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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사상

신과 인간(1) : 중국기적과 중국곤경의 철학적 근원을 찾아서...

by 중은우시 2024. 6. 13.

 

글: 현야(玄野)

 

당금 중국의 세계경제에서의 우세는 주로 세가지이다. 그리고 이 세가지 우세는 모두 하나의 결과로 나타난다. 즉 자본의 산출투입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것이다. 다른 그 어느 국가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동시에 이 세 가지 우세는 또한 중국이 세계에 융합되는데 있어서 세 가지 장애가 된다. 그중 첫번째 우세는 친후이(秦晖)선생이 몇년전에 말했던 바로 그 "저인권우세"이다. 이 점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인식해왔다.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외자를 유치할 때 그 핵심은 저인권우세였다. 그러나 단순히 이 점만으로는 중국이 세계자본에 가장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세계에 이런 우세를 가진 나라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두번째 우세는 대국가주의가 국민들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집단주의정신과 국가에 대한 헌신정신이 아주 강하다. 절대다수의 국민은 강국을 행복의 선결조건이라 여긴다. 국가를 개인의 복지를 달성하는데 피해갈 수 없는 중간요소로 여기는 것이다. 이점은 중공선전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2천년제국정치전통이 축적된 결과이다. 즉, 중국정치체제의 외유내법(外儒内法)이라는 특성으로 인한 것이다. 세번째 우세는 공산주의와 법가통치전통의 결합이다. 양자는 모두 물질주의를 숭상한다. 신이나 천도에 대한 경외심은 적다. 어떤 세대는 아예 경외심이 없다. 중국의 당금 정치체제는 여러 방면에서 겉으로는 공산주의를 표명하지만 안으로는 법가통치전통이 2천년동안 쌓아온 기초를 가지고 가지고 있다. 공산주의에 법가통치를 더한 것이 국민에게 화인지 복인지는 현재로서 단언하기 어렵다. 당금세계 특히 주요한 선진국은 이미 비교적 완벽하게 각국이 각각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상호 연관되고 견제하는 산업체계가 형성되어 있다. 과학기술과 산업의 혁신으로 항상 서로 협조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서 공동발전을 이루어왔다. 이런 체계에서 필요한 것은 모든 참가국들이 서로 대등하면서 상업과 관련된 법률제도에서 상호투명성을 보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법의 비감정화와 비이익화를 보증해야 한다. 정책법규는 한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정확하고 보편적이다. 유일한 예외라면 현재 좌파의 그 이신사호(以身伺虎)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규칙을 제정한 이후에는 집행과정에서 편파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이 규칙을 대등하게 지키지 않는 경쟁자가 출현하면 이 체계는 붕괴된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리스크방지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당금 중국이 2천여년전의 진시황이 천하통일한 기적을 다시 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개인적으로는 SF소설을 쓰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옛날 산동6국은 서로 견제하고 싸웠다. 그러나 현재의 선진국들은 서로의 경제가 이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완전히 다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국수주의가 중국에서 현재 가장 큰 문제중 하나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저 겉모습일 뿐이다. 20세기에 국수주의가 주도한 강대국들과 비교하자면, 중국의 국수주의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편이고, 근본문제라고 할 수도 없다. 겉으로 보면 국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국가주의일 뿐이다.

 

문장을 시작하면서 먼저 여러분들이 흥미를 가지고 생각해볼 몇 가지 결론을 열거했다. 아래에서는 다시 어떤 이유로 서방인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리는 먼저 만고불변의 주제인 신()과 인성(人性)부터 이야기하기로 하자. 신의 존재가 인류에게 주로 작용하는 효과는 인성의 약점을 통제하고 구원하는 것이다. 인성의 약점은 무엇인가? 교만방자, 이기탐욕, 방종타락, 질투협애, 나태사치, 잔혹폭력, 탐진치(贪嗔痴) 등등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인성의 약점에 대한 통제를 잃거나 혹은 마귀에게 심령을 빼앗기게 되면, 사람은 전쟁등 종족내경쟁에서 인종학살이 나타난다. 또한 자연을 약탈하는 종족간 투쟁에서 극도로 자연이 설정한 각종 생명의 공생구조를 파괴하게 된다. 하나의 위선적인 신앙이 인성의 약점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증강시키게 되어 교만방자와 협애가 횡행하게 된다면 이런 신앙은 엄격한 의미에서 신앙이라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정치적 권모술수라고 봐야 한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탐진치를 행하는 것일 뿐이다. 일체의 신앙을 부정하고 간단하게 자신의 감각을 믿는다면 그리하여 사람이 욕망과 물질추구를 하는 과정에서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 결과는 왕왕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신이 강한 생명에 설정한 균형유지요소

