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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역사결의에 이름이 거명된 군대거물 장양(張陽) 자살의 수수께끼.

중은우시 2021. 11. 29. 19:35

글: 왕우군(王友群)

 

중공19기 6중전회에서 제3차역사결의를 통과시켰다. 거기에는 4명의 '군대호랑이'가 거명되어 있다: 전 중공정치국위원, 중앙군사위부주석 궈보슝(郭伯雄),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주임 장양(張陽), 전 중앙군사위 연합참모부참모장 팡펑후이(房峰輝).

 

그중 궈보슝, 팡펑후이는 군사법원에서 무기징역의 형을 받았고, 쉬차이허우는 판결을 받기 전에 병사했으며, 장양은 목을 매 자살했다.

 

2018년 8월 18일, 전 중공국가주석 류샤오치(유소기)의 아들인 류위안(劉源)은 <신경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양의 문제는 궈보슝, 쉬차이허우보다 심각하다. 장양의 사건관련금액은 거대하고, 정치부주임으로서 '오독구전(五毒俱全)'이다"

 

왜 류위안은 장양의 문제가 궈보슝, 쉬차이허우보다 심각하다고 했을까? 장양은 왜 자살을 했을까?

 

장양자살

 

2017년 11월 28일, 신화사는 뉴스를 내보낸다. 장양이 전 중앙군사위부주석 궈보슝, 쉬차이허우의 부정부패사건에 연루되어 8월 28일부터 조사를 받고있다가, 11월 23일 집안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같은 날 중앙군망에는 쥔정핑(鈞正平)의 글이 실린다. "장양은 죄를 지어 형을 받는 것이 겁이나 자살했다. 일찌기 지위도 높고 권력도 컸던 상장(上將)은 이런 부끄러운 방식으로 자신의 일생을 끝냈다." 글에서는 장양이 "막전과 막후에서의 행동이 다르고, 사람의 앞에서와 뒤에서의 얼굴이 다르다. 입으로는 충성을 외치면서 뒤로는 부정부패를 꾀했다. 전형적인 '양면인(兩面人)'이다" 그리고 연속하여 네 가지 "상실" 네 가지 "더러움"으로 장양을 형용했다. "장양은 자살의 수단으로 당기와 국법의 처벌을 피했고, 그의 그런 행동은 극히 악랄하다."

 

장양은 문혁이후 41년만에 처음 자살한 상장이다. 중공18대이래 처음 수사를 받은 재직중인 중앙군사위 위원이다. 중공19대이후 낙마한 최초의 '군대거물(군대호랑이)'이다. 시진핑이 반부타호운동을 일으킨 이래 낙마한 7번째 중국상장이다.

 

장양은 무슨 죄를 저질렀는가?

 

2018년 10월 16일, 신화사는 "장양의 당적을 박탈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조사결과, 장양은 당의 정치기율과 정치규칙, 조직기율, 청렴기율과 국가법률법규의 규정을 엄중하게 위반하여 뇌물을 제공하고, 뇌물을 수수하고, 거액재산의 내력이 불명한 죄를 저질렀는데, 그 정상이 극히 엄중하고, 그 영향이 극히 악랄하다."

 

"장양은 당에 충성하지도 않았고, 성실하지도 않았다. 양면파로 양면인이었으며, 정치적으로 변신하고, 경제적으로 탐욕스러우며, 생활에서는 부화(腐化)했고, 품행은 저열하며, 당의 18대이후에도 전혀 그런 행동을 그치거나 줄이지 않았으며, 끝까지 기율을 어겼다. 결국은 자살의 방식으로 당기와 국법의 처벌을 회피하고자 했다."

 

그전에 중앙군사위는 이미 장양의 군적을 박탈했고, 그의 상장계급도 취소했다.

 

장양은 쉬차이허우의 적계인가?

 

중국정부에서 공식보도와 국내외매체의 보도를 보면, 장양은 확실히 쉬차이허우의 적계이다.

