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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의 어제

황궁의 위생상태는 어떠했을까?

by 중은우시 2024. 7. 3.

글: 독사(读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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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와 권력에 대한 환상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은 황궁이 거의 천국수준일 것으로 여긴다.

설계도 정교하고, 관리제도도 잘 되어 있으며, 정원이나 전각에 먼지 한톨 없이 일년내내 금벽휘황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인터넷에는 심지어 고궁의 처마가 얼마나 정교했었는지, 새들이 앉을 수 없게 만들어 새똥조차 없었다는 전설까지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새들은 날다가 변을 본다. 어디든 가고싶은 곳을 날아가기 때문에 황제의 머리 위에서라도 마찬가지로 변을 본다. 사람들은 권력이라는 환상에 눈이 가려졌을 뿐이다. 사람의 일을 다른 동물들에게까지 적용하려고 하지 말라.

권력에 의해 왜곡된 상상력을 벗겨버리고나면, 고대황궁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아주 더러웠다.

극작가 제여산(齐如山)은 청나라 광서연간에 태어났다. 젊었을 때 몇번 자금성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가 회고한 고궁은 이러했다:

"황상이 자주 다니는 곳은 당연히 아주 깨끗했다. 조금만 뒤쪽으로 가면 잿더미, 쓰레기, 찻잎, 과일껍질등등이 무더기로 쌓여있다.....가장 기괴한 것은 태화전(太和殿)등의 장소도 아주 더럽다는 것이다...태화전의 월대(月台)의 단서(丹墀)에는 많은 인분(人粪)이 보인다. 그저 큰 쓰레기장이다. 단서아래에는 잡풀이 가득 하고, 사람키만큼 자랐다. 황상이 지나갈 때마다 한번씩 제거한다. 이건 아마 사람들이 상상치도 못했던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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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의 자금성. 지붕에 자라는 풀은 새똥의 씨에서 자란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제여산이 고궁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광서말기로, 청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이기 때문에 황궁의 관리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며, 전체적으로 고대황궁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다만, 왕조가 전성기에 들어섰을 때는 조금 좋았기는 했겠지만, 황궁에서 더러운 곳은 여전히 적지 않았다. 고대의 물질적인 조건이나 위생수준은 결국 청결도의 상한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대형황궁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청소업무도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

북경고궁의 실내건축면적은 거의 15만평방미터이다. 유럽최대의 왕궁인 이탈리아의 카세르타왕궁은 개략 13.8만평방미터이다. 만일 1사람이 100평방미터를 청소한다면 천명이상의 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황궁은 실내만 청소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노면, 원림, 옥상도 모두 일상적인 유지보수를 필요로 한다. 풀을 뽑고, 청소하고, 쓰레기를 옯기는 것도 가벼운 일만은 아니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궁전은 자주 청소원들의 급여를 지급하지 못해 파업이 일어나곤 한다. 중국의 궁녀,환관은 노비이지만, 역시 스스로 '파업'방식을 찾아냈다. 청나라때, 궁녀, 환관이 도망가고, 자살하는 일이 매년 끊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무부는 도망가거나 자살하면 가족에게 연좌로 중죄에 처했다.

더욱 많이 볼 수 있는 파업방식은 "모어(摸鱼)"이다. 즉 선택적으로 업무를 완성하는 것이다.

제여산이 본 자금성외에 원명원도 전형적인 사례이다.

청나라가 아직 쇠락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건륭제, 가경제시기에 원명원의 상황은 황제가 자주 가는 곳은 위생상태가 양호하고, 가지 않는 구석진 곳은 쇠락하고 황량했다고 한다.

18세기에 지은 카세르타왕궁. 1200개의 물과 전기가 없는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여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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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위생의 또 다른 문제는 생활쓰레기이다.

대형황궁에서 적으면 수천명 많으면 만명이상이 생활한다. 이들이 매일 생산해내는 쓰레기는 즉시 수집, 운반하지 않으면 도랑이나 구석에 쌓이게 된다. 그러면, 쥐나 바퀴벌레가 생겨난다.

도시쥐의 생활범위는 그다지 넓지 않다. 기껏해야 수십미터이다. 그러나 중국역대왕조는 모두 황궁에 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생활쓰레기가 쌓여있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설명해준다.

포송령(蒲松龄)의 <요재지이(聊斋志异)>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

"만력연간에 궁안에 쥐가 있는데, 크기가 고양이와 같았고, 그 해가 아주 심했다."

쥐를 뿌리뽑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각지의 왕궁은 보편적으로 고양이를 길러 쥐를 잡는 방식을 취했다.

