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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사회

"국가의인화": 아주 유해한 사고함정

by 중은우시 2024. 7. 7.

글: 예인(倪刃)

많은 중국인들은 "국가"라는 개념, 그리고 국제정치를 대할 때 항상 의인화하는 경향이 있다.

먼저, "어머니조국(祖國母親)"이라는 자조 볼 수 있는 칭호도 의인화된 것이다. 당연히 이 말은 우리가 그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중에 "의인화유치병(擬人化幼稚病)"이라는 것이 대표적인 전형이다. 의인화된 사고습관의 배후에는 "국가"라는 개념에 대한 오용(誤用)이 있고, 아주 해로운 사고함정에 빠진 것이다.

예를 들어, 가장 전형적인 표현은 이러하다 -- "국가는 이미 아주 힘들다"

여기에서 국가의 지향성은 아주 모호하다. 다만 사람과 같은 감정을 가진 것으로 대입하고, 또한 "개인이 국가를 골치아프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왜 여기의 "국가"는 지향성이 모호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확실히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이 도대체 우리 모든 사람으로 구성된 사회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정부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문화적인 의미에서의 국가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마도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건 너무 트집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냐고. 기실 여기의 '국가'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국가는 이미 아주 힘들다" "국가가 골치아프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에는 모두 요구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개인의 권리를 너무 많이 주장하지 말고, 국가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구사항도 있고, 그것은 모든 사람의 절실한 이익에 관련된다. 그렇다면 "국가"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무슨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는지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외에, 이런 말이 어떤 때는 일부 사람을 공격하는데 쓰인다는 것이다. 그때는 정치성과 이데올로기의 역량을 지닌다. 그래서 더욱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여기의 "국가"는 도대체 무엇인지를.

만일 여기의 국가가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내 생각에 이 말은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사회가 이미 아주 어렵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우리 모든 사람들이 같이 생활하고, 규칙이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조직과 개인간에는 상호이익을 취득하는 관계이다. 단독으로 사회가 어렵다고 한다면 그런 말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조직이 어려운지 아닌지는 얘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은 조직이고, 그것은 그저 관계네트워크일 뿐이다.

사회는 인류조직의 가장 광범위한 형식으로서 그저 중성적인 개념일 뿐이다. 사회를 의인화할 필요는 없다.

만일 여기의 국가가 "정부"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필자는 믿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국가는 바로 정부이다." 그러나 이건 아주 큰 오해이다.

대부분의 정치사상가의 견해와 정의를 종합해보면, 국가는 기실 하나의 사회계약조직이고, 국가구성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바로 국가의 집행기구이고, 하나의 업무기관일 뿐이다. 정부는 무슨 천연적인 숭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마땅히 감정을 투사해야할 이유도 없다.

이런 것들은 모두 상식이다. 그리고 우리가 중고등학교 정치과목에서 배운 내용이다. 만일 필자가 여기에서 국가, 정부의 정의를 "오명화(汚名化)"한다고 여긴다면, 그건 중고등학교때 정치과목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정부는 이미 아주 어렵다"는 말은 성립할 수가 없다.

정부는 업무기구로서, 어려운지 아닌지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부의 공무원과 지도자들은 모두 자신의 직무를 행사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만일 항상 감정을 대입하여, 마치 정부의 공무원과 지도자들이 일종이 희생이나 봉사를 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어쨌든 모든 사람이 바로 이 봉사자가 되고자 머리쳐박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정부 자체는 수입을 만들지 못한다. 납세자의 돈으로 정부의 운영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정부의 공무원의 일반수입과 복지는 보통사람보다 높다. 그래서 내 생각에 정부를 먹여살리는 납세자가 아마도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적인 의미에서의 "국가"라면, "아주 어렵다"는 말이 성립할까?

문화적인 의미의 국가는 기실 우리들 같은 토지위에서 생활하고, 유사한 문화와 관습을 가지고있어, 구심력과 응집력을 지닌 것이며 "민족"이라는 정의의 연장에 더욱 부합한다.

여기에서도 "아주 어렵다"는 것은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문화집단도 그저 유사성을 가진 조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생존은 조직구성원의 공동노력과 협력에 의존하고, 집단에 대한 보호행위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이 얘기했지만, 결론은 오직 하나이다. 어떠한 의미의 "국가"라고 하더라도, 모두 개인이 국가에 빚지는 것같은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그저 개인으로 구성된 중성적인 사회계약조직이기 때문이다.

만일 굳이 "국가가 이미 아주 어렵다"고 말하라면, 그 지향성은 단지, 일하는 사람들이 이미 아주 어렵다. 배달원이 이미 아주 어렵다. 농민이 이미 아주 어렵다와 같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국가의 구체적인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만일 굳이 허구적으로 구체적인 민중을 벗어난 "국가"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면, 그리고 그 이미지를 가지고, 국가가 힘들게 우리를 먹여살리고, 국가가 여러가지로 우리를 신경써주어서, 우리는 항상 국가에 빚을 지고 있다....라는 생각을 품게 한다.

그 배후에는 분명히 개인이익에 대한 지나친 침해가 들어 있고, 반드시 개인권리가 무시당하고, 수입과 복지같은 류의 댓가가 착취당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외에 원래 쉽게 부패가 발생하기 쉬운 권력과 "힘들게 일한다"는 의인화된 이미지가 결합되면, 더욱 쉽게 권력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행동하고, 민중으로 하여금 감사하도록 강요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