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회/중국과 인구

홍콩에서의 세가지 교훈

중은우시 2006. 12. 10. 21:11

작자: 불명

 

그 해에 나는 처음으로 홍콩에 가기 전에 한동안 흥분했었다. 홍콩, 바로 이 동방의 진주의 번화함은 이미 사람들마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더더욱 "나의 1997년"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홍콩을 여행하는 꿈을 꾸어왔었다. 그리고, 홍콩주권회복후에 직접 가서 다원문화의 도시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동시에 홍콩아일랜드이 궤도전차도 타보고 싶었고, 중환(센트럴)의 마천루도 보고 싶었고, 빅토리아항구의 찬란한 등불도 보고 싶었다. 맞다. 그리고 황대선(黃大仙)에서 점도 쳐보고 내년의 운세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돌연 세부적인 것들을 생각하다보니, 홍콩에 간 다음에 사람들이 우리의 보통화를 못알아들을지 모르고, 길을 물을 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교민항의 국제여행사 판사처에 가서 홍콩지도를 하나 받아왔고, 집에서 홍콩의 지하철역이름을 하나하나 외웠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길을 잃어서 할 수 없이 용기를 내서 "새소리"를 지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지하철역이름을 외우고 있다면,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홍콩에서 길을 잃을 일은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 하나 준비를 했다. 바로 홍콩과 대륙의 생활습관의 차이를 공부했다. 평소에 팁을 주는지 안주는지? 길을 건널 때 신호등을 보아야 하고, 에스칼레이터를 탈 때 우측에 서서 좌측을 비워두고 급한 사람이 사용하게 한다는 것등등. 이렇게 나는 호기심과 갈망을 가지고 격통하는 심정과 충분한 실탄(당시 필자는 아직 신용카드가 없었따)을 준비해서 원래 우리의 것이었지만, 우리의 것이 아닌 우리의 토지를 밟으러 갔다.

 

홍콩에 도착한후에 처음 거리를 나섰다. 홍콩인들은 말없이 나에게 한가지 교훈을 주었다.

 

필자가 숙박하던 동라만의 부호호텔에서 걸어나와 딩딩당-궤도전차를 타보고 싶었다. 차역에 도착했더니 이미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나는 대륙의 줄서기 습관대로 줄의 끝에 섰다. 전차가 도착하니, 생각도 하지 못하게 내가 제일 첫사람이 되었다. 왜냐하면 전차의 문이 바로 내 앞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잘못되었군. 필자는 본인이 줄을 잘못섰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원래 필자는 줄끝에 선 것이 아니라, 줄의 제일 앞에 선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홍콩사람들이 한 사람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고, 심지어 길을 힘들게 걸어가는 노인네도 나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질책하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바로 옆으로 피해주었고, 뒷줄에 선 사람들이 모두 탄 다음에 마지막으로 고풍이 나는 궤도전차에 올랐다. 그 때 왜인지 모르게 나는 아주 마음속으로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홍콩사람이 나에게 준 두번째 교훈은 차 속에서이다. 그러나, 이번은 지하에서였다.

 

그날, 나는 관례대로 지하철의 열차에서 줄 끝에 서 있었다. 얼마되지 않아. 지하철이 천천히 역으로 들어왔다. 바로 모든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려고 준비하는 때에, 갑자기 뒤에서 5, 6명의 중노년남자들이 뛰어왔고, 금방 줄의 제일 앞쪽으로 갔다. 내가 놀란 것은 차문이 열리자, 금방 뛰어온 그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른 지하철을 기다리던 홍콩사람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몇 사람이 들어간 후에 질서있게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먼저 뛰어들어간 그 몇 사람은 한편으로 큰 소리를 지르며..."헤이 빨리. 거기 빈 자리가 있어!" 한편으로는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원망하는 표정도 없었다. 이 때 나는 알아차렸다. 그 몇몇 자리를 빼앗던 사람들은 바로 대륙에서 온 여행객이었따. 사람마다 "XX국여(국제여행사)"라는 가방을 들고 있었다.(어디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괜히 싸우기 싫으니까).

 

다음 역에 도착했다. 바로 자리를 차지하던 몇 사람중에서 가장 나이 작은 한 사람만 자리를 잡지 못했었다. 이 때, 그들 중의 한 나이든 사람이 그 젊은 친구에게 금방 자리가 빈 곳을 가리키며 "XX, 저기 빈자기가 있어"라고 소리쳤다. 원래 그 빈자리의 근처에는 다른 승객들이 있었따. 그러나, 그가 이렇게 소리지르자, 아무도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묵계라도 한 듯이 그 자리를 젊은이에게 양보했다. 그 때 나는 돌연 느낄 수 있었다. 조본산(趙本山)의 소품에서 말했던 대사이다. "사람의 차이가 왜 이렇게 큰가?" 나는 동시에 알 수 있었다. 홍콩사람들도 원래 보통화를 알아듣는구나. 그렇지 않다면 금방 자리를 어떻게 대륙의 젊은이에게 양보했을 것인가? 이 때, 필자는 홍콩사람들에게 숙연해지고 존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홍콩사람들이 나에게 준 세번째 교훈은 식당 안에서였다.

 

그날은 센터럴 치지광장부근의 고급음식점 안에 있었다. 나의 옛 동창(그녀는 이미 홍콩에 시집온지 몇 해 되었다)과 그녀의 남편이 나를 식사에 초대했다. 일요일이어서, 식당은 거의 장사가 되지 않았다(센트럴의 고급식당은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장사가 보통때같지 않다). 이 때, 십여명의 대륙말투의 손님들이 우리 주위의 식탁에 앉았다. 이 사람들은 들어서자 마자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얘기에서 그들이 대륙의 어느 국영기업에서 홍콩으로 출장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날 기분이 좋았는지, 그들은 서로 벌주를 먹이고 술을 권하고 하였으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들었다. 그 때 나는 대륙출신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한마디 해주고자 했다. 그러나, 옛동창의 남편은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완곡하게 그러지 말라고 권했다. 사실 그는 무슨 유쾌하지 않은 일이 발생할 것을 겁낸 것이 아니라, 대륙사람들에게 홍콩사람들이 그들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으며, 대륙인들의 체면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이때 나는 진정으로 홍콩사람들의 교양에 대하여 깊은 인식을 갖게 되었다.

 

맞다. 홍콩은 돌아보기 싫은 과거가 있다. 비록 그 식민지의 역사가 얼마나 굴욕적인 역사이든간에, 총명하고 부지런한 홍콩사람들(중국인이다 물론)은 계속 배우면서 자신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중국의 깊은 문화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동시에, 서방문명의 정수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동방의 진주로 우뚝 섰다.

 

대영제국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한다. "소위 교양이라는 것은 식사할 때 탕을 식탁에 쏟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부주의하게 탕을 쏟은 후에 못본척 하는 것이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사실 이런 교양이야말로 높은 수준의 교양일 것이다. 보라, 중서문화의 영향을 받은 홍콩사람들은 대륙사람들보다 더욱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