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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국5

발해(渤海)와 일본(日本)의 해상교류 글: 송정(宋靖) 발해국(698-926)은 '해동성국'으로 불리웠고, 나라는 200여년간 존속하면서, 동북아 여러 나라, 지역과 문화 및 경제교류를 진행했다. 발해국은 동북아에서 중요한 항구를 보유하고 있었고, 해상교통로를 통하여 발해국 남경(북한 함경남도 북청군의 청해토성(靑海土城))에서 출발하여 직접 신라로 가고, 다시 일본으로 갔다; 발해국 동경(지금의 길림성 훈춘시 팔련성. 일설에는 북한 부거리)에서 출발하여, 직접 일본으로 갔다. 대일항로는 비교적 안전했다. 발해국은 강역이 동해에 닿았고, 5개의 교통간선중 하나로서 일본도(日本道)는 발해의 제2대왕인 대무예(大武藝, 718-737)시기부터 개척되었다. 그때 일본은 신라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일부러 발해와 '친인결원(親仁結援)'의 우호관계를 건립.. 2023. 5. 19.
발해국(渤海國): 사라진 동북의 문명고국 (이 글은 중국인의 발해에 대한 입장을 알아볼 수 있는 글이서 소개합니다) 글: 사문(思文) 역사상의 발해국이 해동성국(海東盛國)이다. 중국고대역사상 말갈족을 주체로 한 정권이다. 그 범위는 지금의 중국 동북지구, 한반도 동북 및 러시아 극동지구의 일부에 상당한다. 698년, 속말말갈의 우두머리인 대조영(大祚榮)이 동모산(東牟山, 지금의 길림성 돈화 서남성자산 산성, 일설에는 지금의 길림성 연길 동남성자산 산성 혹은 용서고성이라고 한다)이 '진국왕(震國王, 振)"이라 칭하며 정권을 건립한다. 713년, 당현종은 대조영을 "발해군왕(渤海郡王)"에 봉하고, 홀한주도독(忽汗州都督)의 직위를 수여한다. 762년, 당나라는 발해를 '국(國)'으로 승격시킨다. 발해의 도성은 동모산 일대이다. 742년에는 중경현덕부.. 2021. 6. 4.
지금은 사라진 역사의 고성(古城) 1.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상경용천부는 고대 발해국의 도성이다. 당나라 장안성을 모델로 설계하였고, 요태조 야율아보기가 천현원년(926년) 발해국을 멸망시킨 후 훼멸된다. 유적지는 흑룡강성 흥안시(興安市) 경내에 있다. 발해국은 200여년간 존속하여 시간이 짧지 않은 편이다. 그러.. 2017. 7. 4.
동단국(東丹國): 발해의 후예? 글: 남아행(男兒行) 중국의 역사책을 펼치면, 현란한 왕조교체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왕조교체는 역사가 전진하는 동력이다. 하나의 새로운 왕조는 항상 이전의 구왕조의 멸망으로 탄생한다. 발해국도 예외는 아니다. 처음에는 진국(震國)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하고, "해동성국(海東盛國)".. 2013. 5. 18.
요나라의 개국황제와 황후 글: 덕덕왜특(德德歪特) 요나라는 북송, 서하, 금나라와 함께 존재하며, 이들과 전쟁시기와 평화시기를 겪었으며, 한때는 중국 중세기후기역사의 주류가 되었다. 동시에 중국의 통일다민족국가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당나라 함통13년(872년), 거란족의 걸출한 우두머리 야율아보.. 2008.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