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노패악곤(老牌惡棍)
최근 하궤사건(下跪事件, 하궤는 무릎꿇다는 뜻임)이 정말 많이 일어나고 있다.
배달기사가 수위에게 무릎을 꿇고, 집주인이 지도자에게 무릎꿇고, 학부모가 학교에서 무릎꿇고,노동자가 프로젝트담당자에게 무릎꿇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긴다: 중국인들은 왜 이렇게 무릎꿇는 걸 좋아할까?
중국인들이 무릎꿇는 걸 좋아한다는 건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무릎꿇는 건 중국인만 하는 게 아니다. 지배등급제도가 있는 영장류집단에는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침팬지가 그러하다.
인류사회에서 무릎꿇는 건 더욱 자주 볼 수 있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서방에서도 종교의식, 기사훈장수여에 모두 무릎꿇는 행위가 수반되었다. 동아시아문화권에서는 중국, 일본, 한국을 포함하여 모두 무릎끓는 관습이 있다. 특히 군주가 있는 나라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왕왕 전체인민들이 배워야하는 것이 된다.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무릎꿇는 행위에서 명확하게 등급이나 지위의 속성을 가진 것은 점차 사라졌다. 지금은 이미 이런 목적으로 무릎꿇는 경우는 거의 보기 힘들다. 설사 동아시아라 하더라도, 단지 부분적인 의미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존경, 사죄같은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등급제도하에서 대등하지 않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무릎을 꿇었다면, 그런 제도가 와해되어 버리고 나면,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강력한 권력의 압박을 느끼지 않으므로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지 않게 되는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1912년 궤배례(跪拜禮, 무릎꿇고 절하는 예의)가 폐지된 후,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람과 사람간에는 아무리 지위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상호 마주보며 동등한 존엄을 가지게 되었다.
다만, 중국에서는 다른 점도 있다. 한나라때부터 청나라때까지 근 2000년간, 중국인의 대부분의 시간동안 무릎을 꿇어왔다. 조당(朝堂)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존비유서(尊卑有序), 충성맹세를 표시한다. 다만 민간에서는 백성들의 자기보호수단이 되었고, 일종의 생존철학이 되었다.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권력과 권력이 만들어내는 고난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려면 무릎을 꿇어야 했고, 자비와 연민을 구하려면 무릎을 꿇어야 했다. 비록 대다수의 경우에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찌만,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무릎을 꿇는 것은 순종을 표시하는 것이고, 똑바로 서 있는 것은 반항을 의미한다는 것을. 순종한다고 하여 반드시 좋은 대우를 받지는 않지만, 반항을 하면 반드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것을.
비록 중국에서 이미 제왕이 지배하는 구사회는 100년전에 끝이 났지만, 이런 대다수의 사람들 마음 속에 새겨진 생존철학은 수천년간의 축적을 거쳐 일찌감치 전통문화가 되어 버렸고, 골수에 박혀, 무의식적인 조건반사가 되어버렸다.
조건반사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반드시 일정한 경우에 촉발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하한 문화에서도 무릎을 꿇는 것은 크나큰 굴욕이다. 객관적인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누구도 아무런 이유없이 무릎꿇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망매지갈(望梅止渴)처럼 매실을 보면 입에서 타액이 분비되는 것이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든 몇 가지 사례는 이런 조건을 만족시킨다. 배달기사, 집주인, 학부모, 노동자, 그들이 직면한 것은 불법적으로 전동자전거를 몰수당하거나, 공사를 마무리하지 않은 주택, 학교에 보낼 수 없는 곤경, 밀린 급여등이다.
바로 이렇게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권력과 권력이 만들어내는 곤란에 직면하여 절망한 그들은 일순간 오래된 혈맥이 각성하여 풀썩 무릎을 꿇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마도 그들이 너무 쉽게 무릎을 꿇고, 기개가 없다고 질책할 것이다. 그러나,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역사를 읽을 때, 너는 그런 일반백성들을 질책했었던가? 내 생각에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착취와 수탈의 황권사회를 욕했을 것이다.
이건 왜 국부를 손중산(孫中山)으로 모시고, 진황한무(秦皇漢武, 진시황과 한무제)로 모시지 않는 이유이다.
중국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바로 소위 '사대문명고국'중 중화문명만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한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에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이런 보수적인 전승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좋은 점은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중국인들로 하여금 최소한 두 번의 좋은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
지금 중국사회의 운영논리는 본질적으로 100년전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불공정을 만나면 무릎을 꿇는 굴욕적인 방식으로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한다. 해결될지 아닐지는 그저 어르신의 심정에 맡기는 것이다.
1949년 우리는 "중국인민이 일어섰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75년이 흘렀는데, "하궤문화"로 대표되는 전통이 남긴 유독(遺毒)은 여전히 우리가 진정한 현대문명사회로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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