 

쉬차이허우는 오랫동안 장양의 직속상사였다. 1994년부터 2012년까지, 중앙군사위총정치부부주임, 상무부주임, 주임을 맡고, 군대정치공작을 주관하는 중앙서기처서기, 중공정치국위원, 중앙군사위부주석을 지낸다. 바로 이 기간동안 장양은 계속 발탁중용된다.

 

1996년초, 장양은 광저우군구 제42집단군 163사단 정위가 된다; 2000년, 제42집단군 정치부주임으로 승진한다; 2002년 제42집단군 정위로 승진한다; 2004년, 광저우군구 정치부주임으로 승진한다; 2007년 광저우군구 정위로 승진한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소장에서 상장으로 진급한다. 2012년 중앙군사위 총정치부 주임이 된다.

 

장양은 10년도 안되는 기간동안 소장에서 상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3년도 되지 않아 대군구급부직에서 정직으로 승진했다. 적지 않은 군대인사들은 이런 승진속도는 장양이 쉬차이허우에게 이익을 챙겨준 것과 중대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장양은 "장마대(張麻袋)"라고 불리웠다.

 

인민일보사가 발행하는 <환구인물>은 <자살한 상장 장양을 파헤친다; 마대로 돈을 받고 돈을 보냈다. 궈보슝, 쉬차이허우와 얽혀 있고 깨끗하지 않다>는 글을 싣는다.

 

그 글에서 한 군대소식통은 이렇게 말한다: "장양의 사건이 이렇게 영향이 큰 것은 원인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고위직에 있었다는 것이고, 둘은 악명이 높았다는 것이다. 그는 담량이 크게 돈을 거뒀고, 계속 뇌물을 바치면서 승진했다." 항간에는 장양의 별명이 '장마대'였는데, 그 뜻은 마대로 돈을 거두고 마대로 돈을 보내주었다는 것이다.

 

광저우군구는 장양의 근거지이다. <환구인물>은 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장양은 광저우군구에서 가장 나쁜 자도자라고 불렸고, 사람들은 일찌감치 그가 조사처벌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홍콩의 2017년 제49기 <아주주간>에는 <군대양면인 장양 자살>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번은 궈보슝이 이렇게 진술한 바 있다. 장양이 궈보슝에게 2,500만위안을 보냈으며, 친구집에 1,700만위안을 숨겨두었다고. 그는 또한 선전, 동관, 베이징드이에서 성매매를 했고, 친구들이 수십만위안을 지급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렇게 보도한 바 있다: 2017년 11월 25일, 장앙은 광저우의 한 호화빌라에서 군대측인원에게 수색을 당했고, 이 빌라와 물품은 몰수되었다.

 

장양자살의 의문점

 

첫째, 왜 집안에서 자살했을까?

 

신화사 보도에 따르면, 2017년 8월 28일부터 중앙군사위는 장양에 대하여 "조직과 담화를 나누고, 그가 궈보슝, 쉬차이허우등 사건과 관련된 단서를 조사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장양은 계속 집에 거주했으며, 11월 23일 오전, 장양은 집안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중공의 관례대로라면 장양같은 고위장군에 대하여 조사를 할 때면 마땅히 '격리조사'조치를 취한다. 일반적으로 군인들이 엄밀하게 감시하는 호텔이나 비밀장소에서 진행한다.

 

둘째, 어떻게 자살했는가?

 

홍콩의 <아주주간>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당시 군대기율검사위의 인원이 두번째 장양의 집에 도착했을 때, 거실에서 계속 그와 얘기를 나누며 조사했다. 장양은 온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먼저 침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겠다고. 그런데 거실로 계속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조사인원이 침실로 들어갔더니 목을 매어 죽어 있었다.

