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흔다적노력(很多的努力)
주체(朱棣, 나중의 명성조 영락제)는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의 4남이다. 주표(朱標)는 주원장은 장남이다. 홍무원년, 주표는 황태자에 오른다. 즉 제국의 합법적인 후계자이다. 주원장은 관리들을 극단적으로 불신해쏙, 많은 개국공신을 죽여버렸다. 그러나, 주원장은 황태자 주표에 대한 교육을 아주 중시하여, 송렴(宋濂), 이선장(李善長), 서달(徐達), 유기(劉基)등은 모두 주표를 가르친 바 있다.
주원장과 달리, 주표는 온문이아(溫文爾雅)했으며, 일처리는 온화했다. 여러번에 걸쳐 주원장에게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지 말 것을 권했다. 만일 그가 순조롭게 황위를 이어받았다면 아마도 인후한 군주가 되었을 것이다. 주원장의 생각은 일장일이(一張一弛)였다. 그가 지배하는 국가는 막 시작되었고, 전쟁도 빈번하다 그러므로, 강력한 제왕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국가가 안정되면서 온화한 황제로 사회갈등을 완화시킬 필요도 있다. 이는 국가, 백성에 있어서 가장 좋은 선택이다.
하늘은 항상 사람의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는다. 신경써서 배양한 황태자 주푯는 홍무25년 돌연 병사한다. 이는 주원장에게 큰 타격이었고, 괴로움을 주었다. 주표가 살아 있을 때, 주체는 감히 딴 생각을 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표가 죽은 후, 주체의 황위를 노리려는 마음은 더 이상 제어할 수가 없게 된다.
주원장의 여러 아들 중에서, 주체는 능력이 가장 강하고, 가장 우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원장은 주체를 선택하지 않는다. 주표가 죽은 후, 주원장은 주표의 아들 주윤문을 황태손(皇太孫)으로 세운다. 이는 주체를 분노하게 만든다. 여러 해동안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온 주체는 당연히 주윤문을 깔보았다. 이 조카에 대하여 주체는 질투와 원한만 가지게 된다.
주윤문이 즉위한 후의 모습을 보면, 정치수완이건 군사수준이건, 모두 주체와는 차이가 크다. 주윤문은 자신의 판단능력은 거의 없었고, 모두 제태(齊泰), 황자징(黃子澄))같은 자들의 안대로 집행한다. 결국 정난지역에서 패배하게 된다. 주원장의 잔혹한 살륙하에, 주윤문의 부하중에는 이미 능력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여기에 주윤문 자신의 성격문제도 있다. 주체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주윤문은 황제로서 적격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몽골부락은 여전히 상당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오이라트, 타타르도 여전히 중원에 일정한 위협이 되었다. 주원장이 전국을 통일하였는데, 주윤문이 이 기업을 지킬 수 있을지는 문제였다. 만일 주윤문이 대명의 기업을 지켜내지 못하면, 주체가 즉위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비록 주체는 반란을 일으켰지만, 그는 대명에서 황제가 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국가에 있어서, 황제 주체는 적합한 후보이다. 그러나 주표의 비빈, 주윤문의 형제자매에게는 재난이 된다. 자고이래로 새 황제가 즉위하면, 전대의 황족은 모조리 죽임을 당하는 현상이 있었다. 송무제(宋武帝) 유유(劉裕)는 사마씨(司馬氏) 황족을 거의 모조리 죽여버린다. 제고제(齊高帝) 소도성(蕭道成)은 유송황족을 거의 모조리 죽여버린다. 양견(楊堅)은 전국을 통일한 후, 우문씨(宇文氏)일족을 거의 모조리 죽여버린다.
