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치평(吳治平)
따공차오(打工潮, 개혁개방이후 농민들의 이주제한이 느슨해지면서 도시로 나가서 취직하는 붐을 말함)가 시작되면서 연이어 나타난 새로운 문제는 따공(打工, 취직하여 일하는 것)은 농가에 수입을 가져다 주어, 가정경제의 빈곤국면을 바꾸게 하지만, 대다수의 따공가정의 부부는 오랫동안 서로 별거하고, 집안의 아이들은 노인들이 보살피거나, 아니면 많은 가정에서는 할 수 없이 한 사람은 나가서 일을 하고, 한 사람은 고향에 남아서 집을 지킨다. 이렇게 부부가 오랫동안 떨어져 살게 되면, 외로운 남녀의 정신상의 고독과 적만, 생리상의 성기갈과 성심리가 만족을 얻지 못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리하여, 어떤 따공족 가족에서는 슬그머니 일종의 "임시부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런 "임시부부"의 가장 큰 특색은 자기의 배우자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법률상의 부부관계는 그대로 유지하고, 원래의 가정을 깨트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외지에서 일하는 남녀 혹은 고향에 남은 남녀가 또 다른 이성과 "성파트너" 혹은 "임시부부"의 생활방식으로 하나의 임시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그들은 겉으로 혹은 속으로 함께 생활하고, 서로 돌봐주고, 이로써 부부가 장기간 별거하는데서 오는 감정생활과 성수요의 빈틈을 매우지만, 원래부부가 다시 만날 때는 "임시부부"는 자동적으로 해체되고, 남녀쌍방은 여전히 자기의 배우자와 부부생활을 하게 된다.
나는 P촌에서 농촌부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녀들 촌에 한 쌍의 "임시부부"가 있고, 여자주인공의 이름은 "메이(梅)"라고 들었다
하루는, 내가 메이와 만나서 얘기했다. 그녀는 사십여세이고, 아주 예쁘게 생겼다. 아마도 오랫동안 아무도 그녀와 얘기해주지 않아서인지,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그녀는 말을 아주 많이 했다.
메이는 말했다: "내 남편은 외지로 돈벌러 갔다. 집에는 세 아이가 있는데, 큰 딸, 둘째 아들, 작은 아들이다. 딸은 대학에 합격하였는데, 그녀의 학비가 없었다. 당시 남편은 남아선호사상이 있어, 딸을 희생시키려고 해서, 딸이 공부하지 못하도록 했다. 남편은 딸을 데리고 나가서 따공을 하려고 했는데, 딸은 자존심이 강하고, 말도 나보다 잘한다. 입이 날카롭다. 딸은 집에서 항의하고 한주간 밥도 먹지 않고, 단식을 했으며, 매일 집에서 울었다. 결국 내가 마음이 약해져서 딸이 나가서 공부하도록 허락했다. 둘째아들 막내아들도 나중에 모두 대학에 합격했는데, 나는 집에 겨우 5무(1무는 200평)정도의 땅 밖에 없다. 현재 우리 집에서 모자란 것은 돈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우리 아이들이 희망이 있다고 하고, 명성도 아주 좋은데, 나는 마음 속으로 눈물만 흘린다."
