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황학루 모습
동치7년의 황학루 모습(광서19년에 화재로 소멸)
석인이승황학거(昔人已乘黃鶴去)
차지공여황학루(此地空餘黃鶴樓)
황학일거불부반(黃鶴一去不復返)
백운천재공유유(白雲千載空悠悠)
청천역력한양수(晴天歷歷漢陽樹)
방초처처앵무주(芳草처처鸚鵡洲)
일모향관하처시(日暮鄕關何處是)
연파강상사인수(煙波江上使人愁)
이 시는 분명히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당나라때의 대시인 최호(崔灝)의 황학루에 와서 놀고난 후에 쓴 시이다. 이후 시선(詩仙) 이백이 황학루에 오른 후에, 널리 초나라 땅을 살펴보고, 가슴을 활짝열고 시흥이 막 일어나서 붓을 들어 시를 쓰려고 하는 순간, 최호가 써서 황학루에 걸어 놓은 이 시를 보게 되었다. 그는 최호의 시를 본 다음에 스스로 그보다 더 잘 쓸 수 있다는 자신이 없어, 붓을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것으로 황학루와 최호의 이름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황학루는 삼국시대에 지어졌는데, 여러번 파괴되었고 파괴될 때마다 새로 지었다. 그래도 계속 무너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황학루를 새로 지은 것은 청나라 동치 7년(1868년)이었는데, 이것은 광서 10년(1884년)에 무너졌다. 이후 근 100여년간 황학루를 새로 짓지 않았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후에 1981년 10월, 황학루의 재건공사가 시작되었고, 1985년 6월에 낙성되었다. 대명이 자자한 황학루는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이다. 새로 지어진 황학루는 청나라 동치시대에 지었던 황학루를 모델로 하였다. 그러나 기초는 더욱 크고 웅위하게 만들었으며, 5층 높이로 하였고, 한 층이 올라갈 때마다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금색유리기와를 위에 놓았다. 누각밖에도 동으로 만든 황학의 조형, 승상보탑, 패방, 헌랑, 정각등의 보조건축물을 세웠다. 이로써 황학루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황학루의 명칭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이것도 수수께끼의 하나이다. 정설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황학루의 명칭내력에 관하여는 많은 신화와 전설이 있다. 가장 많은 것은 최호의 "석인이승황학거(昔人已乘黃鶴去, 옛 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가버리고)"라는 문구에서 "석인(옛 사람)"이라는 문구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석인 바로 황학선인(黃鶴仙人)은 도대체 누구인가? 여기에 대하여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선인 자안(子安)이 일찌기 황학을 타고 이 곳을 지나갔는데, 이를 기념하여 황학루라고 하였다는 설이다. 둘째는 촉국의 비위(費褘)가 신선이 된 후에, 황학을 타고 여기서 쉬어간 적이 있는데, 이로써 황학루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순권위(旬權偉)가 일찌기 신선이 하강하는 것을 보고, 여기서 연회를 베풀어주었다는 것에서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고사는 모두 황학루가 왜 지어졌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누구때문에 지었는지만 얘기하고 있다.
이에 "신씨주주(辛氏酒樓)"설은 가장 완전하게 황학루가 지어지게 된 경위를 설명해준다. 옛날에, 신씨부인이 산에서 술을 팔았다. 한 도사가 자주 길을 지나면서 여기와서 술과 음식을 먹었는데, 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신씨는 이를 따지지 않았다. 한번은 술을 마신 후, 도사가 신씨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에서 벽에 선학(仙鶴)을 한 마리 그려주고 신씨에게 말했다. "이후 손님이 오면 네가 손뼉을 치면 학이 낼와서 춤을 추며 손님에게 술을 권할 것이다"라고 하고는 말이 끝나자 마자 도사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도사의 말이 과연 맞았다. 이 작은 술집은 일시에 손님이 가득차게 되었고, 신씨도 이로써 부자가 되었다. 10년후, 도사가 다시 이곳을 왔는데, 그가 오면서 피리를 불자, 피리소리와 함께 흰구름과 선학이 날아왔다. 도사는 황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신씨는 그 신선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땅에 루각을 세우고 "황학루"라고 이름했다.
이런 신화전설은 황학루에 낭만적인 색채를 더해 준다. 그러나 황학루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에 대하여 일부 전문가, 학자들은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준다. 많은 학자들은 황학루는 지명(地名)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황학루가 소재한 곳이"황곡산(黃鵠山)", "황곡기(黃鵠磯)"라고 부르는데, 어떤 사람의 고증에 의하면 황곡산이 바로 황학산이라는 것이다. 당나라때 이길보가 쓴 <<원화군현지>>에는 "강하(현재의 무한)성의 서남쪽에는 기(磯, 물가)의 이름을 따서 누(樓)의 이름을 지었는데, 황학루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황학루가 인명(人名)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예부시화>>라는 책에는 최호가 시에 대하여 스스로 주석을 단 것에 보면 "황학은 인명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 시에는 "석인이승백운거, 차지공여황학루. 운승백운, 즉비승학의(昔人已乘白雲去, 此地空餘黃鶴樓, 云乘白雲, 則非乘鶴矣)"라고 되어 있다. 최호가 스스로 주석을 단 것이 맞다고 본다면 황학도 사람이름이지, 산의 이름은 아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황락루의 내력을 인명도 아니고 지명도 아니고, 형상때문에 이름하였다고 본다. 누각을 세로방향으로 바라보면 각 층의 지붕이 막 날개를 펼치려넌 황학처럼 보였기 때문에, 황학루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자고이래로, 황학루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사람마다 다르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황학루는 더욱 기묘하고 신비하게 느껴지며 많은 사람들이 그 풍채를 보고서 "흰 구름이 천년동안 떠다닌다"는 감회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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