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호육곤(胡毓堃)
8월 20일 저녁, 모스크바 부근의 SUV 한대에서 강력한 폭발이 발생했다. 러시아 사회학자, 사상가인 알렉산드르 두긴의 딸인 달리아 두긴이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두긴은 원래 그 차량에 탈 예정이었는데, 우연히 다른 차량으로 바꿔타게 되었다고 한다. "푸틴의 브레인", "푸틴의 라스푸틴"으로 아렬진 알렉산드르 두긴의 삭는 '대국외교'를 훨씬 넘어선다. 그가 제기한 '신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문명을 어떻게 설명하고있을까? 세계는 당금과 미래의 러시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신유라시아주의는 정말 러시아의 외교정책의 지도방침일까?
"푸틴의 길에 더 이상 반대자가 있어서는 안된다. 만일 있다면 그들은 정신병자이다. 병원에 보내어 검사를 받게 해야 한다. 푸틴은 어디든지 있다. 푸틴은 일체이고, 푸틴은 절대적이고, 푸틴을 불가결이다."
이는 러시아의 철학자, 정치학자이며 전략가인 알렉산드르 두긴이 2007년에 한 말이다.
이 해는 러시아와 푸틴에게 최고의 시기였다. 러시아에 있어서, 국제유가와 에너지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경제가 연속 9년간 고속성장을 이루었고, GDP총액은 1.3조달러를 넘어서며, 1인당 GDP가 1만달러를 돌파했다. 국가의 각 분야에서 부활의 조짐이 역력했다.
곧 완료될 대통령임기, 미래생애가 불투명했던 푸틴은 그가 러시아의 부활을 이끌고, 국제영향력을 회복시킨 8년으로 인해, 미국의 <타임>지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신러시아의 짜르가 탄생했다"는 제목을 붙여서.
15년후, 다시 대통령이 되고 10년이 지난 푸틴은 2월 21일의 영상강연에서, 다시 한번 "러시아제국재건"의 야심과 행동으로 서방여론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이번에 푸틴과 함께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푸틴의 브레인"이라고 불리는 알렉산드르 두긴이었다.
그가 이런 별명을 얻게 된 것은 푸틴이 취한 지역대외정책과 행동이 거의 두긴의 이전 "말"과 부합했기 때문이다:
2008년 그루지아충돌이 발발하기전에 두긴은 '화약통'인 남오세티아지역을 방문해서 러시아군이 "그루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를 점령하고, 전체 국가를 차지할 것이며, 심지어 우크라이나와 크리미아반도까지 차지할 것이다. 어쨌든 역사상 그것들은 모두 러시아의 일부분이다"라고 말한 바있다.
그루지아에서 5일만에 전투가 끝난 후, 두긴은 여러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그루지아에서의 시나리오'을 재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혀 감추는 것없이 푸틴에게 "또 다른 한 짝의 신발을 버려서는 안된다" "제국을 재건해야 한다"고 분위기를 잡았다.
2014년 10월이 되어, 크리미아를 러시아가 점령하고, 우크라이나동부에서의 충돌이 공개화되자, 두긴은 "대러시아만이 즉 유라시아연맹을 이룬 후, 우리는 비로소 신뢰할만한 글로벌 강국이 될 수 있다. 현재 진전이 적지 않게 늦어졌다. 우크라이나의 광장항의는 바로 서방의 러시아의 통합적인 진전에 대한 반응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이번 충돌이 아직 격화하기 전에, 두긴은 작년말 <큰 대결 중의 우크라이나>라는 글에서의 우크라이나국가의 역사적 존재를 부정하는 논조라든지, 러시아제국의 역사회고라든지, 러시아행동은 '대지연정치진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설명이라든지 2월말부터 지금까지 푸틴이 한 말 및 행동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그러나, 만일 두긴을 푸틴의 "국사(國師)"와 "외교정책제정자"라고 이해하는 것은 너무 좁게 본 것이다. 철학자이자 당대 유라시아주의를 이끄는 인물로서, 두긴의 관심은 단지 러시아의 외교정책을 제정하는데 머물지 않았다.