 

이상의 원인으로 역사상 모든 사상가들은 인류의 타락,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여러 재난이 극도로 인류사회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만일 사람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한다면, 인류사회는 장기간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구의 총량 혹은 인류의 소비총량은 급속히 발달하여 자연이 감내할 한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문제를 의식했을 때는 이미 그 한계가 무너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전체적으로 심연에 빠져버리게 된다. 확실히 이는 어느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고, 역사상 한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현상이다. 종족내경쟁은 인류전체의 소비력을 감소시킨다. 아마도 이것은 신이 자연에 설정한 견제균형매커니즘이 아닐까. 여기에서 가장 간단한 자연현상과 인류를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자는 초원생태계에서 최상층포식자이다. 숫사자의 지위는 더더욱 지존이다. 그러나, 숫사자에게는 하나의 습관이 있다. 그것은 그가 다른 후대의 어린 사자를 만났을 때 일반적으로 어린 사자를 물어죽여버린다는 것이다. 물종 자체에 있어서, 이는 극히 사악한 조치이다. 당연히 이런 조치는 사자의 종족집단발전에 있어서 극히 심각한 제약요소가 된다. 그러나 사자는 자연계에서 여전히 아주 번성했다. 만일 사자가 이 누습을 극복했더라면, 사자종족의 수량은 폭증했을 것이다. 마치 인류가 문명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구가 폭발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면 결과는 아마도 초원에서 기린, 영양, 물소등이 멸종했을 것이다. 포식체인의 최상층 종족내경쟁은 원래 자연적인 속성일 뿐이다. 물종 자신에게는 사악하다고 할 수 있지만, 조물주가 보기에 그것은 필수적인 균형유지요소이다.

 

당대사회발전은 이런 균형유지요소를 실효시키는 추세로 향한다는 것이다. 구미세계는 2차대전이 끝난 후, 문화계에서 사랑에 대하여 무한한 숭상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사랑은 그저 인간의 속성일 뿐이다. 인간의 사랑은 그저 인간의 세계에 국한되어 있다. 자연에는 자연의 법칙이 있다. 사랑을 일반화하게 되여 보편적인 생명으로 넓히게 되면, 인성법칙이 자연법칙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사람의 교만이자 인성의 신성에 대한 참월(僭越)이다. 사람의 신에 대한 규칙순서는 마땅히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인성으로 자연에 간섭하게 되면, 그것은 땅이 사람을 따르는 것이다. 그건 건곤이 되집어지게 되는 격이다. 생명의 소비에서 최종소모는 자연자원이다. 인류의 사랑이 만일 태양처럼 온 대지에 미친다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생명들이 별도로 보호를 받는다면, 사람의 마음이 느끼지 못하는 그들 생명은 자연자원으로 취급되어 사라질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자연생태에 간여하려면, 마땅히 사랑의 원칙을 버려야 하고, 마땅히 아래의 몇 가지 대원칙을 지켜야 한다:

 

하나, 반드시 과학에서 출발하여야 하고, 감정에서 출발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애완동물의 방생같은 감정적인 사건은 기본적으로 모두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둘, 여기의 과학은 경험과학을 주로 말한다. 일부 공리를 논리로 추론하여 기하학처럼 만들어낸 연역과학이 아니라. 사람의 인지능력은 유한하다. 그리고 사람의 감정은 스스로를 묶는다. 그러나 자연이 주는 경험계시는 무한하고 개방적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과의 관계를 파악할 때 마땅히 감정을 배제해야 하고, 신중하게 사고해야 한다. 주로 경험의 계시에 근거해야 한다. 여러가지 경험에서 얻어낸 것을 가지고 방법을 찾아서 간여해야 하는 것이다.

 

셋, 인류의 경제활동이 생태계에 조성한 해를 우선보상해야 한다.

