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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서(广西) 인구분포의 변천...

by 중은우시 2024. 5. 28.

글: 주한경(周汉)

광서(广西)는 진()나라때 계림군(桂林郡)으로 설치되었고, 한()나라때는 광주(广州)에 속했으며, 당()나라때는 영남도(岭南道)에 속했으며, 송()나라때는 광서남로(广南西路)에 속했고, 원()나라때는 호남행성(湖广行省)에 속했으며, 명()나라때는 광서포정사(广西布政使)를 설치하고, 청()나라때는 한지십팔성(汉地十八省)의 광서(广西)가 되고, 중화민국때는 광서성(广西省)이 되었으며, 간칭은 계()이다. 광서에 사는 한족은 계인(桂人)혹은 광서인(桂人)으로 불린다.

광서인은 계류인(桂柳人), 객가인(客家人), 평화인(平话人), 광부인(广府人)으로 나뉜다. 진한시기에 광서로 이민온 사람들은 백화(白话, 粤语 즉 광동말)을 사용하는 광부인이고, 양진남북조시기에 광서로 이민온 사람들은 객가인이 되었으며, 송나라때 적청(狄青)이 "평남(平南. 남쪽을 평정하다)"할 때의 그 사람들은 평화(平话)를 쓰는 현지인이 되고, 원명청때 광서로 이민온 사람들은 관화(官话)를 쓰는 계류인이 된다.

이 네 종류의 주민들을 제외하고, 광서에는 외성인(外省人)과 토사(土司)가 존재했다. 중화민국 및 그후에 광서로 이민온 화인들을 외성인이라 부른다. 광서서북부의 산 속에 거주하는 동요(僮瑶) 주민들은 토사라 불린다.

동요주민은 자고이래로 '토사'에 속했으며, 사이열전(四夷列传)에 속하고, 광서의 민정에 속하지 않았다. 한번도 '광서인'으로 자처하거나 '광서인'으로 불린 적이 없다. 광서의 호적에 들어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역대왕조에서는 그 주민의 수량을 알 수가 없었다. 중화민국때, 이종인(李宗仁), 백숭희(白崇禧)가 통계를 냈는데, 그 인구가 50만이었다. 광서 1천만인구의 5%를 차지하는 수준이었다.

1949년, 중공의 백만대군이 남하하여 중화민국정부가 궤멸된다. 수십만 국민당군대는 각성의 산간지역으로 물러난다. 공산당은 이들을 '토비(土匪)'라고 부르며, '토비소탕(剿匪)'의 군사행동을 전개한다. 토비소탕의 군사행동에 호응하기 위하여, 광서의 산간지역에 거주하는 화인(华人)들까지 함께 동족(僮族), 요족(瑶族), 묘족(苗族)등 소수민족으로 분류했다. 중공은 이를 "민족식별(民族识别)"이라고 불렀다.

중공의 민족식별을 거치면서, 동족인구는 200만명으로 증가하여, 광서 주민의 20%를 차지한다. 그리하여, 중공은 하지(河池), 백색(百色), 숭좌(崇左)에 "계서동족자치구(桂西僮族自治区)"를 건립한다. 나중에는 "계서동족자치주(桂西僮族自治州)"로 개명된다.

1958년, 주은래는 두 개의 광서를 합병한다. 즉 계서동족자치구(주)와 광서성을 합쳐서 광서동족자치구(广西僮族自治区)로 하고, 성도를 남녕(南宁)으로 한다. 1965년 동(僮)을 장(壮)으로 바꾸면서 광서장족자치구(广西壮族自治区)가 된다.

중공은 장족인구가 20%에 불과한(그것도 민족식별을 거쳐서) 성에 '장족자치구'를 건립한다. 정말 아주 '총명'하다고 할 수 있다.

1949년 장족은 광서의 인구중 5%를 점하고 있었는데, 1958년에는 광서 인구의 20%를 차지한다. 2010년 장족인구는 광서인구의 40%로 증가한다. 이는 그래도 중국의 인구가 증가하던 수십년간이다. 앞으로 수십년간은 계획생육(한자녀정책)의 악영향이 나타날 것이고, 중국인구는 매년 감소할 것이고, 중국인은 매년 늙어갈 것이다. 연해지구에서 빼가는 중서부의 젊은이들은 갈수록 많아질 것이다. 광서에서 외부로 유출되는 인구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고, 인구비율은 갈수록 위험해질 것이다.

2030년에 이르면, 광서장족인구는 광서인구의 50%로 늘어날 것이다. 2049년에는 60%로 늘어나며, 2050년에 이르면 70%에 이를 것이다. 이것도 아주 보수적으로 추정한 것이며, 실제상황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각 민족이 섞여서 거주하는 광서에서 소수민족은 배수로 증가하고 있다. 한 소수민족가정은 여러 아이를 낳는데, 이십년후에는 모든 아이들이 다시 여러 아이를 낳을 것이다.

광서뿐만이 아니다. 귀주(贵州), 운남(云南), 호남(湖南), 사천(四川)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심지어 전국이 이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스스로를 해치고 있고, 중국인은 스스로를 해치고 있다. 이런 훼멸추세가 2030년이후에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설사 그때 중공이 무너진다고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