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름 : 쩡웨이(증위, 曾偉) : 은행고위간부
직위 : 종려천(棕櫚泉)국제아파트 동사장
별명 : 신산자(神算子)
이전기록 : 은행고위간부출신, 1996년 부동산에 발을 내디딤
신문보도 : 1988년 농업경제를 배운 쩡웨이가 26세 되던 해, 그는 사천의 모 국가기관을 사직하고, 해남으로 갔다. 해남에서 그는 성정부, 성인민은행에서 업무를 했다. 30세를 전후하여 쩡웨이는 이미 초상은행행장조리가 되었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게, 1년후,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직위를 버리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투자은행을 열었는데, 그가 첫번째로 금맥을 캔 것은 1996년 부동산으로부터였다. 그러나, 쩡웨이가 북경종려천국제아파트라는 이 고급프로젝트를 성공시키자 업계에 널리 이름을 알려지게 되었다.
소문 : 첫째, 쩡웨이는 젊었을 때의 꿈은 현의 당서기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천에서는 자신의 포부를 실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해남으로 갔다. 둘째, 관직을 버리고 사업을 시작한 후 그는 미국에서 회사인수협상시에 나중에 부인이 되는 니커([女+尼]可)를 만난다. 니커는 당시 이미 미국국적을 얻었으며 미국에서 장기거주하고자 한다. 소문에 의하면 쩡웨이가 화장실을 찾다가 만났다는 것인데, 쩡웨이는 만나는 순간 평생의 반려를 얻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셋째, 쩡웨이는 아파트에 5성급호텔의 로비를 만들고자 계속 생각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외국의 고급호텔에 들러면, 휴대한 전자측량기로 길이를 재었으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신영향 : 사천에서 업무할 때 이미 의식이 앞서갔다. 그래서 사업에 뛰어들었고, 부동산을 할 때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고급아파트를 개발하였다.
평가: 자기의 신념을 견지하면, 성공을 얻게 된다.
7. 이름 : 장레이(장뢰, 張雷) : 한장의 백지
직위 : 당대(當代)집단 총재
별명 : 철면공목(鐵面孔目)
이전기록 : 국가간부출신, 1995년 부동산업계에 들어옴.
신문보도 : 장레이는 1962년 북경에서 태어났다. 1988년 서남정법대학(법률전공)을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5년까지 국기기밀기관에 근무하였다. 1995년전후하여 북경중제방지산공사 총경리, 북경당대성시방지산공사 총경리, 북경당대홍운방지산공사 동사장, 북경당대투자집단총재등의 직무를 맡았다. 최근 몇년간은 포브스의 중국대륙 100대부자에도 들었다.
소문 : 아마도 사업에 뛰어들기 전에 국가기밀기관에 근무하였던 때문인지, 장레이의 이전의 소문은 매우 적고, 미디어에 거의 나타나 있지 않으므로, 일단 소문의 부분은 백지로 남겨둔다.
평가 : 유명한 것과 개인의 자산실력이 균형이 맞지 않으며, 사람됨이 조용하고 온건하다.
8. 이름 : 장리(장력, 張力) : 공무원출신
직위 : 부력(富力)집단 동사장
별명 : 표자두(豹子頭)
이전기록 : 공무원출신, 1993년경 이사렴(李思廉)과 부력집단을 창립함.
신문보도 : 장리는 1973년부터 업무를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노동자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광주교구의 이경국에서 공청단위원회 부서기를 지냈다. 1986년, 장리는 화원촌호텔의 총경리를 맡았다. 오래지 않아 백운구정부 사무동건물을 기획건설하였다. 이 때 장리는 아마도 자신의 장사능력을 발견한 것같다. 1988년 장리는 공무원업무를 그만두었다. 처음에는 인테리어부터 시작하였고, 후에 홍콩사람 이사렴과 합작하여 부력집단을 만들었다.
소문 : 첫째, 장리는 처음에는 주로 인테리어를 하였는데, 작은 프로젝트부터 맡기 시작하여 5년간동안 이,삼백만위안가량을 모았다. 둘째, 그는 이사렴과 같이 2천만위안을 투자하여 광주천력지산공사를 만들었는데, 부력집단의 전신이었다. 이때부터 10여년동안 동업하였다. 자금이 적었으므로 처음에는 교외지구나 도시와 교외의 접경지역에서의 프로젝트를 위주로 하여, 대부분이 가격이 싼 주택지나 구주택이전지구였다.
출신영향 : 공무원시절에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아이템을 발견하였으며, 부동산업을 하면서 안목이 독보적이다.
평가 : 그의 경력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시대가 만들어낸 영웅이라는 점이 있다.
