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와타나베 신이치로(渡邊信一郞)
모두 알다시피, 중국고대의 왕권은 천자와 황제라는 두 개의 칭호가 있다. 니시지마 사다오(西嶋定生)씨는 이 두 개의 칭호구별에서 출발하여 연구를 계속한 후, 처음으로 천자와 황제로 구성된 왕권의 이중성을 주제로 하여, 황제권력의 기능분화를 보여주었다. 니시지마씨는 황제육새(皇帝六璽)제도를 고찰한 후, 그중 천자삼새(天子三璽)와 황제삼새(皇帝三璽)의 구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천자삼새는 만이(蠻夷, 외국)과 제사에 사용되었고, 황제삼새는 국내정치에 사용되었다; 나아가 한나라때의 즉위의식에서도 천자즉위-황제즉위의 두 단계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밝힌다. 그후, 오가타 이사무(尾形勇)씨는 즉위의식에 관하여 고찰하고, 가네코 슈이치(金子修一)씨는 옥새제도,즉위의식에 관한 고찰하여, 모두 니시시마씨의 설에 대하여 추가로 연구했다. 니시지마, 오가타, 가네코등의 의견, 특히 즉위2단계설은 여러 방면에서 비판을 받았고, 오가타, 가네코 두 사람은 견해중 일부를 약간 수정했다. 그러나, 황제권력은 천자와 황제라는 두 가지 기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바꾸어 말하면 중국고대왕권의 이중성에 대하여는 컨센서스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제로 삼은 것은 천하관념과 관련하여 표현되는 중국고대왕권의 이중성이다. 중국의 천자=황제는 어떻게 광대한 토지와 민중, 즉 전통중국의 국토관념에서 말하는 천하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천자=황제는 계속하여 자신의 지배정통성에 대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 설명원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면이 포함된다. 첫째는 권력원천과 정통성에 대한 설명 즉 소위 하늘로부터 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천자의 왕권과 관련된다. 둘째는 권력승계에 관한 설명이다. 근거하는 것은 왕조창시자, 즉 수명자의 혈통이다. 이는 황제의 왕권과 관련된다.
먼저 첫번째 설명원리를 검토해보자. 천자의 권력원천 즉 중국고대왕권의 지배이데올로기는 하늘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서한(西漢)말기의 곡영(谷永)은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
"신문천생증민(臣聞天生蒸民), 불능상치(不能相治), 위립왕자이통리지(爲立王者統理之), 방제해내비위천자(方制海內非爲天子), 열토봉강비위제후(裂土封疆非爲諸侯), 개이위민야(皆以爲民也), 수삼통(垂三統), 열삼정(列三正), 거무도(去無道), 개유덕(開有德), 불사일성(不私一姓), 명천하내천하지천하(明天下乃天下之天下), 비일인지천하야(非一人之天下也)"
신이 듣기로 하늘이 백성이 태어나게 했을 때, 서로가 서로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고 왕을 세워 통치하게 했다. 그렇게 해내(천하)를 다스리게 하는 것은 천자를 위함이 아니고, 영토를 나누어 봉한 것은 제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 백성을 위한 것이다. 삼통을 바로세우고, 삼정을 나란히 하여 무도한 자를 제거하고, 덕이 있는 자를 올려야 하다. 하나의 집안이 사사로이 가져서는 안된다. 천하는 바로 천하인의 천하인 것이지,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닌 것이다.
천하는 둥근 하늘이 덮고 있는 정방형의 대지이고(소위 天圓地方), 하늘이 낳은 민중(생민)이 거주하는 정치공간이다. 다만 생민은 스스로를 통치할 능력이 없다. 이들 자치능력이 없는 민중을 통치하기 위하여, 하늘은 통치권력을 덕이 있는 자에게 위임했으니, 그가 바로 천자이다. 그리고 천자 혼자서 통치할 수가 없으니, 삼공구경이하의 관료를 두고, 관료는 천자를 도와 천하를 통치한다. 이런 전통적인 중국황제권력의 원천은 심지어 국가관념에서도 하늘 내지 천하같은 류의 단어를 써서 가장 개괄적으로 표현한다. 천하관념은 전국시대에 출현했다. 그후 점차 정비되어 서한말기쯤 확립되었다.
