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군모(李君貌)
이 세계에 어떤 사람은 문제를 보면서 그저 자신의 눈앞의 것만 보고, 그저 사람의 일만 보고, 그저 현실의 것만 본다. 어떤 사람은 이와 다르다. 보는 것은 배후의 것이고, 정신의 것이다. 두 가지 세계관, 인생관은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도 서로 다르게 만든다.
이런 말이 있다: "한 사람이 밤에 차를 몰고 가다가 교차로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황색등이 홍색등으로 바뀌어 있었는데, 속도를 올려서 지나갔다. 결국 경찰에게 단속을 당했다. 경찰이 묻는다: '당신은 홍색등을 보지 못했습니까?' 그는 대답한다: '봤습니다.'. '그런데 왜 그냥 지나갔습니까?' 경찰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가 대답한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법집행하는 경찰은 신경쓰지만, 법률에 대한 존중은 없었고, 도덕양심에 대한 존중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취한 행동은 아주 공리적이다. 경찰이 있으면, 그는 홍색등에 차를 세운다. 경찰이 없으면 그는 신호등을 지키지 않는다. 외재적인 요소에 구속을 받을 때, 그는 도덕을 지킨다. 외재적인 요소애 구속받지 않을 때 그는 도덕을 지키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의 도덕은 항상 낮은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간의 상호신뢰관계도 건립되기 힘들다. 양호한 사회기풍도 형성되기 어렵다.
또 다른 이런 말도 있다: "태국으로 간 한 관광객이 기념품을 사는데, 여직원과 가격흥정을 하고 있었다. 상점은 이렇게 정하고 있다; 1개에 50위안, 2개는 80위안, 3개는 100위안. 다만 관광객은 1인당 3개까지만 구매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머리가 잘돌아가는 중국인은 직원에게 제안한다: '너는 나에게 두개 80위안의 가격으로 달라. 너는 사장에게 3개 100위안에 팔았다고 보고해라. 그러면 너와 나 모두 이익이고, 너의 사장에게도 손해가 없지 않느냐?" 그러나 직원은 고개를 흔든다. "이 일은 당신과 나만 아는 일입니다." "아닙니다. 부처님이 알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이 여직원을 보면 그녀의 인생관 세계관은 더욱 깊이가 있다. 그녀가 구체적인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그녀는 겉으로 보이는 것뿐아니라, 그 배후의 것까지 고려한다. 장삿꾼의 규칙과 사람으로서의 도덕, 그리고 머리 위의 신까지도 생각한다. 외재적인 요소가 구속하지 않는 상황하에서 그녀가 나쁜 일을 하면 그녀에게 이익만 있더라도 그것은 도덕에 맞지 않고, 장사의 도리에도 맞지 않고, 머리 위의 신의 말씀도 어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사람에게 사람으로서의 도덕을 지키게 하는데 유용하다. 사람과 사람간의 상호신뢰를 건립하는데 유용하다. 양호한 사회기풍을 형성하는데 유리하다.
현재의 중국사회는 세속사회이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그들이 중시하는 것은 구체적인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볼 수 있도 만질 수 있는 보답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것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징벌이다. 그들이 경외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외재적인 권위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많은 이국타향에서는 몰 수 없지만, 중국에서는 자주 발생하는 황당한 일들이 많다.
- 중국의 교육은 지방장관이 만족하고, 교육국장이 만족하고, 가장이 만족하면 된다. 교재내용에 진실한 말이 있는가? 학생의 진,선,미에 대한 배양이 있느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 기업이 오수를 배출하는데, 환보국에서 처벌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 지방생태환경을 악화시키는지 여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 글을 쓰면서, 발표하고 이름을 날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진리를 얘기했는가? 사회가 가쳐야할 가치관을 가졌는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 광산사고가 발생하면 가족은 정붸 기업주와 관련관리의 책임을 추궁해달라고 요구한다. 다만 현지정부는 가족에게 현지정부 스스로 만든 처리방안에 서명하라고 요구한다. 먼저 체결하면 더 많은 배상금을 받고, 나중에 체결하면, 배상금은 감액된다. 이런 방법이 죽은 사람의 가족에게 공정한가? 죽은 자의 하늘에서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가? 정부의 위신을 수립할 수 있는가? 아무도 관심이 없다.
- 할머니가 차에서 내라다가 넘어져서 다쳐서 길가던 사람이 좋은 뜻에서 부축해주면, 할머니의 가족들에게 소송을 당하게 된다. 길가던 사람이 할머니와 부닥쳐서 다쳤다고 주장하며, 길가던 사람에게 배상하라고 요구한다. 할머니의 가족은 현지의 하급관리이고, 법관은 자기 사람의 편을 드는 차원에서 원고승소를 판결한다. 이런 판결이 법률의 존엄을 해치는가 아닌가? 더 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에 넘어진 사람을 부축하지 못하도록 할 것인가 아닌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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