어떤 때는 황족으로 태어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다. 호의호식하는 외에 언제든지 죽임을 당할 수 있다. 언제 도마위에 올라가는 생선, 도살당할 새끼양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3년의 분전을 거쳐, 주체는 마침내 남경성을 함락시키고, 제국의 진정한 주재자가 된다. 이 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얼마나 거대한 댓가를 치렀던가. 수확할 때는 조그만치의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
이경륭(李景隆)이 성문을 열고 남경성은 함락된다. 주체는 즉시 부대에 황성을 포위하도록 명한다. 이렇게 한 유일한 목적은 주윤문을 체포하는 것이다. 주윤문을 찾기만 하면, 살아있든 죽었던 모두 상관없다. 주체는 이미 국면을 통제하고 있고, 주윤문을 잡기만 하면, 대외적으로 어떻게 말하든 상관이 없다. 어쨌든 그 주체도 주원장의 넷째아들이고 계승권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주윤문이 살아있으면 그를 핍박하여 황위를 양보하게 할 수 있다. 그후에 기회를 잡아 주윤문을 죽여버리면 된다. 그러면 남는 근심거리가 사라질 것이다. 만일 주윤문이 확실히 죽었다면 처리하기 좋다. 황제도 없으니, 주체가 순조롭게 즉위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사정의 복잡도를 본다면, 주윤문이 죽는 편이 가장 좋다. 어쨌든 죽은 사람은 말을 하지 못하는 법이다. 최종결과는 주윤문이 행방불명이 되고 영원한 수수께끼가 되어버렸다. 주윤문을 찾아내기 위해, 주체는 적지 않은 노력을 들였다. 심지어 그가 즉위한 후에 생육에도 문제가 발생하여 더 이상 자식을 낳지 못한다. 이를 보면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체가 즉위한 초기에, 주윤문을 찾는 것은 단순히 찾아내는 것이 아니었고, 아마도 추살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즉 발견한 후에 바로 죽여버리는 것이다. 가장 간단하고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다. 효율도 가장 높고, 후환도 근절한 것이다. 주윤문에 대하여 주체는 이미 이런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주체의 후비나 나머지 아들 즉 주윤문의 형제들에 대하여도 무슨 우대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주표는 아들이 5명 있었다. 각각 우회황(虞懷王), 주웅영(朱雄英), 건문제 주윤문, 오왕(吳王) 주윤통(朱允熥), 형왕(衡王) 주윤견(朱允熞), 서왕(徐王) 주윤희(朱允熙). 주표에게는 두 명의 비(妃)가 있다. 각각 원비(元妃) 상씨(常氏), 계비(繼妃) 여씨(呂氏).
원래 적장손인 주웅영은 홍무15년에 요절한다. 나이 겨우8살이었다. 주웅영이 요절했기 때문에, 주윤문에게 황태손이 될 기회가 돌아온 것이다. 주윤통은 건문원년 봉지인 항주로 가야 하는데 항주로 가기도 전에 주체가 정난지역을 일으켰다.
주체가 황제에 오른 후, 주윤통도 고난의 시기를 맞이한다. 먼저 광택왕(廣澤王)으로 격하되고, 그후 백성으로 다시 격하된다. 백성으로 신분이 격하되더라도 최소한 살아남을 수는 있었다. 단지 주체가 봉양(鳳陽)에 연금했고, 영락15년에 사망한다. 구체적인 사인은 중요하지 않다.
형왕 주윤견에 대하여 주체는 먼저 회은왕(懷恩王)으로 격하시키고, 그의 형인 주윤통과 마찬가지로 봉양에 연금한다. 사망시기는 영락12년경이다.
서왕 주윤희는 부혜왕(敷惠王)으로 격하되고, 모친 여씨와 함께 의문태자능묘(懿文太子陵墓, 의문태자는 부친 주표)에 거주한다. 얼마 후, 거소에 화재가 발생하여 불에 타 죽는다. 아마 정상적인 사망은 아닐 것이다.
주표의 비인 상씨는 홍무11년, 난산으로 사망한다. 당시의 의료수준으로 보면 난산일 때 죽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여씨는 주윤희와 함께 그 신비로운 화재사건에서 사망하고 만다. 여씨와 주윤희의 죽음이 가장 의심스럽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화재는 대부분 인위적인 것이다. 그리고 주윤희가 죽었을 때 나이가 겨우 16살이다. 아마도 주체가 그렇게 한 것일 것이다.
이는 송태종 조광의와 유사한 점이 있다. 조광의가 즉위한 후 조덕소는 자살하고, 조덕방은 병사한다. 후세 사람들은 대부분 조덕소와 조덕방은 송태종에 의해 해침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주체는 영명신무한 황제였지만, 그는 강퍅자용(剛愎自用), 시살무도(弑殺無度), 다의시기(多疑猜忌)한 사람이었다. 그는 즉위후 적지 않은 사람을 죽였다. 건문제의 옛 신하들, 건문제의 옛 장수들, 그리고 많은 궁녀와 종복들. 황족간에는 무슨 가족의 정같은 것은 없다. 만일 선택할 수 있다면 주표의 아들들은 아마도 다시는 제왕지가에 태어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주체가 죽은 후, 그의 몇몇 아들도 마찬가지로 부친의 뒤를 따른다. 모두 3명의 아들이 살아 있었는데, 둘째는 조카 명선종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투항하고 피살된다. 셋째도 우울하게 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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