천자의 권력은 하늘로부터 위임받아 통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자가 만일 덕을 잃으면, 천명(天命)은 새로운 덕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왕조교체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기.예운편>은 이런 선택, 덕이 있는 사람에게 위임하여 천하를 지속적으로 통치하는 상황을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 칭했다. 그 정의는 대동(大同)사회의 이상적인 상태이다. 곡영이 말한 "천하는 천하인의 천하이다"라는 것도 전국시대말기부터 누군가 주장한 것이다. 이런 천하는 절대적으로 공공적인 것이라는 주장은 "천하위공"과 같은 이데올로기와 아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천자는 덕을 증명하기 위하여, 계속하여 하늘에 제사를 거행해야 하낟. 이를 통해, 우주, 천지와 인류사회간의 조화를 실현하고, 천명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또 다른 설명원리는 소위 권력승계이다. 근거하는 것은 왕조창시자, 수명자(묘호를 태조, 고조등으로 한다)으로부터 내려오는 혈통이다. 예를 들어, 상원3년(677년) 당고종 이치가 측천무후에게 황위를 넘기려 하자, 학처준(郝處俊)이 반대하며 말한다:
"천하라는 것은 고조, 태종 두 성인의 천하이지, 폐하의 천하가 아닙니다. 폐하는 종묘를 잘 지켜서, 자손에게 전해주면 됩니다. 나라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황후일족에게 사사로이 넘겨주는 것은 절대로 안됩니다."
이러한 "천하는 고조(태조, 태종)의 천하"라는 문구는 한나라이후 빈번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한경제가 동생 양효왕과 황위를 넘겨주기로 약속할 때, 두영(竇嬰)이 나서서 반대한다:
"천하는 고조의 천하이고, 부자간에 서로 전해지는 것이 한나라의 약속입니다. 황상께서는 어찌하여 양왕에게 넘겨주려고 하십니까?"
황제권력의 정통성은 왕조의 창시자, 수명자에게서 구할 때 그 자손으로서의 역대황제는 단지 창업자와 그 계승자를 제사하는 종묘제사를 통해서만 자신의 권력원천을 확인받을 수 있다. <예기.예운편>에는 이렇게 황제의 권력을 일가의 사유물로 자손에게 전하는 상황을 가리켜 "천하위사(天下爲私)"라고 불렀다. 이는 소강(小康)시대이다. 여기에서는 실력으로 획득한 권력과 혈통으로 뒤를 이은 계승자라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황제는 권력승계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반드시 계속하여 조상을 모신 종묘에 제사를 지내야 하는 것이다.
천자=황제의 천하를 지배하는 두 개의 설명논리는 제천의식과 종묘제사라는 두 가지 의식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이 두 가지 의식은 중국고대왕권의 최고제의(大祀)이다. 그러나, 제천의식과 종묘제사로 설명하는 두 가지 우너리는 즉 천자권력=황제권력이라는 설명원리와의 사이에 분명한 모순이 드러난다. 첫째, 천하를 위한 절대적인 공공성원리("천하는 천하인의 천하이다") 혹은 덕이 있는 자, 혹은 현명한 자가 하늘로부터 위임을 받았다는 통치원리("천하위공")이고, 둘째는 혈통원리이다. "천하는 고조(태조,태종)의 천하이다"라는 것이다. 이는 실력으로 쟁취한 것이다. 마땅히 개인가족이 승계해야 한다("천하위가(天下爲家)". 양자간에는 분명한 모순이 있다. 하늘로부터 위임받은 천하라는 절대적 공공성과 개인가족과 혈통에 근거하여 실력으로 맡는 것 사이의 모순이다.
