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회/중국의 사회

북경의 가난한 중산층

중은우시 2008. 6. 19. 21:18

글: 이재(李梓)

 

불경기현상은 많은 중국인들이 느끼고 있다. 미래는 그들이 보기에 갈수록 불투명해진다.

 

막 북경에 도착했을 때, 왕용(王蓉)은 자신을 위하여 두 가지 퇴로를 마련해 두었다: 하나는 그가 북경에서 일하지만, 원래 일했던 곳이 귀양(貴陽)에 주택을 사두려고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마음편하게 일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그녀의 가족들이 마련해준 것으로, 부모가 더 작은 도시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언제든지 돌아가서 일자리를 찾거나 자기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다만, 6년이 지난 후, 이 두 가지 퇴로는 모두 차단되었다. "모든 곳의 돼지고기값이 다 올랐어요" 왕용의 말이다. 왕용은 북경의 보석기업에서 일하는데, 이전에 그녀는 각양각색의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IT, 식품 그리고 광고회사이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오르는 집값을 보면서 계속 주저했고, 그녀의 주택구입시기를 미뤄왔다가, 좋은 기회를 다 지나보내버렸다.

 

CPI(소비자물가지수)의 상승과 수입증가의 정체가 가져온 결과는 2008년초에 북경의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식당의 입구에는 "종업원구함"이라는 글이 쓰여 있다. 그래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많은 식당에서 일하던 종업원은 구정에 고향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그들이 이 도시에서 받는 수입은 개략 1달에 800위안이다. 이외에 보모와 시간급노동자의 급여도 계속 오른다. 이 도시의 가장 밑바닥의 서비스비용도 계속 오른다. 이는 이 도시에서의 생활원가에 압박을 가하고 있고, 화이크칼라계층의 심리불안을 가속화시키고 �다. 과거 3년간 CPI가 급격히 오르는 와중에, 북경의 공무원, 교사와 퇴직자들의 급여는 정도는 다르지만 올랐다. 그러나, 도시에서 가장 많은 사영기업종업원들은 아무런 심리적인 위로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식당종업원과는 달라요. 그들은 농촌에서 왔기 때문에, 일단 돌아가면, 토지도 있고 택지도 있어요. 그들은 돌아가서 돼지를 키울 수나 있죠. 그러나 우리가 작은 마을로 되돌아가면, 부모와 함께 살 집하나외에는 아무 것도 없더요. 일도 없구요" 왕용의 말이다.

 

중국의 집값은 과거 3년간 많이 올랐다. 왕용은 이를 한편의 개인비극이라고 말한다. "이 몇년간의 통화팽창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나와 같은 도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람들이예요." 2002년에, 그녀는 이미 계획을 다 세워 놓았었다. 수중에 가진 현금으로 계약금만 낼 수 있게 되면, 귀양에 집 한채를 사려고 한 것이다. 3년이 지나자, 그녀의 손에는 10만위안의 현금을 쥐고 있지만, 귀양의 집값은 이미 4000위안/평방미터로 올랐다. 왕용은 그 때 "퇴로 하나가 막혔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녀의 새로운 목표는 북경에 집을 사는 것이었다.

 

현재 이 계절은 절대 집을 사기에 좋은 계절이 아니다. 2008년의 봄에, 심천과 광주에서는 모두 집값하락이 있었다. �고 북경에도 소위 '가격인하' 부동산이 나타났다. 다만, 왕용은 믿고 있다. 진정으로 그녀와 같은 계층을 위하여 마련된 집은 절대로 가격인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는 그녀가 계약금으로 낼 25만위안이상의 현금을 준비하고, 매년 할부금으로 낼 3000위안이상의 돈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말에 이케아(IKEA)에 가자. 내가 카탈로그에서 좋은 물건을 찾았어." 왕용의 한 여자친구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케아에서 온 상품카탈로그에 표시된 것은 아주 값싼 방석과 등나무의자였다. 이것들은 왕용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다. 북경에 온 후에 왕용은 개인의 일상소비의 측면에서는 아주 근검절약했다. "북경은 무슨 패션도시가 아니예요. 여름에도 흰 셔츠 하나 입고 집을 나서면 되지요. 이것때문에 오히려 돈을 더 아낄 수 있어요" 그래서, 왕용은 이렇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되는 물건에 돈을 쓰고 싶지는 않다.

 

다만, 왕용의 친구는 한 마디로 이들 상품의 비밀을 간파했다: "알고 있어? 표시된 상품은 가격이 2년전의 카탈로그와 똑같다는 걸? 그것들은 내가 발견한 몇 안되는 이년동안 가격이 오르지 않은 상품이야."

 

이 이유는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아마도 이들 물건은 다음 주면 가격이 오를 것이다. 그래서 왕용은 주말에 이케아에 가서 500여위안을 썼다. "이번 달의 용돈은 다 썼어요"

 

어떤 상품을 사든, 모두 최근 2년간 가격인상이 있었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미래 1주 혹은 1년내에 가격이 인상될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이것은 이미 새로운 생활습관으로 자리잡았다. 그들은 백화점의 할인에 신경쓰고, 더욱 조심스럽게 매번 지출을 따져본다. 왕용은 그녀가 이런 심리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전에 그녀는 슈퍼 팜플렛에 나와 있는 특가상품에 신경을 써본 적이 없다. 그녀는 그건 은퇴한 노인네나 할머니들의 습관이라고 치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수퍼의 노란색 빨간색으로 표시된 특가상품에 눈이 간다. 그녀는 이런 상품을 살 때마다 가격인상에서 온 손실을 벌충했다는 안도감이 든다고 말한다.