사실상, 그를 대표로 하는 포스트소련시대에 다시 일어난 "신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문명과 국가포지셔닝이라는 거대한 명제이고, 러시아사상계에서 중요한 지위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러시아사상사에서 "유라시아주의"는 서방에 융합해야 한다는 "대서양주의"와 자신의 독특한 전통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범슬라브주의"와 상당히 중요한 지위를 지니고 있다. 뒤의 두 가지와 다른 점이라면,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문명에 대한 포지셔닝을 "동양도 아니고 서양도 아니다"라고 본다는 것이다. 즉 아시아에도 속하지 않고, 유럽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지연정치적 의미에서 유라시아대륙에 속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철학과 문화사상으로서, 유라시아주의는 슬라브주의에서 발전한 것이다. 다만 민족주의를 러시아문명건설의 제1요소로 하는데 반대한다; 비록 서방을 배워야한다는 것을 배척하지는 않지만, 서방문명을 복제하는 것으로 러시아사회문화전통을 대체하는데에는 반대한다.
간단히 말해서, 유라시아주의의 사상에서, 러시아는 협의의 '동슬라브문명'도 아니고, 광의의 '서방문명'의 구성원도 아니며, 동서방이 병렬하고 나란히 하는 '유라시아문명'이라는 것이다.
1997년에 쓴 두긴의 대표작 <지연정치기초>(나중에 러시아총참모부군사학원의 교과서로 채택된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대국가의미에서의 러시아는 '유라시아제국'의 '심장지대'이다. 그리고 본인은 이 책에서 다시 한번 영국지연정치가 핼퍼드 맥킨더가 1902년에 제기한 "세계섬"과 "심장지대이론"을 얘기한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두긴의 유라시아주의구상은 지연정치의 시각에서의 역사문화관찰이고, 정확히 이 지역의 독특한 역사문화발전과정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역사에 있어서, '노르만기원설'이든 '슬라브기원설'이든, 서로 다른 정치환경과 시대배경하에서, 서로 다른 국가구조를 위해 봉사했다. 다만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와 동슬라브인들이 공동으로 만든 키에프루스는 원래 러시아가 자고이래로 다원민족과 문화융합의 전통을 지녔다는 것을 말해준다.
남방의 비잔틴제국과 동방정교문화가 융합하면서, 그리고 동방의 몽골유목민족통치를 거치면서, 지금의 러시아인은 자신이 어느 단일문명의 복제품이라는 것을 쉽게 믿기 어렵게 되었다. 게다가 러시아의 역대정권은 유라시아대륙에서 지연정치권력과 영향범위가 바뀌면서, 고전유라시아주의자부터 시작하여 그들은 자신을 '민족융합'의 발전공간으로 보고, 그 자체를 '문명유기체'로 본다.
그러므로, 두긴은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러시아어세계는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니다. 자신의 '유라시아주의자'이다. 특히 1920년대 초기유라시아주의자들은 '비유럽성'을 강조하여 하나때 볼세비키와 10월혁명을 지지했고, 무산계급국제주의와 반신론(反神論)의 소비에트정권을 견지하는 것은 러시아사회현대화의 필연적산물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두긴의 학습과 연구생애에서, 서로 다른 정도로 하이데거의 '존재'개념, 나치주의사상의 영향을 받아,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서방문명은 고대그리스문명이 정의하는 '오만'으로 본다. 특히 그는 유럽 신우파의 사조에서 다양성과 등급제의 정당성논술을 보고, 서방이 추진하는 자유주의, 평등사상 특히 자유민주제도를 특징으로 하는 '역사의 종결'을 서방기독교의 거짓서술이라고 보았다.
자신을 명확히 '보수주의자'로 자처하는 두긴은 유럽신우파, '밀교적 나치즘( Esoteric Nazism)', 종교항존주의, 독일보수혁명, 초국가주의에서의 서로 다른 사상요소를 충분히 이용하여, 미국의 대서양주의 '문화패권'과 세계문명의 '표준화'에 반대한다.