"나의 세 아이가 소학교에서 공부할 때, 경제부담이 커서, 남편은 무한으로 따공하러 나갔고, 지금까지 그렇게 있다. 남편이 나가서 일하면서, 매년 12월 이십며칠에 겨우 돌아오고, 1월 초파일이면 다시 간다. 나머지 시간은 전혀 돌아오지 않는다. 남편은 경제문제를 생각해서, 집에 한번 돌아오는데 교통비도 쓰고, 일도 못하므로 한번 돌아오는데 수백원을 손해본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무한의 건축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의 주요업무는 건축공사장에서 모래를 끌고, 벽돌을 나르고, 콘크리트를 반죽하는 것이다. 금년에 매월 1100위안의 급여수입이 있었다. 나는 그가 일하는 곳에 갔는데, 그는 공사장에서 햇볕에 거슬러 아프리카사람처럼 보였고, 손도 거칠어서 톱처럼 보였다. 시공현장의 십장은 거지처럼 보였다. 그는 매일 12시간을 일하고 매일 저녁에 야근을 한다. 거처는 삼색 비닐천으로 강둑에 만든 가건물이다. 여름에 날씨가 더우면, 가건물안은 바깥보다도 온도가 높다. 한 가건물에 수십명이 산다. 어떤 곳은 백여명이 산다. 잠자리는 서로 붙어 있고, 남편은 과거에 내가 공사장에 오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내가 그가 그렇게 힘들게 지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은 금년 봄에 큰 마음을 먹고 280위안을 들여 핸드폰을 샀다. 결과적으로 핸드폰사용료 300위안이 아까워 그는 마음아프지만 반년을 쓴 후에 250위안에 팔아치웠다. 내가 간 후에 남편은 나를 여관에 데리고 가서 머물게 했다. 따공하는 사람은 하루에 15위안씩 하는 여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조건이 아주 안좋았고, 남자들이 바깥에 나가서 일하는 것을 보니 정말 힘들어보였다. 돌아온 후에 나는 한바탕 크게 울었다."
"나와 남편은 결혼한지 24년이 되었다. 헤어져 있었던 기간이 함께 있던 기간보다 길다. 부부생활은 다 합쳐도 다른 사람이 1년간 산 것만큼도 되지 않는다. 남편은 일년내내 바깥에 있고, 나는 여자로서 집을 지켜야 했다. 아들딸은 나의 정신상의 지주이고,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괴로워도 나는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가장 무서운 것은 고독이다. 매일 집안에서 나 혼자 들락날락하는데, 마음은 항상 텅 비어 있다. 낮에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저녁만 되면, 방은 사방이 조용하여 무서울 정도이다. 나는 이 큰 집에서 독수공방하고 있다. 잠들지도 못해서 항상 잠자지 못한다. 특히 겨울에는 밤이 길어서 더욱 견디기 힘들다. 어떤 때에는 머리가 맑아서 잠들려고 하면 할수록 머리는 더욱 맑아진다. 어떤 때에는 눈을 뜨고 꿈을 꾼다. 잠이 오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어나고 싶지도 않다. 경제적으로도 나의 스트레스는 크다. 매일 고민하는 것은 아들딸의 학비와 생활이이다. 집에서 나는 매일 먹는 것이 무우, 배추이다. 1개월에 기껏해야 4위안어치 두부나 비지를 산다. 내 의복은 언니들이 보내준 것이다. 나는 아주 비관적이고, 항상 다른 사람만 못하다고 느낀다. 자매들과 함께 있으면 항상 남부끄럽다고 느낀다. 그러나 나는 어려서부터 예쁘게 꾸미는 것을 좋아했고, 집을 나서면 돋보였다. 나는 지금 목걸이, 반지도 없다. 내 귀걸이가 얼마짜리인지 한번 맞춰봐라. 얘기하면 아마도 웃을 것이다. 4위안에 산 것이다. 원래 나는 카드놀이도 좋아했는데, 카드놀이할 돈이 없어서, 마을의 다른 여자들이 나와는 놀아주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의 집에 가는 일도 드물다. 그래서 현재 나는 아주 외롭고, 아주 외롭다."
나는 메이에게 물었다: "너는 애인이 있냐?"
메이는 정면으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꼬고 한참을 생각한 다음에 말했다: "여자가 집에서 농사짓는데, 가장 어려운 것은 쟁기끌고 밭을 가는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곁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미쳐버렸을 것이다. 나는 이혼도 생각해 보았다. 아들 딸과 협의도 했다.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이혼하면 내가 엄마의 다리를 부러뜨려버리겠다'고 딸도 말했다: '엄마가 이혼하면 나는 엄마와 관계를 끊겠다' 나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이렇게 지내는 수밖에 없다. 아, 더 얘기하고 싶지 않다."