 

집값과 비교하여, 2008년이래로 계속 바닥을 치는 주식지수는 왕용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녀는 주식을 산 적이 없다. 주식시장의 하락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부정적인 영향이라면, 그녀가 적절한 경로로 자신이 가진 현금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게 할 방법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오늘, 주식과 기금은 이미 참혹하게 하락했다. 겨우 수만, 수십만위안의 예금을 가진 보통사람에 있어서, 주식시장붕괴는 재난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왕용의 돈은 은행에 넣어두었다. 예금하기 위하여 그녀는 과거 6년간 최대한 아껴썼다. 중국인의 저축율은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06년이전에, 매년 0.5%씩의 비율로 증가했다. 은행은 15조위안이 넘는 국민의 예금을 끌어들였는데, 이는 서방국가의 저축율이 계속 하락하는 것과 잘 대비된다.

 

통화팽창은 이 모든 것을 뒤바꾸는 계기이다. 2006년말부터, 중국의 은행에서 매월 수천억의 예금이 감소하고 있다. 2007년 5월 중앙은행 통계에 따르면 전국은행에서 2,784억위안의 예금이 감소했다. 이들 돈은 아마도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통화팽창이 가져온 이러한 현상은 새로운 추세를 보여준다. 북경사범대학 금융연구센터의 주임인 종위에 따르면, 2007년 주민저축율이 하락한 것은 일종의 역사적 조유리다: "금융구조의 대변혁과정에서, 이후 중국은행의 저축율증가속도와 절대액수는 모두 하락할 것이다. 미래 은행업이 금융자산을 차지하는 비율은 45%를 넘지 못할 것이다. 자본시장이 일반적으로 50%를 넘어선다. 현재 중국주민은 기금,주식등 금융자산에대한 배분이 1/4을 넘지 않는데, 최소한 아직도 절반전도의 금융자산이 은행에서 빠져나와 자본시장으로 유입될 것이다"

 

다만, 돈이 은행을 떠난 후, 소비되지 않고, 백성들은 주식시장, 수장품 혹은 기금과 부동산에 투자한다. 왕용과 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집을 사려는 사람에 있어서, 이것이 가져온 결과는 재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롭게 가격인상이 시작되면서, 가장 중요한 가격인상품목은 바로 주택이다. 주택의 매점매석은 부유계층의 자산가치보존수단이 되었다. 이는 왕용이 보기에, 항상 누군가가 그녀가 노리는 집을 앞서서 빼앗아간다고 느끼게 된다. 그녀의 새로운 계획은 적절한 헌집을 사는 것이다. 북경에서 헌집을 사는데 필요한 계약금은 전체집값의 절반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가진 현금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서 물가지수가 오르고 저축율이 저수준을 유지하는 국면하에서, 왕용은 경제학에서 예측하는 것처럼 소비욕망이 자극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예금계획을 시작하게 된다.

 

2008년 봄, 왕용은 북경에 온 후 7번째로 직장을 바꾸었다. 이전에 그는 "다시는 직장을 옮기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 바도 있었다. 거의 매년 직장을 옮기게 하는 동력은 더욱 나은 급여를 찾아다니려고 하기 때문이다.

 

2002년, 귀양에서 북경으로 올 때, 그녀의 수입은 즉시 두 배로 뛰었다. 4000위안에 이른 것이다. 이후 2년간, 그녀는 4번 직장을 바꾸었고, 마침내 안정되었다.

 

"만일 네가 한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계속 있다면, 사장은 절대 급여를 올려주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새 회사의 더 좋은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아니면 직장을 옮기겠다고 사장과 얘기를 해봐라. 그러나 후자의 성공률은 아주 낮다" 왕용은 그녀의 직장바꾸기 경험을 얘기한다.

 

"만일 수입이 증가하지 않으면, 아마도 나는 계속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 3년에 대한 평가가 아주 낮다: "중국물가가 고속으로 팽창하는데, 나의 수입은 조금도 늘어나지 않았다"

 

정책적인 호응으로, 북경시 노동보장국은 2008년 6월 10일에 2008년도 기업급여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왕년의 기업급여가이드라인의 하한을 "제로증가"에서 "증가3.5%", 상한 "6.5%"로 변경했다. 다만, 매체가 해석하면서, 아마도 고의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많은 신문들은 제목으로 혹은 요점으로 "시노동보장국은 북경기업에게 최소한 직원의 급여를 3.5% 인상하도록 건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왕용에게 있어서는 구명의 지푸라기이다. 그는 지금 기업이 그녀의 급여를 올려줄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계속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왕용의 손에 있는 돈은 가치가 많이 내려갔다. 그린스펀이 1966년에 말한 바 있다: "금본위가 없어진 상황하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인민의 예금이 통화팽창에 의하여 잡아먹히지 않도록 할 방법이 없다" 왕용은 냉정하게 생각해본다. 집값과 비교해본다면, 그녀의 은행예금은 이미 절반 가까이 가치가 내려갔다고. "다행인 것은 집값이 드디어 오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예요" 왕용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