두긴은 <제4정치이론>에서 그의 신유라시아주의의 장래 모습와 질서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20세기의 3대이데올로기 - 자유주의, 공산주의와 파시스트주의와 달리 유라시아주의는 유라시아지역의 특유한 역사와 다원문화전통을 대표한다. 과거 3대 이데올로기중 '자유' 전통, 자본주의제도의 '비판' 전통과 '민족특수정'의 전통은 일정한 정도에서 보류시키고 발전시켰으며, 다만 그의 눈에 극단적인 '낡은 성분'을 제거하여, 이런 '잡종'의 체계에서 서로 다른 문화의 공통성을 찾고, 최종적으로 정치, 경제와 사상에서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대서양주의에 대항해야 한다"
'서방의 비보편적인' 가치관, 그리고 '미국이 기획하는 제5열'을 막기 위하여, 두긴이라는 동방정교 '고의식파'의 옹호자는 슬라브본토신앙의 영향하에 자신의 유라시아주의철학을 발전시켰고, 적극적으로 그의 정치생애에서 관철하였다.
그가 소련해체이래 전후로 조직한 국가볼세비키당과 유라시아당에 참여하한 것이건, 아니면 저서를 통하여 러시아정부와 군대의 의사결정과 이념에 영향을 끼친 것이건, 혹은 그가 일찌기 15,6년전에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등지에서 활동하면서 유라시아청년연맹을 발전시키다가 우크라이나저우에게 5년간 입국금지조치를 당한 것이건, 두긴은 한번도 순수한 이론가는 아니었다. 그의 시야는 일찌감치 구체적인 외교정책은 넘어섰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소련시대에 태어나서, 소련말기에 공부하고, 포스트소련시대에 연구를 한 두긴은 소련의 해체와 러시아지연정치권력의 쇠퇴를 목격하였다는 것이다. 푸틴이 말하는 "20세기 최대의 지연정치재난"도 그는 보았다. 자연스럽게 단일민족국가인 러시아가 대서양주의라는 강대한 적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동시에 소련시대에 "반대의견을 가진 청년"으로서, 레닌식의 '소비에트연맹'으로는 러시아제국의 지연세력범위를 통합할 수 없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두긴은 자신의 유라시아주의철학을 발전시키고, 혈연과 민족을 초월하지만, 지연문명전통에 기반을 둔 새로운 유라시아정치공동체를 고취시켜, 그가 보기에 서방패권에 대항하는 큰 그림을 그렸다.
이를 위하여 그는 심지어 터키를 우두머리로 하는 투라니즘(Turanism) 문명권과도 결맹을 맺고, 이란과 연합하여 러시아의 지연권력을 인도양까지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중국과 동아시아지역에 대하여는 모순되면서 계속 조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역시 농후한 지연정치논리를 드러낸다.
역사에서 철학까지, 종교에서 지연정치학까지, 서로 다른 학과이념과 인생경력이 합쳐져서 이 '푸틴의 브레인'이 만들어 진 것이다.
사상은 사상이고, 이론은 이론이며, 실제는 실제이다. 두긴은 1990년대 중후반에 간행물을 통해 공개적으로 벨기에의 정치학자 장 프랑소와 티리아트가 지지하는 "더블린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심지어 남으로 인도양의 유럽-소비에트제국까지"를 찬양했다. 그때 주류매체와 각국의 정계는 아마도 웃어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전소련지역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가장 서쪽의 트란스니스트리아부터 서남쪽의 코카서스지구까지, 중앙아시아에서 다시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까지 점차 활동하며, 푸틴이 2014년 카자흐스탄은 "(나자르바예프가) 지금까지 국가의 영토 위에서 하나의 국가를 건립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2022년에는 다시 한번 "현대 우크라이나는 완전히 러시아가 창조한 것이다."라고 말하여, 전세계로 하여금 신유라시아주의의 급습이 이미 사상논전의 국면을 넘어섰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푸틴도 2014년, 발다이포럼에서 "러시아는 국가전통가치관에 뿌리를 둔 실질을 숭상하는 보수주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여 두긴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의 <Foreign Affairs>잡지는 2014년 크리미아사건이후 글을 싣고, 정식으로 '푸틴의 브레인'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뿐아니라, 두긴이 자신의 급진적인 유라시아주의사상으로 러시아의 '확장'에 사상 및 이론적 기반을 제공해주고 있으며, 러시아의 크리미아반도점령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소련해체후에 나타난 신자유주의사조는 확실히 최근 들어 기세가 대단하다. 두긴현상이 가졍노 관심은 바로 그 확실한 증거이다. 현재의 러시아-우크라이나국면은 최근의 러시아의 대외정책과 실천에서 '유라시아제국'의 야심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서방세계가 시종 러시아와 선순환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없게 되고, 우크라이나에서 이런 지경에 처하게 되자, 더더욱 국제사회의 생각은 "러시아가 두긴의 신유라시아주의지도사상에 따라 앞으로 행동할 것인가. 그러면 세계는 현재와 미래의 러시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이다.
