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

제갈량이 조조를 미워하게 된 원인은....?

중은우시 2018. 5. 14. 12:03

글: 문재봉(文裁縫)


193년, 제걀량의 나이 12살때이다. 이때 서주(徐州)의 햇볕은 나른했다. 외지의 각종 할거전쟁도 제갈량의 가족에게는 머나먼 일이었다. 다만, 총명한 제갈량은 이때 이미 적지 않은 책을 읽었고, 사회와 인생에 대하여 어느 정도 생각을 갖추고 있었다. 서주의 담담한 생활은 괜찮은 편이었다. 이 난세에 이렇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꿈에도 그리는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제갈량은 조용한 생활가운데 생각이 요동쳤다. 어쨌든 그는 태산군(泰山郡), 서주성정도만 볼 소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해의 어느 날, 부친 제갈규(諸葛珪)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그는 중요한 임무를 받았기 때문에 아마도 늦어서야 돌아올 것이라고. 공부한 것은 형인 제갈근 혹은 숙부인 제갈현에게 검사받으라고. 원래 중요한 큰 인물이 태산군 화현(華縣)으로 와서 노년을 보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서주목(徐州牧) 도겸(陶謙)은 아주 이 일을 중시하여 서주의 대소관리들을 동원하여 접대업무에 소홀함이 없도록 했다. 큰 인물이 노년을 보낼 곳인 태산군의 군수는 더욱 이 일을 중시했다. 태산군수 응소(應卲)는 사람들을 모아서 임무를 나누어 주었다. 너는 관사를 준비하고, 너는 환영현수막을 만들고....이때 제갈규는 화초를 준비했다. 모두 움직여야 할 때이다보니, 평소처럼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었다.


그 큰 인물은 도대체 누구일까?


그는 바로 조숭(曹嵩)이다. 바로 조조의 부친이다.


당시, 조조는 서주와 접경한 연주(兗州)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자신의 세력을 키워갔다. 아들 조조가 연주의 우두머리인데, 부친은 왜 연주에서 노년을 보내지 않았을까? 오늘날같으면 아들이 광동에서 관리로 있는데, 부친이 티벳으로 가서 노년을 보낸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확실히 조조는 부친 조숭에게 연주로 와서 노년을 보내라고 하였다. 그러나 조숭도 보통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은 일반인과 달랐다.


조숭의 양부는 환관대장추 조등(曹騰)이다. 조등은 동한말기 환관전권시대에 세력이 아주 컸다. 양부의 덕으로 조숭은 사례교위를 지냈다. 제갈량이 조상인 제갈풍과 같은 직위이다.


한영제시기에는 관직을 돈을 주고 공개적으로 팔았다.


이런 매관매지의 기회를 조숭이 어찌 그냥 넘길 것인가. 그래서 그는 거액을 들여서 "대사도(大司徒)"의 관직을 산다. 대사도는 삼공(三公)의 하나이고 그 위는 황제뿐이다. 황제가 황위까지 돈을 받고 팔지는 않을 테니까. 조숭으로서는 살 수 있는 가장 높은 관직을 산 것이다. 이 위치에서 조숭은 당연히 적지 않은 돈을 긁어 모았고, 금방 엄청난 재산을 모은다. 조조가 거병하면서 돈이 필요할 때, 조숭이 많은 자금지원을 해준다.


이제, 조숭은 늙었고, 말년을 보내야 한다. 아들은 연주로 오라고 하는데, 그는 거절한다. 거절한 원인은 바로 연주가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그는 조용하게 지내고 싶었다. 조숭은 평생동안 호의호식하며 살았고 고생을 겪지 않았다. 연주는 즐겁게 놀 곳도 없고, 맛있는 먹을 것도 없다. 그는 거기는 재미없다고 여긴 것이다. 어쨌든 조숭의 마음 속에는 서주가 노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태산에서 일출을 볼 수도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인간세계의 선경인 것이다.


조숭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데리고 떠난다.


서주목 도겸은 각 방면의 역량을 동원하여 준비업무를 한다. 제갈규도 야근을 하면서 준비했다. 왜 도겸이 이렇게 열정적이었을까? 이치대로라면 현재의 군벌할거시대에 서주는 바로 도겸의 땅이다. 누구든 자기 땅에서는 자기가 주인이다. 도겸은 조숭이나 조조를 무시해도 되고, 조숭이 경계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도겸이 열정적인 주요한 원인은 바로 그가 조숭이 서주에 와서 노년을 보내는 기회에 조조와의 긴장관계를 해소하려는 것이다.


먼저 당시의 할거형세를 간단히 알아보자. 도겸의 서주 북쪽은 조조의 연주이다. 연주의 북쪽은 원소(袁紹)의 기주(冀州)이다. 기주의 북쪽은 공손찬(公孫贊)의 유주(幽州)이다. 이때의 도겸은 공손찬과 관계가 괜찮았다(유비도 거기에 있었다). 공손찬은 원소와 사이가 나빴으나, 조조는 원소와 같은 편이었다. 그래서, "친구의 친구는 친구이고, 친구의 적은 적이다"라는 원칙에 따르면, 이론적으로 도겸은 조조와 적대적이어야 했다. 게다가 서주와 조조의 연주는 접경하고 있어 먼친척도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이리저리 고민해 보다가 도겸은 이것이 조조와 관계를 개선할 좋은 기회라고 여긴 것ㅇ다.


모든 조치를 취한 후 성의를 표시하기 위하여, 도겸은 200여명의 고급호위를 보내어 조숭을 호송한다. 이 200명의 우두머리는 장개(張闓)이다. 그는 대표적인 토비(土匪)이다. 도겸이 이 임무를 장개에게 맡길 때, 주로 장개가 키도 크고 덩치도 좋고 무술도 뛰어나기 때문에 각지의 토비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때문이었다. 도겸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장개는 원래 토비였다. 정치사상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고 그저 힘이 중요하다. 그래서 아주 위험한 인물이다. 장개는 임무를 받은 후,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이건 그저 평소에 하던 일일 뿐이다. 그러나 조숭일가의 짐을 보자 그는 자신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누군가 수백억원의 현금을 들고 시골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그게 어떤 충동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을까? 토비인 장개는 돈을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많은 돈을 본 적은 없다. 그의 당시 심리상태가 어떤지 지금 알 수는 없다. 단지 그는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살인강도. 이렇게 하여, 삼공의 직위에 있던 조숭일가 40여명은 모조리 토비의 손에 죽는다. 장개는 돈을 들고 튀어버린다.


그저 노년을 보내려던 큰 인물이 이렇게 죽어버렸다. 그런데, 이 일의 영향은 아주 컸고, 주로 아래의 몇 가지 방면이다:


첫째, 도겸이 곤란하게 되고, 조조는 분노한다.

둘째, 노년을 보낼 목적지인 태산군의 우두머리이자, 제갈량부친의 상사인 응소는 놀라서 그날 밤으로 바로 원소에게 투항한다.

셋째, 조조는 서주를 공격하여 도륙낼 결심을 한다. 이렇게 하여 서주는 세외도원에서 인간지옥으로 바뀐다.

넷째, 유비는 도겸에 투신한다.

다섯째, 제갈량의 부친 제갈규가 사망한다(제갈규의 사망에 대하여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일설에서는 병사하고 하고, 일설에서는 조조측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상사인 응소가 도망치기 전에 제갈규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제갈규는 남아서 책임을 지기로 하고 도망치지 않았다)

여섯째, 제갈량은 조조에게 아주 나쁜 인상을 갖게 된다. 잔인무도한 인물로. 이 인상으로 역사의 흐름이 바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