 

현대 생태보호의 목적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다만 그건 그저 당당하게 내세우는 것일 뿐이다.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역시 인간 자신의 생존안전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생명형태가 복잡할수록 생태환경에 대한 의존도는 크다. 확실히 세계에서 현재의 생태환경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물종은 인간 자신이다. 그리고 생물다양성을 보호하는 근본목적은 바로 생태환경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인류 자신의 생존안전을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프로젝트운용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관련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수리공정을 보자. 댐을 만드는 것은 인류를 위해 유익한 좋은 일이다. 그러나 모든 수리공정은 해당수역에 사는 동물들에게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재난이다. 특히 연어등 회귀성어류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교통공사도 유사하다. 도로나 철도건설은 인류의 경제생활의 기초이다. 마찬가지로 인류에게 유익한 좋은 일이다. 다만 야생동물에 있어서, 특히 포유류동물에 있어서는 재난이다. 개략 70년대이래, 선진국은 점차 대량의 하류에 연어가 회귀할 수 있도록 여러 단계의 댐을 건설했다. 이는 연어라는 물종을 안정시키는데 극히 관건적인 작용을 했다. 그리고 연어의 존재는 거의 북반구하류생테시스템의 자체생사에 관련된 큰 일이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사람이 이 생태시스템에 관여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수리공사가 생태시스템에 가져다준 재난성 악영향을 보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도로 하부에는 동물터널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도로 철도위 위에도 생태주랑을 만든다. 대형생물 특히 포식체인의 상층부에 있는 동물에게 도로를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역시 같은 생각이다. 단지 효과에서 그다지 완벽하지는 않고, 거의 효과가 없는 경우도 있다. 모든 이런 생태공정은 인간의 다른 생명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이 욕망을 만족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존기반을 해친다. 그래서 약간의 보상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 대거 떠들고 있는 탄소배출과 그린에너지등등은 사랑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모두 인간 자신의 생태안전을 고려한 것이다.

 

위의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자연계 포식체인의 최상층에 있는 인류의 경우에, 인류발전을 저해하는 종족내경쟁 그리고 여러 악마급의 인물이나 세력을 제한하는데 객관적으로 중요한 균형유지작용을 한다. 인류의 사랑이 넘쳐나면 오히려 자연계에는 큰 위협이 된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화복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외에, 우리는 선악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선악이 서로 교차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행위는 일정한 층면에서는 악이지만 더욱 높은 층면에서는 선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화와 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철학기초는 세상일의 복잡다양에 대한 성찰과 물극필반(物极必反)에 대한 일종의 경험축적이다. 선악은 원래 인류가 종족이익에 기반하여 정의한 개념이다. 인류의 위에는 선악을 논할 것이 없다. 사람의 이익을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질서이다. 질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무엇인지를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질서를 세계의 궁극적 가치로 보고 세상일의 선악을 평가한다. 소위 육합지외, 존이불론(六合之外,存而不论)이다.

 

유한한 인식과 무한한 이상

 

아마도 사람에게서 가장 천도(天道)에 부합하는 자질은 겸손일 것이다. 질서에 대한 이성적 추구는 인류의 궁국적 가치를 구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 자신의 추구 자체는 하나의 대전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 자신의 인식이 반드시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궁극적인 이상에 관련되는 것이라면 반드시 사람의 궁국적인 인식이 완전히 정확해야 한다. 확실히 이 대전제는 철저히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지식계에 넘쳐나는 자신이 편면적으로 이해하는 질서에 대한 추구는 더더욱 아니다. 인류 전체의 인식은 원래 아주 국한적이다. 나아가 이들 지식을 서로 다른 지식엘리트에게 나누어주게 되면 모든 지식엘리트들의 인식은 더더욱 편먼적이 된다. 이런 궁국적으로 편면적인 인식에 기하여 대가 사랑을 발휘하면 어떻게 질서촉진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현재 사랑이 넘쳐나는 자체는 바로 엄청난 오만이다. 왜냐하면 네가 너의 사랑이야말로 세계의 궁극적인 해결방안이라고 여기면서 스스로 세계의 궁극적인 진리를 터득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비록 어떤 주의가 떠더는 것처럼 절대진리와는 내용상 다르지만, 그런 오만은 일치한다. 천도를 참월하는 잘못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어떤 행위야말로 정당하고 천도에 부합하는 혹은 신이 기뻐하는 것일까? 그저 겸손하게 듣는 것이다. 물질세계의 한계는 분명하고 지척거리에 가까이 있다. 정신세계는 그러나 한계가 없다. 사람의 역사는 재난으로 충만했다. 재난 가운데 사람들은 점점 마땅히 가져야할 규율을 찾고 점차 더 좋은 역사의 길을 찾아왔따. 역사는 지금까지 사람의 아름다운 바램에 따라 발전해오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총합으로 인류역사는 만들어져 왔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또한 자연역사의 한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자연역사야말로 신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