푸틴이 신유라시아주의의 길을 추구하는지는 일찌감치 제1차로 대통령이 되었을 때 국제관계학계와 여론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뉴헤븐대학 국가안전및정치학과 부교수 매튜 슈미트는 일찌기 2005년 <푸틴은 유라시아정책을 추구하는가?>라는 글에서 피터1세이래 러시아의 신분포지셔닝문제를 회고하고, 푸틴이 실제로 효과적으로 유럽-대서양주의와 유라시아주의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유럽-대서양주의가 주도하는 서방사회에 융합하고, 정치와 사상적으로는 유라시아주의를 강조한다.
비록 이 글은 당시에 이미 러시아가 그루지아, 몰도바, 우크라이나, 벨로루시등 전소련지역에서의 행동에 주목했지만, 작자는 이것이 엄격한 의미에서의 두긴식 유라시아주의사상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일종의 유라시아주의와 범슬라브주의의 사이에 낀 이념이라고 보았다.
어쨌든 지금에 이르러, 푸틴은 유리사아경제연맹을 얘기할 때건, 아니면 여러번 '우크라이나는 우리 역사문화의 구성부분이고, 러시아인민과 우크라이나인민은 같은 인민이다"라고 말하건, 그가 선전하는 것은 여전히 '대러시아(러시아어)세계'이다. 진정한 유라시아주의자선언은 러시아의 역사학자이자 초기유라시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인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가 말한 "중국인, 인도인, 아랍인과 흑인"이다.
매튜 슈미트가 내린 결론은 비록 푸틴이 사용하는 것은 "거짓유라시아주의철학의 서사방식"이지만, 러시아정부는 두긴의 유라시아주의운동과 그 정책이념을 관철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벨로루시독립후의 초대 최고지도자인 스타니슬라우 슈시케비치도 2004년 이렇게 말한다 "푸틴이 전소련국가의 특정정권을 지지하는 것은 철학논리적의미에서의 광범위한 유라시아주의가 아니라, 일종의 범슬라브쇼비니즘이다."
중국정법대학 교수이자 소련/러시아및 동구문제전문가인 진얜(金雁)도 포스트소련시대의 러시아의 '신제국종합증'에 대하여 분석한 바 있다. 그녀는 이렇게 지적한다. 푸틴의 내외정책과 러시아제국시기를 보면 아주 비슷하다. 그 배후에는 '제국가치'가 포스트소련시대에 국가응집력의 유일한 역량이 되었다.
포스트냉전시기에 국가영토가 축소하고, '특수이익지역'이 서방의 무시와 탄압을 받으면서 게다가 옐친시대의 '비군사화, 비볼세비키화, 사유화와 자유화'라는 4대목표는 예상했던 서방의 지지와 원조를 받아내지 못했다. NATO의 동부확장은 더더욱 러시아의 엘리트계층을 경계하게 만들었고, 민족자부심이 극히 강하고, 메시아로서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으며 영토안전에 극단적으로 민감한 러시아인들이 자극을 받아, 유라시아주의와 제국가치관은 시장을 가지게 된다.
