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팽덕회(彭德懷)
인민해방군 부총사령관, 군사위원회 부주석, 국방부장.
1959년 노산회의때 반당집단의 수괴로 지목됨.
북경으로 돌아온 후 서교 오가화원(吳家花園, 명나라 말에 청나라에 투항했던 오삼계의 옛날 집)에 연금되었음.
1개연대의 부대가 매일 24시간 감시하였음.
1965년 11월 성도 삼선건설지휘부로 가서 통제를 받음.
1968년말 중앙문혁의 수괴 강청이 파견한 홍위병에 의하여 체포되어 북경으로 돌아와서 북경위수구에 갇힘. 이후 중앙전안판공실에 갇힘, 그 동안 여러차례 구타로 가슴뼈가 부러지고, 1974년 죽임을 당함.
2. 장문천(張聞天)
전 중공중앙총서기
1959년 팽덕회와 함께 반당분자의 수괴로 지목됨.
북경으로 돌아온 후 연금되고 신체의 자유를 상실함.
문혁초기에 감옥에 갇힘. 1969년 광동 조경으로 옮겨져 연금당함
1974년 중병을 앓아 북경으로 돌려보내 치료받고자 요청하나 허가받지 못함
1975년 강소 무석으로 보내어 연금함 1976년 7월 1일 죽음.
3. 유소기(劉少奇)
전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중공중앙 제1부주석
1967년에 타도되어, 중남해의 복록거(福祿居)를 감옥으로 만듬. 높은 담장을 쌓아 그 안에 연금시킴.
이 때, 이미 다리뼈는 부러짐. 개처럼 기어서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음.
병이 발작하면 사지를 침대에 묶어 고정시킴, 가장 길게 고정시킨 경우는 42일임.
2년여동안 이발, 세수를 하지 않음.
1969년 11월 전용기로 하남성 개봉에 보내어 감금함 이후 의약을 제공하지 않아 사망함.
시체는 지프차로 화장터로 보냈는데, 이 때 두 다리가 차밖으로 드러났다고 함.
4. 하룡(賀龍)
8.1.남창의거 총지휘. 중앙군사위 부주석
1967년 1월 북경의 서산 상비자구(象鼻子溝)에 연금됨
1969년 박해를 받아 죽음
5. 도주(陶鑄)
당중앙상임위원, 국무원상무부총리, 중앙문혁고문
1967년 봄에 중남해 춘우재(春藕齋) 만랑가(萬廊家)에 연금됨
170와트의 강렬한 등을 밤낮으로 그의 침대에 비추고, 덩치큰 병사로 하여금 곁에서 감시하도록 함.
1969년 중병을 앓음에도 안휘성 합비로 보내어 감금함. 오래지 않아 비참하게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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