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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화법안7

미중관계의 기원과 영향 (2) 글: 모해건(茅海建) 3. 유미학동(留美學童)과 배화법안(排華法案) 1844년 미중간에 이 체결될 때, 중국의 인구는 이미 4억에 이르렀고, 해외상업활동과 이민이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그러나 주로 동남아였다. 미국상선은 서해안에서 중국으로 오는데 항해시간이 50여일이 걸렸다. 두 나라국민은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십년후인 1854년, 용굉(容閎)이 미국예일대학을 졸업하고 학사학위(B.A.)를 받는다. 용굉은 마카오와 홍콩에서 서양식교육을 받았고, 미국에서 7년간 공부했다. 최초로 미국대학을 졸업한 이 중국인이 귀국했을 때, 그의 미국에서 배운 지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내심 고독을 느낀다. 그는 여러가지 성공적이지 못한 직업을 전전한 후에, 청나라를 도와 미국에서 물품을 수입.. 2023. 5. 2.
중국인들의 해외 직장에서의 삼중 "곤경" 글: 이일낙(李一諾) 최근 2년 나는 미국으로 돌아와 생활하고 있다. 많은 오래된 기억들처럼 보이는 것들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실망스럽게도 여러 해가 흘렀지만, 중국인의 해외직장에서의 곤경은 진정한 의미에서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혹은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개선되지 않았을 뿐아니라, 최근 몇년간의 국제정세의 변화로 처지가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해외중국인들은 일간 곤경을 주제로 얘기하면, 가장 큰 곤경이 언어, 피부색, 문화인 것처럼 얘기한다. 다만, 필자의 생각에 그것은 진정한 원인이 아니다. 많은 중국인들이 잘 알고 있는 반대사례는 바로 인도계이다. 그들도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의 주류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특히 비지니스계에서,.. 2023. 3. 15.
타이타닉호의 중국인생존자 6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글: 종의(鍾毅), 오상울(吳尙蔚) 1912년 4월 14일, 23:40경 당시 호화 여객선 '영원히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던 타이타닉호가 북대서양에서 빙산에 부딛쳤다. 1,514명의 승객은 차가운 대서양 깊은 곳에서 목숨을 잃었고, 생존한 700여명의 승객은 바다 위에서 4,5시간동안 사투를 벌였으며 마침내 구원온 카파시아호(RMS Carpathia)를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사고의 여파는 여러 해동안 지속되었다. 1998년 제임스 카메론감독의 는 더욱 개인적인 각도에서 이 사건을 재현했으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경전으로 남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다. 타이타닉호의 생존자 중에는 6명의 중국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타이타닉호가 출항한 1912년은 신구교체의 시기였다. 1차대전이 곧 발발할 .. 2021. 4. 18.
이홍장과 찹수이(Chop suey) 글: 설이(雪珥) 로스앤젤레스에 밤의 장막이 내려왔다. 청결한 리틀도쿄에서 고개를 들어보면 황혼중에 높이 걸린 글씨가 보인다: Chop Suey 미국전역을 풍미했던 이 이름은 미국 병사들이 전세계로 퍼트렸다. 중국과 일본을 포함해서. 이 단어는 기실 광동어인 "잡쇄(雜碎)"를 영어로 부른 .. 2012. 3. 31.
리홍장의 미국방문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리홍장(李鴻章)의 본명은 장동(章桐)이며, 자는 점보(漸甫), 자불(子黻)이며, 호는 소전(少荃)인데, 만년에는 스스로 호를 의수(儀叟)라 하고, 별호는 성심(省心)이다. 시호는 문충공(文忠公)이다. <<이문충공전집>>이 있다. 리홍장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경사를 읽었으.. 2008. 12. 7.
헐리우드영화와 차이나타운 글: 손융기(孫隆基) 대만중정대학 역사과 교수 <<The Untouchables>>는 1959년 미국의 텔레비전드라마이다. 1987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야기는 1920-1930년대의 재정부 특파원 Eliot Ness가 시카고의 밀주집단을 물리치는 경력을 가지고 만들었다. 그런데, 배후에 숨어있는 것은 이민정책의 정보이다. 1.. 2008. 9. 24.
1896년 이홍장의 뉴욕타임즈 인터뷰 내용 1896년 8월 28일, 청나라의 직예총독(直隸總督) 겸 북양대신(北洋大臣)인 이홍장(李鴻章)의 일행은 '세인트루이스호'를 타고 뉴욕항구에 도착하였다. 시민들이 물밀듯이 몰려왔고, 항만내에 있는 백여척의 배들이 일제히 기적을 울려 환영했다.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이홍장은 "저명한 장군이.. 2007.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