 

장양의 특수한 신분(전 중앙군사위위원, 중앙군사위정치공작부주임)을 고려하고 그가 이미 조사처벌받고 있는 궈보슝, 쉬차이허우와의 관계를 조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땅히 군인이 24시간 감시했어야 한다. 어찌 그가 혼자서 목을 맬 수 있는 기회를 준단 말인가

 

셋째, 왜 당매체가 공개적으로 보도하고 평론하는가

이전에, 중국은 장군이 자살했다는 소문은 아주 많았지만, 공식적으로는 확인해주지 않았다. 장양의 사후, 중국의 당매체는 장양이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했을 뿐아니라, 장양을 맹렬히 비판한다. 이건 무엇때문일까?

 

이상의 세 가지 의문점을 보면, 장양의 죽음은 배후에 더욱 깊은 내막이 있을 수도 있다.

 

장양은 왜 자살했을까?

 

2016년 5월 발행된 <시주석의 국방과 군대건설 중요논술독본(2016년판)>에는 이런 말이 있다: "궈보슝, 쉬차이허우의 부정부패문제는 놀라울 정도이다. 다만 이것이 그들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그들이 정치적 레드라인을 범했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이 말은 장양에게도 적용된다. 장양문제의 핵심은 "엄중하게 당의 정치기율과 정치규칙을 위반한 것"이다.

 

홍콩의 <동방일보>는 이렇게 평론을 올린 바 있다: "중공18대전에 해방군고위층인사배치에 관하여, 쉬차이허우와 궈보슝간에는 묵계가 이루어져 있었다. 두 사람의 계산 속에 장양이 18대에 중앙군사위위원, 총정치부주임으로 승진하고, 19대때 중앙군사위부주석으로 승진하여 쉬치량(許其亮)의 후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궈보슝의 최고심복인 팡펑후이가 총참모장이 되고, 19대이후에 판창룽(范長龍)의 후임이 되어 중앙군사위부주석이 되는 것이다. 궈보슝, 쉬차이허우 두 사람은 이런 계획을 세웠지만, 시진핑이 취임한 후에 먼저 쉬차이허우, 궈보슝을 수감하고, 다시 팡펑후이, 장양으로 하여금 궈보슝, 쉬차이허우에 맞서도록 압박했다."

 

"다만, 장양은 중앙군사위에 대하여 계속 쉬차이허우와의 진실한 관계를 숨기고, 쉬차이허우와의 교류한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쑨정차이(孫政才)등 일부 음모가들과 결탁하여 중인변경에서 대치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19대이전에 비유혈혁명을 발동하려 했다.

이 평론도 어느 정도 이치에 맞는다.

 

중공은 역대이래로 군권을 중시했다. 장쩌민이 중앙군사위주석을 맡고 있을 때, 궈보슝을 발탁하여 중앙군사위부주석에 앉히고, 중앙군사위주석에서 물러나기 전에 쉬차이허우를 발탁하여 중앙군사위부주석에 앉힌다. 장쩌민이 명의상 퇴임한 후에도 그의 두 심복인 궈보슝, 쉬차이허우를 통하여 중앙군사위주석 후진타오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실제로 군권을 장악했었다.

 

2012년, 궈보슝, 쉬차이허우가 퇴임하기 전에, 장쩌민은 분명 미래 군권을 계속 장악하기 위하여 인사에 관여했다. 궈보슝이 발탁중용한 팡펑후이, 쉬차이허우가 발탁중용한 장양은 아마도 가장 중요한 후보들이었을 것이다.

 

다만, 시진핑의 반부타호와 군대개혁은 장쩌민의 계획을 흐트려 버린다. 비록 군대개혁후에 장양이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주임을 맡고, 팡펑후이가 중앙군사위 연합참모부 참보장을 맡았지만, 시진핑은 전 중앙군사위 4총부를 15개 직능부문으로 나누어, 장양과 팡펑후이의 권한을 약화시킨다. 시진핑은 장양, 팡펑후이와 궈보슝, 쉬차이허우의 부정부패간의 관계를 계속 조사했고, 결국 장양과 팡펑후이가 19대이후 중앙군사위부주석이 될 가능성은 물거품으로 끝난다. 이런 상황은 장쩌민의 군대내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키게 된다.

