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조)

조조(曹操)의 종묘에 배향(配享)된 26명의 위나라 개국공신은...?

중은우시 2023. 2. 27. 14:56

글: 심멱역사적인적(尋覓歷史的印迹)

 

위나라의 기반을 닦은 인물인 조조는 삼국시대 가장 걸출한 영웅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조의 휘하에는 정상급의 문신무장들이 운집해 있었다.

 

조조는 죽은 후, 위나라의 종묘에 모셔진다. 위나라의 개국공신들을 표창하기 위하여, 위명제 조예(曹叡)때부터 시작하여, 일부분 사망한 공신을 조조의 종묘에 배향하기 시작한다. 사서기록에 따르면, 모두 26명의 위나라공신들이 조조의 종묘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할 것은 이 26명의 조조종묘의 개국공신들은 5차례로 나누어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들이 배향된 시기는 서로 다르다. 모사 곽가(郭嘉)는 제일 늦었다. 그렇다면, 이 26명의 조조의 종묘에 배향된 개국공신들은 각각 누구였을까?

 

제1차: 3명(하후돈, 조인, 정욱)

 

<삼국지.명제기>의 기록에 따르면, "청룡원년(233년) 여름 오월 임신, 고대장군하후돈(大將軍夏侯惇), 대사마조인(大司馬曹仁), 거기장군정욱(車騎將軍程昱)을 태조의 묘정에 제사지내도록 조서를 내리다"

 

그러므로, 하후돈, 조인과 정욱은 가장 먼저 조조의 종묘에 배향된 개국공신이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조조가 살아있을 때 심복이자 중신이라 할 수 있다. 하후돈과 조인은 모두 조조의 종친이고, 정욱은 중요한 순간에 조조의 기업을 구해준 고굉지신이다.

 

제2차: 20명(조진, 조휴, 하후상, 환계, 진군, 종요, 장합, 서황, 장료, 악진, 화흠, 왕랑, 조홍, 하후연, 주령, 문빙, 장패, 이전, 방덕, 전위)

 

<삼국지.삼소제기>의 기록에 따르면, "제왕(齊王) 조방(曹芳) 정시4년(243년) 가을 칠월, 대사마 조진(曹眞), 조휴(曹休), 정남대장군 하후상(夏侯尙), 태상 환계(桓階), 사공 진군(陳群), 태부 종요(鍾繇), 거기장군 장합(張郃), 좌장군 서황(徐晃), 전장군 장료(張遼), 우장군 악진(樂進), 태위 화흠(華歆), 사도 왕랑(王郞), 표기장군 조홍(曹洪), 정서장군 하후연(夏侯淵), 후장군 주령(朱靈), 문빙(文聘), 집금오 장패(臧覇), 파로장군 이전(李典), 입의장군 방덕(龐德), 무맹교위(武猛校尉) 전위(典韋)를 태조의 묘정에 제사지내도록 조서를 내리다"

 

이번에 조조의 종묘에 배향된 위나라 개국공신들도 조씨종친과 무장을 위주로 했다.

 

명문세가출신으로는 환계, 진군, 종요, 화흠, 왕랑, 장패의 다섯명 뿐이다. 이런 국면은 당시 조위정권이 극력 명문세가를 배척하던 배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제3차: 1명(순유)

 

마찬가지로 조방(曹芳)의 통치시기에 순유가 제3차로 조조의 종묘에 배향된 개국공신이 된다. 사서에는 "정시5년(244년) 겨울 십일월 계묘, 고 상서령 순유(荀攸)를 태조의 묘정에 제사지내도록 조서를 내리다."라고 하였다.

 

순유가 조조의 종묘에 배향된 것은 비록 제3차이긴 하지만 제2차와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제2차의 연속이라고도 볼 수가 있다. 

 

제4차: 1명(사마의)

 

사마의는 비록 제4차로 조조의 종묘에 배향된 위나라 개국공신이지만, 그가 죽은 후, 조위정권은 이미 사마씨에게 장악당한다. 그리하여, 사마의는 일약 앞의 3차례의 공신들을 뛰어넘어 조조종묘의 위나라 개국공신들 중 으뜸의 자리를 차지한다.

 

사서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제왕 조방 가평3년(251년) 팔월 무인, 태부 사마의가 사망한다. 같은 해 십일월, 관련부서에서 여러 공신들중 태조의 묘정에 배향된 자들은 마땅히 관직을 기준으로 서열을 정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리며, 태부 사마의는 공로가 높고 작위가 존귀하므로 가장 윗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보면, 사마의가 죽은지 겨우 3개월만에 그는 조조의 종묘에 배향되었을 뿐아니라, 그의 공로가 높고 작위가 존귀하여 여러 공신들 중에서 으뜸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당시 조방은 이미 실권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5차: 1명(곽가)

 

곽가는 마지막으로 조조의 종묘에 배향된 위나라 개국공신이다. 조위의 마지막황제인 위원제(魏元帝) 조환(曹奐)의 통치시기였다. <삼국지. 삼소제기>의 기록에 따르면, "경원3년(262년), 고 군제주(軍祭酒) 곽가를 태조의 묘정에 제사지내도록 조서를 내리다"

 

이를 보면 이 26명의 조조의 종묘에 배향된 개국공신은 모두 5차례로 나누어 입사되었다. 태부 사마의는 공신들 중 으뜸이고, 군제주 곽가가 말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 26명의 위나라 개국공신들 중에는 조위의 종친이 가장 많다. 이를 보면 조씨와 하후씨가 위나라를 건립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