마을의 또 다른 "임시부부"중 여주인공인 꾸이화(桂花)는 생활이 훨씬 편해 보였다.
꾸이화의 남편은 오랫동안 외지에서 돈벌고 있다. 그녀는 마을의 한 남자와 여러해동안 좋아지낸다. 남편이 집에만 없으면, 그녀는 공개적으로 '애인'과 함께 붙어서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 공개적으로 나타난다.
촌민들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꾸이화의 '애인'의 아명은 "꺼우잉(狗剩)'인데, 나이도 꾸이화가 꺼우잉보다 많고, 용모로 보더라도 꾸이화는 키도 크고 덩치도 크다, 꺼우잉의 원래 마누러보다 못생겼다. 성격으로 보더라도 꾸이화는 성깔이 날카롭다. 꺼우잉이 왜 꾸이화에게 빠졌고, 죽어라 꾸이화를 돕는지 알 수가 없다. 평소에 꺼우잉은 꾸이화를 도와서 농사를 짓고, 힘든 일은 모두 다해준다. 꺼우잉은 꾸이화의 아이에게도 아주 잘해준다. 꾸이화의 아이는 소학교를 다니는데, 등하교를 모두 꺼우잉이 시켜준다. 꾸이화가 마작을 할 때면 꺼우잉이 곁에서 지켜봐주고 있고, 여름에 밥을 다 하면 꾸이화가 배고플까봐 가져다 바친다. 겨울에는 춥지 않도록 따스한 것을 갖다 준다. 꾸이화가 마름열매가 먹고싶다고 하면, 꺼우잉은 바로 연못에 가서 따온다. 1년 사계절 신선한 과일이 나오기만 하면 바로 사와서 그녀에게 먹인다. 한번은, 꺼우잉이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로 나섰는데, 돌아오는 길에 돌연 꾸이화가 먹고싶다고 한 것을 사지 않은 것을 깨닫고 중도에 다시 시내로 나가서 사가지고 왔따. 꺼우잉의 꾸이화에 대한 보살핌은 마을의 다른 여자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이다. 그녀들은 속으로 자기 남편은 그렇게 잘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꾸이화를 책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뒤에서 한두마디 할 뿐이다. 더욱 이해되지 않는 것은, 꺼우잉이 꾸이화와 좋아지낸다는 것을 그녀의 시어머니도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평소에 시어머니에게도 아주 잘한다. 꾸이화는 자기의 집안에서 발언권이 있고, 남편의 집안에서도 그녀가 한마디 하면 끝이다. 집안에 길흉사가 있으면 모두 그녀와 상의한다. 꾸이화의 외지에서 일하는 남편이 명절에 돌아오면, 꺼우잉은 바로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남편이 떠나면, 꺼우잉은 다시 돌아온다. 꾸이화의 남편이 이 일을 안 후에 아주 실망하고 고민했다. 그러나 직접 꾸이화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녀의 친정오빠와 얘기해서, 꾸이화의 오빠에게 여동생을 잘 단속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꾸이화의 오빠는 다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바로 꾸이화의 남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 남자가 네 가정을 깨트렸느냐?"
