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보림(李保林) 명나라말기, 이자성이 이끄는 농만군은 270여년간 이어지던 명왕조를 무너뜨린다. 다만 북경에서 겨우 49일간 머물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많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남겼다. 특히 이자성의 사인(死因)은 몇세기의 논쟁을 거쳤지만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다. 그 원인은 주로 이자성이 죽을 때는 전쟁이 한창중이며, 대순군이 청군에 쫓겨 사방으로 도망쳐 다니면서 궤멸한 비상시기였고, 게다가 관방사서 및 일부 사적에 기록된 이자성의 사인은 믿기가 어려울 정도여서 이자성의 사인은 수수께끼가 되고 복잡다단하게 되었다. 1 이자성의 사인에 관하여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의 기록일 것이다: 순치2년 구월, 이자성은 패배하여 호북(湖北) 통성(通城)의 구궁산(九宮山)으로 물러난다. "스스로 20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