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후기)

아편전쟁(鴉片戰爭): 하나의 신화

by 중은우시 2024. 7. 20.

글: 고천활해(高天闊海)

영국의 역사학자 Julia Lovell(중문명 藍詩玲)이 쓴 "The Opium War: Drugs, Dreams and the Making of China"(아편전쟁: 마약, 꿈 그리고 중국만들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편전쟁은 중국의 "founding myth(건국신화)"중 하나라고.

아편전쟁은 중국인에게 있어서 의미가 아주 크다. 중국의 가련한 역사교육 속에서, 정부는 이데올로기라는 볼록거울을 통하여 아편전쟁을 엉망진창으로 고쳐썼고 서방국가에 대한 민족원한을 선동하며, 중공통치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중국은 역사허무주의를 이용하여 고쳐쓴 중국역사에서 아편전쟁은 중국근대사의 시작이며, 소위 "중화민족백년굴욕"의 기점이 된다.

줄리아 로벨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녀가 알고 있는 바로는 국제적으로 아편전쟁에 관한 전문역사서가 없다. 중국인들이 귀가 따갑게 들어온 아편전쟁이 서방에서는 그다지 큰 인기나 영향력이 없는 것이다.

사실상, 아편전쟁에서 영국군 혹은 영국프랑스연합군에게 참패한 청나라정부는 또 어떻게 아편전쟁을 기록했던가? 줄리아 로벨의 인용에 따르면, 청나라정부의 사서상 전쟁에 대한 기록은 "변흔(邊衅, 변방분쟁)"이다. 즉, 영국군과 청나라군의 변방분쟁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용어사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패배한 청나라제국은 아편전쟁을 그다지 큰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 문제가 생긴다: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청제국도 좋고, 영국, 프랑스도 좋다. 이들은 모두 아편전쟁을 무슨 큰사건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아편전쟁이후, 청나라는 70여년간이나 존속했다. 그리고 줄리아 로벨이 아편전쟁에 관한 그녀의 책을 출판한 것은 2011년이다. 아편전쟁이 끝난지 170여년이 지났다. 국제적으로 중국역사에 대한 연구는 수도없이 많다. 그러나 아편전쟁은 중시되지 않았다. 왜 백여년후에 중국인들은 아편전쟁을 거의 삼척동자도 모두 아는 유명한 사건이 되어버렸을까?

줄리아 로벨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아편전쟁을 중국에서 삼척동자도 다 알게 된 것은 완전히 정부에서 선전조작한 결과이다.

처음에 1920년대의 국민정부는 정치적 목적에 기하여 소련공산당의 선전수단을 학습했고, 아편전쟁을 가지고 민족주의정서를 선동했으며, 중화민국을 만든다.

이어서 중공정권은 마찬가지로 정치적 목적에 기하여 마찬가지로 소련공산당의 선전수단을 배웠고, 마찬가지로 아편전쟁을 라기조 민족주의정서를 선동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을 만든다.

아편전쟁이라는 이 건국신화를 가지고 민족주의정서를 선동하는 수법은 한때 수그러들었다. 시기는 바로 1980년대, 중공이 '개혁개방'정책을 대거 추진하던 그 십년간이다.

1989년 중국에서 대규모 군중운동이 나타나고 중국의 소위 '인민자제병'이 인민을 피비린내나게 진압하는 6.4사태가 벌어지고나서, 아편전쟁산업(Opium War Industry)는 부활한다. 중공은 안정유지(維穩)를 위하여, 소위 "애국주의교육"을 대거 강화했고 민중 특히 청년에 대한 대규모세뇌에 나선다. 아편전쟁은 다시 한번 시끄럽게 떠드는 사건이 된다.

비록 줄리아 로벨은 중공정부의 세뇌가 그다지 큰 효과를 냈다고 생각하지 않고, 중국인의 '실용주의'는 그들로 하여금 정부의 선전을 그다지 깊이 믿지 않게 만들었다고 했지만, 아편전쟁신화를 대표로 하는 민족주의정서는 상당한 감염력을 지니고 있다. 옛날의 "분청(憤靑)"집단, 오늘날의 "우마오당(五毛黨)" 등등이 그러하다. 아마도 대다수의 민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일부 민중에게는 영향을 미쳤다.

이상의 아편전쟁에 관한 관점으로 보면, 줄리아 로벨의 저서는 그저 재미없는 문장에 불과할까? 기실 그렇지 않다.

역사학저작은 문자변론이 아니다. 줄리아 로벨의 이런 견해는 그녀의 2차례에 걸친 아편전쟁 특히 제1차아편전쟁에 대한 대량의 중국과 서방사료를 비교연구한 바탕위에 나온 것이다.

이 책의 하나의 특징은 바로 중국과 서양의 사료를 나란히 놓고 처리했다는 것이다. 청군, 청정부, 내지 청사기록과 영국, 프랑스방면의 동일한 사건 혹은 저눝에 대한 기록을 나란히 놓고, 독자들로 하여금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시각을 볼 수 있게 했다. 그러므로 비교를 통해서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모두가 알다시피, 말끝마다 역사허무주의를 반대한다는 중공은 오랫동안 계속하여 역사를 편집하고 수정해왔다. 온갖 수단과 수법을 모두 쓴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아편전쟁신화는 바로 중공의 역사이데올로기화의 결과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누가 과거를 통제하느냐에 따라 그가 미래를 통제한다." 중국고대의 독재계급은 큰 힘을 들여 역사서를 썼다. 중공, 소련공산당등 공산독재정부도 장기간 역사를 고쳐쓰고, 대규모로 세뇌시키고, 거짓말로 나라를 다스렸다. 이를 통해 우리들에게 독재정부의 반인간적 본질을 깨닫게 해주었다. 21세기의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읽을 때, 반드시 공산정권이 마음대로 고쳐쓰고 위조한 내용을 경계해야 한다. 신화를 역사로 본다는 그것은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제목으로 단 <아편전쟁: 하나의 신화>는 아편전쟁이라는 이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역사사건이 중국에서 정치화되고, 이데올로기화된 현실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진정한 신중국을 건설하려면, 역사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야 한다. 역사에 대한 이데올로기화와 정치화(즉 역사허무주의)를 취소해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인식상의 출발점일 것이다. The Opium War: Drugs, Dreams and the Making of China를 읽어보는 것이 우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