몇몇 농촌부녀는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꾸이화는 멋지다. 바깥에서는 남편이 그녀를 위해 돈벌어주고, 안에는 그녀를 도와 일해주는 남자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꾸이화와 꺼우잉의 일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왜 그런지를 물어보았다. 그녀들도 분명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저 꾸이화는 이 한 가지를 빼고는 다른 것은 모두 좋다는 것이다. 사람도 좋고, 일도 잘하고, 잘 베풀고, 인정도 많고,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고, 의리도 있고, 잘못된 일은 나서서 지적하고, 다른 여자들이 못하는 일을 그녀는 한다는 것이다. 다른 여자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그녀는 말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그녀는 다 잘해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아주 좋아한다. 꺼우잉의 마누라의 친여동생까지도 꾸이화를 따라다니면서 논다. 그녀는 마을의 공공사업에도 열심이다. 촌간부들이 촌민을 조직하여 도로를 닦거나, 제방을 수리하거나 하면 그녀가 술과 음식을 사가지고 가고, 주방에 들어가서 음식을 하여, 촌간부를 자기 집에 초청하여 식사와 마작을 하도록 안배하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여 일하러 나가게 한다. 그녀의 말을 설득력이 있어 모두 그녀의 말을 들어준다. 그리고, 그녀의 집안은 언제든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다. 이러하니 여자들이 그녀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농촌부녀들의 꾸이화에 대한 평가에서 필자가 추측한 것은: 시골에서 사람들의 도덕관념에 일부 변화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여자의 가치평가의 유일한 기준이 "정절"이었다. 전통적인 농촌에서 정절을 지키는 것은 역대이래로 여자들의 첫번째 규범이었고, 여자로서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농촌사람들이 자원을 가지고 있는지, 공익사업을 열심히 하는지, 정직한지 등등을 혼인도덕문제의 첫머리에 둔다. 사람들은 도덕관면에서 정절을 더 이상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서, 나는 이 문제를 계속 생각해 보았다: 따공차오과정에서 나타난 "임시부부"라는 뭔지 명확히 말하기 어려운 혼인형태는 만화통처럼 사람눈을 어지럽게 하고 곤혹스럽게 한다. 남녀가 성생활을 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고 생리적, 심리적인 요구사항이다. "임시부부"는 잠시 부부가 장기간 별거상태에 놓임으로써 나타난 생활의 진공지대를 메워준다. 이런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농촌혼인상태, 윤리도덕에 다양성, 복잡성과 현실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록, "임시부부"라는 회색결혼상태는 아주 개별적인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에 보내는 소식은 무시할 수 없다: 따공족 부부가 장기간 별거하는 문제는 전사회의 관심과 해결이 필요한 때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나의 농촌부녀생활상황조사과정에서, 내가 가장 곤혹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따공차오의 출현과 더불어, 가정혼인생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문제는 중국전통의 남경여직(男耕女織)가정모델과 혼인이 도전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따공농민의 부부별거문제이다. 현대화와 더불어 나타난 도시화로 국가는 현대화과정에서 모두 "남공여경(男工女耕)"의 과정을 거친다. 남자들이 먼저 더욱 우세한 산업으로 옮겨가고, 고향에 남은 여성은 남성을 대신하여 농업생산의 빈틈을 메운다. 이런 과도시기에 나타나는 혼인가정문제는 적극적인 태도로 바라보고 해결해야 한다. 남자들을 모두 농촌으로 돌아오게 할 수도 없다. 비교적 적극적이면서 가능한 방법은 유동인구 유입지역인 도시는 가정을 단위로 농민들이 이전해오도록 조건을 제공하고, 유출지인 농촌의 하급정부는 부녀의 능력배양에 힘쓰고 능력이 있는 가정은 부부쌍방 심지어 전가족이 이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여자들도 일을 찾고, 자신의 아름다운 생활을 창조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과도시기의 부부별거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기 위하여, 기업도 농민공에게 고정적인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 동시에 가능하다면 도시에 가족들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현재 많은 도시에서는 염가임대주택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주택에 대하여 세금감면, 임대료인하등 일련의 적극적인 조치를 통하여 주택의 임차료를 낮추도록 해야 하며, 따공하는 농민부부가 함께할 수 있도록 하고, 부부가 함께 도시로 와서 일할 수 있게 해주고, 거주할 집이 있고, 할 일이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야, 단일한 농민이 아니라 전체 가족이 도시로 이주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농촌에 남은 가정은 점유하는 자원이 늘어날 것이고, 집약화 농장화의 생산방식을 채택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들도 농촌에 남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남녀가 성별로 분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으로 분업하는 것이다. 신농촌건설과 국가의 고나련 농민우대정책이 제대로 시행되면, 과도시기에 따공하는 부부별거문제는 아마도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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