이 모순은 이미 중국고대왕권 자신도 의식했던 것같다. 서한말기 유향(劉向)이 편찬한 <설원(說苑)>권14<지공편>에는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길지 않으니, 전문을 옮겨보기로 한다:
진시황이 천하를 차지하고나서 여러 신하들을 불러모아 의논했다: "옛날에 오제(五帝)는 현명한 사람에게 제위를 넘겨주었고, 삼왕(三王)은 자손에게 넘겨주었다. 누가 옳은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박사 칠십명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포백령지(鮑白令之)가 대답하여 아뢰기를 "현명한 사람에게 넘기는 것은 '관천하(官天下)'이고, 세습하는 것은 '가천하(家天下)'입니다. 오제는 천하는 공유라고 여겼고, 삼왕은 천하를 사유라고 여겼습니다." 진시황이 말한다: "나는 덕이 오제를 뛰어넘으니, 선양을 취하여 관천하를 하겠다. 누가 나를 계승할 수 있겠는가?" 포백령지가 말한다: "폐하께서는 걸주지도(桀紂之道, 걸왕 주왕은 하,은을 멸망하게 만든 군주임)를 행하시면서, 오제의 선양을 본받으려 하시니, 그건 폐하께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진시황이 분노하여 말한다. "그럼 이치를 말해보아라.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너를 죽여버리겠다." 포백령지가 말한다: "신이 말씀드리겠습니다. 폐하께서는 건물을 구름에 닿게 지으시고, 궁전이 오리에 이르며, 천석의 종을 만들고, 만석의 기둥을 세웠습니다. 부녀자 백명을 거느리고, 가수배우가 천먕이 넘습니다. 여산의 궁궐은 옹(雍)까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천하가 힘들고 백성들도 힘이 빠졌습니다....그런데 어찌 덕이 오제를 넘고, '관천하'까지 이루시려 하십니까?" 진시황은 대답할 말이 없자, 얼굴에서 화난 표정만 짓고 있었다. 한참 지난 후에 말을 꺼낸다: "포백령지의 말은 여러분들 앞에서 나의 못난 점을 들춰냈구나." 그리고 선양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전체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중국최초의 황제이자 진나라의 천하를 만대에 영원하게 이어지게 하고 싶었던 진시황이 이런 문답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설원>에만 나오는 것을 보아서는 아마도 서한이후의 작품일 것이다. 한선제시기에 이 이야기에 상응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한선제(기원전74년-기원전49년 재위)은 형법에 기초한 정치를 추진하면서, 중상서환관을 중용한다. 이에 대하여, 사례교위 개관요(蓋寬饒)가 상소를 올려 비판한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다시 <한씨역전(韓氏易傳)>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오제관천하(五帝官天下), 삼왕가천하(三王家天下), 가이전자(家以傳子), 관이전현(官以傳賢). 약사시지운(若四時之運), 공성자거(功成者去), 부득기인즉불거기위(不得其人則不居其位)"
개관요의 원래 뜻은 관료의 임용은 공평해야 하고, 마땅히 사계절의 순서에 따라 적절한 사람을 임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금오중 누군가가 "개관요의 의도는 선양하라는 것이니, 이는 대역무도합니다"라고 탄핵한다. 한선제는 그 말을 듣고 개관요에게 죄가 있다고 보아 하옥시킨다. 개관요는 치욕을 참지 못하고 자살한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천하위공"과 "천하위가"를 주제로 한 논쟁이다. <예기.예운편>만이 아니라,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한씨역전>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유가경전에서 일종의 사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씨가 세습하는 왕조에서 황제의 자리를 현명한 인물에게 선양하는 "천하위공"사조가 나타나는 것은 대역무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보면, "천하위공"과 "천하위가"간에는 모종의 미묘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천하는 천하인의 천하이지,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다"라는 곡영의 발언을 주장하는 것도, 이 사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진시황과 포백령지간의 대화도 서한말기에 이런 상황하에서 탄생한 이야기일 것이다.
"천하위공" "천하는 천하인의 천하이다"와 "천하위가" "천하는 고조의 천하이다"는 이론적으로 분명히 모순이 존재한다. 한나라후기의 정치동향때는 미묘한 관계에 놓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나라말기의 예제개혁때, 각양각색의 시행착오를 거쳐, 서한말기에 설립된 "남교제천예의(南郊祭天禮儀)"가 최종적인 취사선택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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