 의료비(약값은 별도)                   2원

- 체육비                                      2원

- 잡비                                         2원

 

즉, 1930년대, 연경대학 본과학생이라면 매학기 81원을 내야 하고, 1년에는 162원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이외에 유명한 교회대학인 북경 보인대학, 상해 성요한대학, 호강대학 및 광주의 영남대학의 학비도 기본적으로 연경대학과 마찬가지로 매년 약 160원이었다.

 

3. 사립대학의 학비

 

천진남개대학의 경우 오대유교수의 회고에 의하면 "남개의 경비는 학비와 기숙사비가 주수입원이었다. 학비는 매년 60원, 기숙사비는 두학기 30원(매년 반드시 함께 90원을 납부해야 함), 이는 국립대학(예, 북경대학)의 학비 매년 약 20원과 비교하면 아주 높았다. 그러나, 교회대학(예, 연경, 영남등)과 비교하면 서민적이다"

 

북경사립평민대학의 학비는 제1학기 26원, 제2학기 25원이어서, 매년 51원이었다. 사립북평철도대학(사립철도학원)의 학비는 매학기 29원으로 1년에 58원이었다.

 

또한 1934년에 제정된 <<사립중법대학조직대강>>에 의하면 "중법대학의 본과학생은 매년 반드시 아래의 비용을 납부한다: (갑) 학비 전년 30원, 2학기로 나누어 납부하며, 매학기 15원임. (을) 실험비 매학기 5원, 부족하면 추가납부하고, 남으면 돌려준다. 이외에 반드시 보증금 10원을 납부하여야 함" 이 학교는 프랑스유학준비학교였다가 바꾸어 연 곳이어서 기숙사는 필요없었다. 그래서 학비가 비교적 쌌다. 합계 약 45원이었다.

 

1933년에 제정된 <<북평사립조양학원학칙>>에 따르면, 각과학생이 매년 납부해야 하는 비용이 다음과 같다: 학비기숙사비 52원, 강의비 10원, 도서비 2월, 제복비 2원, 체육비 2원, 신입생입학비 2원, 잡비 1원, 합계 71원

 

1934-1936년 상해시에서 가장 유명한 4곳의 사립학교는 학비가 비교적 비싸기로 유명했다. 왜냐하면 당시 상해의 물가가 전국에서 가장 비쌌기 때문이다. 복단, 광화, 대동, 대하가 받은 비용은 다음과 같았다.

 

복단대학 : 1년에 100원

광화대학 : 1년에 100원

대동대학 : 1년에 120원

대하대학 : 1년에  90원 (이상, 기숙사에서 생활하면 기숙사비는 별도임)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1930년대 중국의 대학학비상황은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공립대학은 매년 22원-40원이고, 사범계는 무상이었다. 사립대학은 매년 45원-120원으로 서로 차이가 있지만, 평균으로는 개략 90원수준이었다. 교회대학은 약 160원이었다.

 

1930년대의 물가는 어떠했는가. 1929년-1930년에 진행된 사회조사보고서인 <<상해시노동자생활정도>>에 의하면, 1930년대초, 전형적인 노동자 4인가구의 매년평균생활비는 454은원이었다.

 

당시 보통노동자의 월급여는 통상적으로 16-33은원이었고, 평균은 약 22원이다. 매 가정은 반드시 2사람이상이 일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반노동자들이 아이를 대학에 보내려면, 국립대학이나 보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북경대학, 청화대학, 교통대학, 북경사범대학등이나 다른 사범대학이 그것이다. 1930년대의 북경대학, 교통대학, 청화대학과 북경사범대학에는 많은 노동자계층과 소시민가정출신들이 있었다. 이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사립대학이나 귀족화된 교회대학에는 노동자농민자녀가 다니기는 힘들었다. 특수한 경우도 물론 있었다. 청년 주은래가 남개대학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학비를 면제받았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 공립대학의 학비는 일반백성의 생활비에서 약 5-10%를 차지했다. 혹은 노동자 1달정도 평균급여에 상당했다. 귀족화된 '교회학교'의 학비는 일반백성의 생활비에서 35%정도를 차지했다. 즉 1/3정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2/3에 이르렀다고 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당시 교회학교들은 중국의 "정신귀족", "고등중국인"을 배양하는 온실이었고 ,북경대학, 청화대학 북경사범대학 교통대학은 "평민의식"이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