 

장양이 집안에서 '조사확인'을 받은 이유를 분석해보면 필자는 4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 장양은 시진핑이 중앙군사위주석을 맡은 후의 18기 중앙군사위위원중 한명이다. 시진핑은 이번 군사위의 '반장'이고, 장양은 '반원'이다. 시진핑이 중앙군사위업무를 주재하는 많은 중대한 사항에 장양도 참여했다. 장양은 또한 전군의 고전정관철집행공작회의정신영도소조의 조장을 겸하기도 했다.

 

둘째, 쉬차이허우, 궈보슝이 체포된 후, 장양은 여러번 공개적으로 의사표명을 하며 궈보슝, 쉬차이허우와의 관계를 끊었다. <신경보>기자의 통계에 따르면, 장양은 최소한 13번 공개적으로 쉬차이허우를 비판했다.

 

셋째, 중국의 반부패관례에 따르면, 쉬차이허우, 궈보슝같은 큰사건이 발생한 후, 사건관련자가 적극적으로 진술하거나 장물을 반환하면 가볍게 처벌한다. 장양이 쉬차이허우, 궈보슝에게 뇌물을 건낸 문제는 아마도 장양이 중앙군사위에 진술하고 뇌물을 반환하는 행위를 했을 것이다.

 

넷째, 쉬차이허우 궈보슝은 전체군에 미친 영향이 너무 크다. 장양의 문제는 장양이 협조만 잘해주면 아마도 시진핑이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시진핑이 장양, 팡펑후이를 조사하기 전에, 2017년 6월 18일부터 8월 28일까지, 중인변경지역에서 군사대치가 발생한다. 8월에 이르러, 군사대치는 계속 격화되고, 중국군대와 인도간에 전쟁을 벌일 것처럼 되었다. 당시는 중공19대직전이고, 시진핑은 분명 19대이전에 인도와 전쟁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중인변경이 긴장되고 있을 때인 7월 24일, 신화사는 보도를 내보낸다. 전 중공정치국위원, 충칭시위서기 쑨정차이가 엄중한 기율위반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당시 장양, 팡펑후이가 쑨정차이와 결탁한 증거가 드러났는지는 아직 증거가 부족하다. 다만, 전 중공국가주석 유소기의 아들 류윈이 말한 장양의 문제는 궈보슝, 쉬차이허우보다 엄중하다는 것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장양, 팡펑후이, 쑨정차이는 아마도 '정변'음모에 가담한 것일 수도 있다.

 

홍콩의 <전초>잡지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팡펑후이, 장양은 19대전에 정변을 일으키고자 계획했다. 그러나 미리 소식이 누설되어 시진핑이 두 사람을 체포하고, 정변이 유산된다. 이 주장은 증거가 없다. 다만 그렇다고 전혀 근거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특히, 장양이 자살한 후, 중국의 당매체는 장양을 심하게 비판해서 도를 넘었다. 어떤 사람은 "편시(鞭屍)"라고까지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필자의 생각에 장양은 아마도 암중으로 모반을 꾀했을 것이다. 혹은 모반을 기도한 것을 숨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동료들을 보호하고자 자살한 것일 수 있다.

 

2021년은 중공20대의 전해이다. 중국고위층의 권력투쟁은 첨예화되고 격렬해지고 있다. 2월 20일 시진핑이 중공초기지도자 장국도가 '병력을 끼고 또 다른 중앙을 만들려 했다'고 비판한 후, 중공당매는 계속 이 주제를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쉬차이허우, 궈보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혹은 장양, 팡펑후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결론

 

2021년, 시진핑은 '군대는 반드시 절대충성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군사위주석책임제를 관철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당의 군대에 대한 절대영도'를 강조하고 '야심가, 음모가'가 나타나지 않도록 방지할 것을 강조한다. 군대장군의 임직은 계속 변동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시진핑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군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전 중앙군사위주석 장쩌민은 중국군대의 가장 심각한 부패분자들의 총뒷배경이다. 시진핑이 장쩌민과 그의 군대내 심복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하루도 편안히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