이는 좌익의 러시아공산당지도자 겐다니 주가노프로부터, 자유주의를 견지하는 러시아 '사유화의 대부' 추바이스까지 지금은 모두 '제국'이 국가이데롤로기건립에 불가결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진얜이 예로든 전형적인 사례는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셰비치이다. 탐사기자로서 그녀는 인터뷰에서 '제국'이라는 단어가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제국을 사랑한다. 제국이 없으면 나의 생활은 심심할 것이다." "우리의 정신세포에서 제국주의와 공산주의의 유전자가 있다." "러시아는 일종의 사람들이 전율하게 만드는 사상이 필요하다 - 제국" "러시아는 과거에도, 현재도, 장래에도 제국으로 존재할 것이다" "어쨌든 나는 제국주의자이다. 맞다. 나는 제국에서 살고 있다.".....
다만 매튜 슈미트와 유사하게 진얜도 이런 "제국붐"이 의탁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보수주의'의 슬라브주의 조류라고 본다. 두긴이 구상한 유라시아지연범위가 아니라. 더더구나 서쪽에서 더블린부터 남으로 인도양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푸틴 본인도 여러번 말한 바 있다. "복구된 보황주의(保皇主義)"와 "제국의 야심"은 취할 수 없다고. "다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분명하게 우리의 국가이익소재를 이해하고 있고, 말할 수 있으며, 전력을 다해서 쟁취할 것이다."
학술계의 이론적 층면의 연구와 검토를 뛰쳐나와 실제의 국제관계환경에서 러시아정부는 더 많이 '신유라시아주의'를 이용하여 내부적으로 동원하고 대외행동의 정당성을 논술하고 있다. 그러나 외교정책의 지도방침으로 되지는 않았다.
작년 영국의 <국제정치>에 이른 글이 실렸다. 2007년이래, 러시아는 외교실무에서 받든 것은 전략현실주의이다. 미국과 서방이 나토의 동쪽확장을 하지 않는다는 구두승락을 포기하고, 러시아의 나토 심지어 EU가입의사까지도 즉시 거절당한 후, 러시아는 신속히 강국지위를 회복하려는 목표를 현실주의적인 고려에서 시작한 것이지, 유라시아주의 사상의 청사진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가 최근 들어 그루지아, 크리미아, 우크라이나 내지 영국에서의 활동은 일종의 '공격성 현실주의' 논리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방식이다; 현존의 국제질서를 시탐하고, 다시 국제사회의 반응을 보고, 득실을 따진 다음,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의 결론은 러시아는 시종 "전략적 고려"를 한 것이고, 서방과 대규모충돌을 피한다는 전제하에서 러시아가 '장기적이익'을 가지고, 러시아민족이 거주하는 '약소인근국'에 행동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는 두긴의 거대한 '유라시아주의' 제국구상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두긴은 여러번 푸틴이 너무 조심스럽고, 보수적이며 동작이 너무 늦다고 비판한 것이다.
러시아정부와 푸틴이 유라시아주의 구상에 심취하여 돌진한다기 보다는 푸틴의 현실주의가 현재 미국과 서방의 자유주의와 '가치관외교'와 부딛쳐 현재 격렬한 불꽃을 튀기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의 국제사회는 이미 피터대제나 예카테리나2세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제법과 국제질서가 공인되어 있고, 경제글로벌화시대에 각국의 경제발전은 상호의존성이 있다. 안전도 불가분이고, 국가주권, 영토완정과 기본인권이 갈수록 중시된다. 평화와 발전의 시대주제는 쉽게 바뀔 수 없다. 본국발전과 국제정치경제국면의 현상이 직면하여 러시아의 의사결정권자들은 '유라시아제국'은 자신들이 감당할 무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아무도 '유라시아주의'가 푸틴의 마음 속에 얼마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모른다. 두긴의 이론이 미래에 어느 정도로 크레믈린궁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최소한 과거, 현재와 예견가능한 미래의 발전을 보면, 유라시아주으는 확실히 포스트소련시대에 러시아자신의 신분포지셔닝에 대한 하나의 탐색이다. 혹은 러시아사회에 '흥분제'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다만 '대서양주의'와 '범슬라브주의'와 유사하게, 그것은 현재 러시아를 강국의 길로 이끄는 영단묘약이나 청사진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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