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후)

모신우(毛新宇, 모택동의 손자)의 거짓말

중은우시 2006. 9. 19. 11:55

작자: 주건국(朱健國), 2006년 9월 9일 심천 '早叫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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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올해가 "문혁발동40주년"과 "문혁종결30주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혁은 아직도 중국에서는 금기이다. 그러나 어떤 매체들은 교묘하게 '문혁'과 관련된 사건들을 얘기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문혁'을 잊지 않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시나닷컴은 '1976년당산대지진'을 토론한 후 2006년 9월 8일에는 '모택동의 손자 모신우 박사를 특별히 요청한 귀빈담화실'이라는 것을 만들었고, 모신우가 네티즌들과 얘기하도록 했으며,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에 대하여 얘기하도록 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모신우의 저능과 거짓말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고, 반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비록 모택동의 손자인 모신우가 모택동에 대하여 헛소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어쨌든 문혁을 연구하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모신우가 매일 등장했으면 하고 바란다.

 

시나닷컴의 호스트인 마양이 네티즌들과 모택동의 손자인 모신우로부터 이끌어낸 거짓말들을 감상해보도록 하자.

 

첫째,

 

네티즌: 모신우는 자기의 할아버지를 친히 만난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자료에서 그렇다고 본 것같은데요...

모신우: 내 기억에서의 인상이 비교적 모호합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어려서, 일반적으로 가서 뵐 때는 내 모친이 어렸을 때 나를 데리고 같 것입니다.

 

주건국 평석:  모택동이 제왕의 삶을 살았고 기록을 중시했다는 것을 보면, 유일한 손자를 만났다면 사진을 남기지 않았을리가 없다. 마음씀이 보통이 아닌 소화(邵華) 장군(모신우의 모친)의 총명함을 감안하면 모신우를 데리고 모택동을 만났다면 어찌 사진을 하나 남겨서 이 "역사적인 회견"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것이 얼마나 큰 정치적인 자본이 될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데도. 모신위는 지금까지 한장도 모택동과 찍은 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단지 어릴 때 "향산의 쌍청빌라에서 할아버지의 옛날 사진을 쳐다보는 모습"을 찍은 불쌍한 사진만을 내놓고 있다. 모택동의 개인의사였던 이지수가 말한 바와 같이 "모택동은 생전에 손자를 만나는 것을 계속 거절했다"는 말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

 

둘째,

 

네티즌: 내 생각에는 모신우의 말하는 것에서, 우리의 영도자 또는 모택동 동지를 떠올릴 수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무신우,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와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이외에 진정으로 같은 데가 있다고 느끼는가?

모신우: 내 느낌은 아주 기묘하다. 비록 나는 할아버지와 그리 많이 접촉하지는 않았지만, 혈액속에서 내 할아버지의 많은 흥취들이 유전되어 내려오는 것을 느낀다.

 

주건국 평석 : 무선 "나는 할아버지와 그리 많이 접촉하지는 않았지만"인가. 아마도 전혀 만나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신우와 모택동이 구체적으로 만난 시간과 사진이나 원시기록을 내놓아봐라. 모택동은 일생동안 여러번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살았다. 예를 들어 중경에서 '장개석위원장만세'를 외친 것이 그렇고, 1949년 '공동강령'을 하면서 민주당파를 끌어들인 것도 그렇고, 1954년 헌법이니 민주니 하면서 전국인민을 끌어들인 것도 그렇다. 그러나, 모신우처럼 이렇게 저급한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셋째,

 

마양: 만일 모택동 동지가 현재의 중국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모신우: 사실 중국의 개방국면은 어르신께서 매우 찬성하신 일입니다. 현재 국가의 개혁개방의 길은 어르신께서 예전에 이미 생각해 둔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어르신의 저작인 <<십대관계를 논한다>>와 <<사람의 정확한 사상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보면, 그 안에 현재의 이런 길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어르신은 현재 우리의 기본조류, 사회발전방향의 주류는 좋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르신께서는 당의 기풍을 청렴하게 하는 것을 매우 중시하셨으므로, 어르신께서는 분명히 당의 기풍을 청렴하게 건설하는 쪽으로 더욱 강화하도록 하셨을 것이고, 이것도 하나의 현실문제입니다. 제7기2중전회에서 어르신은 이 문제에 대하여 매우 중요하게 언급하셨습니다. 그 외에, 나는 그가 특히 인민군중의 사상을 존중했다고 생각합니다. 인민군중의 이익을 가장 높게 생각하셨다는 것이 모택동사상의 핵심입니다.

 

주건국 평석 : 모택동이 아마도 모신우가 이렇게 흑백을 뒤집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면 이 엉터리같은 손자를 분명히 혼내줬을 것이다. 모택동사상의 핵심은 혁명투쟁이다. 무슨 개혁개방이냐. 그가 어쩔 수 없이 닉슨을 초청했고 중미관계를 회복했지만, 이것은 소련의 진공을 막기 위한 것이었고, "짐이 곧 국가"라는 것을 유지하기 위한 일시적인 미봉책이었다. 모택동의 일생의 준칙은 모두 영도자의 권력이 어떤 것보다 높다는 것이었고, 그는 스스로 "중이 우산을 썼으니, 법도 없고 하늘도 없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가 진짜 '인민군중의 이익을 최고로 생각했다면' 어찌 '삼면홍기'로 수천만을 굶어죽이고, 어찌 '10년문혁'으로 전 중국인민을 박해하고 가지고 놀았겠는가? 모택동이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반드시 7,8년에 한번은 다시 문혁을 일으켰을 것이다.

 

최근들어, 매번 모택동기념일때마다. 매체들은 모두 모신우등 모씨일족들이 모택동을 기념하는 글들을 싣고 있다. 이것은 당연히 모신우가 모택동을 업고 모씨일족의 이익을 챙기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모신우가 "태손당(太孫黨)"을 결성해서 "태자당(太子黨)"을 도우려고 한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백성들이야 그저 되는 걸 봐가면서 좋은 걸 취하면 된다. 모신우가 저능과 거짓말로 다시 문혁을 시작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려고 하는 것을 빌어, 가짜 개혁가, 가짜 헌정자의 진상을 까발리면 되는 것이다.

 

이러써 볼 때, 나는 모신우가 매일 거짓말을 하고 다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