9. 황루룬(황여론, 黃如論) : 소규모 장사꾼
직위 : 세기금원투자집단 동사장
별명 : 급선봉(急先鋒)
이전기록 : 복건성의 소규모 장사꾼 출신이다. 1991년 부동산업에 투자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때부터 돈을 벌었다.
신문보도 : 황루룬은 복건성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그가 35세가 되기 전에는 계속하여 고향에서 소규모 장사를 해왔다. 1986년, 황루룬이 맨몸으로 필리핀으로 돈을 벌러 갔다. 1991년에 해외에서 번 돈을 가지고 복건으로 돌아와서 부동산투자를 시작하였고, 빠른 시일내에 복건성 최대의 사영 부동산업자가 되었다. 1990년말, 황루룬은 북경시장으로 옮겼다. 그가 개발한 부동산에는 특징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자신의 자금을 사용하고, 은행에서 대출받는 것이 적다는 것이고, 많은 경우에 완공후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소문 : 첫째, 황루룬은 스스로 1991년 귀국전에 번 첫번째 자금은 천만위안이 넘지 않는다고 하였다. 둘째, 황루룬은 조용하고, 생활도 검소하며, 푸저우(福州)에 있는 사무실도 25평방미터에 불과하며, 호화로운 장식도 없다. 셋째, 어떤 사람은 황루룬이야말로 진정한 대사업가라고 한다. 단지 자신의 깊이가 끝이 드러나지 않는 자금력으로 그의 내력이나 배경에 대하여 수도 없는 억측을 하게 만들었다. 넷째, 매번 대규모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황루룬은 불교계의 저명한 인사들을 초청하여 재부를 기원하고 순리를 기원하고 평안을 기원하는 대형불사를 벌인다고 하며, 중급이상의 직원들은 반드시 활동에 참가하여야 한다고 한다.
출신영향 : 농촌출신으로 종족관념이 강하다. 그룹의 요직은 모두 친족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회사지분도 외부사람들에게 나눠주지 않는다. 외부사람들에게는 주로 복지나 집으로 유인하고 있다.
평가 : 깊이를 알 수 없는 대사업가로,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며, 부정적인 보도는 없다.
10. 펑룬(풍륜, 馮侖) : 마오치중(모기중, 牟其中)의 제일막료
직위 : 만통(萬通) 동사국 주석
별명 : 신기군사(神機軍師)
이전기록 : 강사출신, 관리를 해본 적이 있다. 모기중의 막료를 담당했다. 1991년 만통을 창업하였고 이때부터 돈을 벌었다.
신문보도 : 1959년 섬서성 서안에서 태어났다. 1982년 서북대학을 졸업하고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중공중앙당교를 졸업하고 법학석사학위를 받았다. 일찌기 중앙당교, 중앙선전부, 국가체제개혁위원회, 무한시경제무역위원회와 해남성위원회에서 직위를 맡았었다. 이론연구와 기업기획, 경영, 조직, 관리업무에 종사했다. 1991년 만통공사를 창립하였다.
소문 : 첫째, 1988년 펑룬은 하이커우(海口)에서 1만대의 컬러텔레비전의 허가문건을 모 대외무역공사 사장에게 전달했다. 이 허가문건은 국무원 체제개혁위원회가 펑룬에게 제공한 "비용"이었고, 30만위안과 교환했다. 그는 이 돈으로 해남체제개혁연구소를 만들었다. 둘째, 1989년 정치적인 원인으로 체제개혁연구소가 해산되자, 펑룬도 몇개월간 실업상태였다. 이후 그는 당시 전국에 이름을 떨치던 남덕집단의 총재 모기중을 찾아간다. 최초에는 정무비서를 담당하며 월급이 250위안이었다. 1년후, 펑룬의 모기중의 첫번째 참모가 되면서 급여는 850위안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펑룬은 가족기업의 폐단을 느끼고 1991년 모기중을 떠난다. 셋째, 1991년 펑룬은 3만위안으로 모 신탁공사에서 500만위안의 투자를 이끌어낸다. 이후 은행에서 1,500만위안의 대출을 받아내고, 부동산사업을 시작한다. 넷째, 1992년부터 만통은 북경으로 와서 펑룬와 판스이는 북경보리대하에서 3년을 같지 지낸다. 나중에 만통계의 6형제는 회사발전전략상의 이견으로 이혼하게 된다. 분가할 때 펑룬은 판스이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를 3개월간 욕을 하겠다. 욕을 다 하고나면 너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보상으로 펑룬은 판스이에게 만통의 성공을 자신이 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고 허락하였다.
출신영향 : 강사출신으로 이론에 밝고 좋아서 웃는 것이나 화나서 욕하는 것도 모두 문장을 이룬다.
평가 : 펑룬은 여러가지 경험을 많이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탄복하게 한다. 거기에 그는 계속하여 활달한 심정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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