1745년, 제정러시아의 여왕 예카테리나1세가 겨울왕궁의 쥐를 처리하기 위하여 카잔에서 타타르고양이(鞑靼猫)

를 가져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같은 해, 미래의 예카테리나여왕은 독일에서 러시아로 시집을 온다. 그녀는 러시아왕국의 지저분함에 깜짝 놀란다. 그래서 일기에 러시아왕궁을 이렇게 묘사했다: "진흙과 오물이 가득한 마당에 있는 썩은나무로 만든 집"

다만, 예카테리나의 고향인 서구도 그다지 깨끗하지는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의 왕궁도 더럽기로 유명했다.

영국국왕 헨리8세는 자주 수천명을 이끌고 각 행궁으로 돌아다녔다. 그들이 매번 한 곳을 떠날 때마다 산더미같은 쓰레기와 배설물을 남겼다. 몇달동안 다시 사람이 거주할 수 없을 정도였다.

프랑스의 루브르궁과 베르사이유궁은 현대적인 기준으로 볼 때는 두 개의 큰 똥통이었다.

17세기 루브르궁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커다란 계단과 대문의 뒤에는 도처에 배설물이 있다. 사람들은 수천가지 서로 라는 악취를 맡을 수 있다."

화호롭기로 유명한 베르사이유궁전도 1780년에 29개의 화장실이 있었고, 화장실마다 엄청난 악취를 풍겼다.

프랑스국가자료실의 한 자료에 따르면, 발효한 분변으로 일부 노동자들이 질식하였고, 어떤 임산부는 악취로 병이 들어 사망했으며, 악취가 건축물에 배어 들어가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프랑스왕실도 분뇨의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1760년 4월, 국왕과 가족들은 베르사이유궁에서 출발하여 말리성으로 가서 잠시 거주했다. 이유는 화장실이 이미 꽉찼기 때문이었다.

1762년 가을, 국왕은 관례에 따라 퐁텐블로궁으로 가서 거주한다. 그러나 금방 떠나야만 했다. 원인은 퐁텐블로의 화장실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군주는 보편적으로 여러 행궁을 옮겨다니며 거주했다. 주요원인은 위생문제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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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물처리는 고대황궁이 직면한 최대의 위생문제였다.

18세기의 프랑스인들은 화분지(化粪池)와 하수도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의 기술이 부족하여, 배수계통이 자주 막혔다. 결과적으로 배설물이 길거리 심지어 주방에까지 만연했다. 황궁은 이렇게 '황탕(黄汤)'에 포위되어버린다.

청나라때 북경성의 배수도랑은 막히는 것으로 유명했다.

청나라황궁은 마통(马桶)을 사용했다. 황제부터 하인까지 모든 사람의 배설물을 마통에 담아서 모아두었다가 성밖으로 운반했다.

그러나, 운반하는 사람이 10일에 1번씩 왔고, 나머지시간은 배설물을 황궁의 어느 구석에 놓아두어야 했다. 악취가 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업무를 책임지는 사람은 신분이 하천한 "신자고(辛者库)"였다.

그러나, 중국의 황궁도 사람들이 아무곳에나 배설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단속이 심했던 노비들에 있어서 이는 일종의 소박한 반항이었다.

청나라말기 태화전의 주변에 '분장(粪场)'이 생긴다. 이는 제국이 이미 쇠락한다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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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황궁에는 또 하나의 영원이 퇴치할 수 없는 천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장작이나 석탄에서 나오는 재()와 연기였다.

유리가 보급되지 않았고, 방은 보편적으로 작고, 조명도 좋지 않았고, 통풍도 잘되지 않았던 고개에 각종 재와 연기는 하루하루 방을 더럽게 만들었다.

터키의 톱카프궁전와 중국티벳의 포탈라궁은 고대에 청결을 상당히 신경쓴 궁전이다. 그래도 연기에 거슬리는 곤란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오스만투르크 슐탄의 연회는 호화로운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들 음식을 만들어내는 주방은 연기로 가득차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포탈라궁은 하루종일 향을 사르고 있지만, 땅속에는 수천톤에 이르는 쓰레기들이 들어 있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보기에 황궁은 금벽휘황하다. 이는 현대적으로 개소하고 청소한 결과이다. 권력이 여과시키고 왜곡시킨 사람들의 상상일 뿐이다.

사실상, 고대세계의 통치자들도 그저 수준이 높지 않은 광대에 불과했다. 그들이 엄청난 것처럼 보이게 노력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황궁의 구석구석은 더럽기 그지없었다.

1949년, 정부는 7만명의 지원자를 조직하여, 고궁에 대해 9개월간의 청소작업을 벌인다. 25만입방미터, 20만톤에 이르는 쓰레기를 청소하고, 옥상과 정원에 만연했던 잡초를 제거한다. 그후로도 70여년간 계속하여 유지보수작업을 해왔다. 그리하여 지금의 '고궁박물원'이 있게 된 것이다.

황궁을 청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궁전의 면적도 크고, 사각지대도 많으며, 쓰레기는 더럽고 종류도 다양하며, 조금만 실수하면 문화재를 훼손ㅅ하게 된다. 한 마디로 만해서, 청소는 극도로 복잡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