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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187

유비는 왜 항상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유지하지 않았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유비는 평원상(平原相)이 된 후, 자립의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실력과 당시 천하형세로 인하여, 제후들은 부득이 다른 제후와의 합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갈등이 첨예한 적을 상대하고, 다른 제후들에게 병합되지 않을 수 있었다. 제후들이 유비와 합작한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러나 유비는 시종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유비가 평원상이 된 것은 공손찬때문이다. 공손찬이 원소와 싸우기 때문에, 유비와 청주자사 전해(田楷)는 제(齊)의 딸에 주둔했다. 조조는 서주를 공격했고, 서주자사 도겸이 도와달라고 한다. 전해와 유비는 함께 가서 그를 도와준다. 이때 유비에게는 1천여명의 병사가 있었다. 그리고 유주의 일부 소.. 2020. 10. 20.
유비가 서촉으로 들어갈 때, 유장(劉璋)을 배신하고 유비에게 온 3명의 최후는...?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익주(益州)전투는 동한말기, 유비가 익주를 빼앗기 위하여 유장과 벌인 전쟁이다. 적벽대전이후, 유비는 형주를 차지했다. 제갈량의 에 나오는 형주, 익주를 차지하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유비는 일찌감치 익주로 진격하는 것을 도모했다. 이때 유장은 한중의 장로에게 제약을 받고 있었고, 다시 강대한 조조가 한중을 취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는 촉에 위협이 되었다. 장송(張松)은 그리하여 유장에게 유비를 불러들여 실력을 강화시키자고 건의하게 된다. 장송등의 권유로 유장은 유비를 촉으로 불러들인다. 211년, 유비는 촉에 들어간 후 처음에는 유장과 관계를 좋게 유지했다. 그러자 유장은 유비에게 병사를 내주며 그에게 장로를 치도록 한다. 다만, 유비는 가맹(葭萌) 일대까지 진군한 .. 2020. 10. 14.
원소(袁紹) vs 원술(袁術) 글: 림림(琳琳) 삼국연의를 본 사람이라면 모두 원씨형제 원소와 원술을 알 것이다. 기실 원소와 원술 두 형제는 서로를 멸시했다. 원술이 원소를 무시한 주요원인은 원소가 서출(庶出) 즉 첩의 소생이라는 것이다. 원술의 생각으로는 그들 원씨집안은 사세삼공(四世三公)을 지내 마땅히 황제가 나온다면 원씨집안에서 나와야 하고, 첩 소생인 원소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황제에 오른다면 당연히 적출(嫡出), 즉 정실부인 소생인 자신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원소는 어렸을 때 백부(伯父)인 원성(袁成)의 양자로 간다. 그리하여, 원성의 후사를 잇는다. 이렇게 되니 그는 원씨집안의 적장자(嫡長子)가 된다. 그리하여 그의 지위가 원술보다 높아지게 된 것이다. 조조는 어려서부터 원소와 같이 놀았다.. 2020. 8. 23.
중국의 파벌을 분석한다. 글: 호평(胡平) 에 이런 말이 있다: 제갈량의 임종전에 유선은 성도에서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묻는다. 백년(사망)이후, 누가 승상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겠는지. 제갈량은 장완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장완이후는 누구인지 묻는다. 제갈량은 비위라고 말한다. 그후에 다시 묻는다. 비위이후에는 누구인지. 제갈량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숨은 이미 멎었다. 기실, 제갈량의 숨이 붙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제3대후계자까지는 그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치는 아주 간단하다. 미래의 제3대후계자는 지금 그저 젊은이이다. 아직은 동년배중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은 제갈량이 시야에 들어오지 못햇다. 더더구나 제4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제4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제갈량이 권력이 아무리 크.. 2020. 7. 30.
유선이 장비의 두 딸을 취하면서, 관우의 딸은 취하지 않은 이유는...? 글: 지역사(知歷史) 아마도 유선(劉禪)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이릉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유비(劉備)는 일생동안 4명의 아들을 두었다. 각각 유선, 유봉(劉封), 유리(劉理), 유영(劉永)이다. 그런데, 유비는 굳이 성격이 유약한 유선에게 황위를 넘겨 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유비의 이런 결정을 기이하게 여긴다. 유비는 왜 그렇게 하였을까? 기실 사서 에는 이미 명확하게 답을 제시해 놓았다. 유비의 유조(遺詔)에는 일찌기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제갈량이 예전에 사원의 앞에서 유선이 지혜도 있고 도량도 있다고 칭찬한 바 있는데, 사원은 그 말을 유비에게 전달했다. 그래서 유비는 비로소 유선을 후계자로 결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비는 일생동안 제갈량을 신임했고, 그는.. 2020. 4. 27.
왜 유비의 촉한진영에 반도가 가장 많았을까? 글: 기점역사(起點歷史) <삼국지>에서 유비에 대한 평가는 "홍의관후(弘毅寬厚), 지인대사(知人待士)"였다. 그에게 "한고조의 풍이 있고, 영웅의 그릇이었다." 조조도 유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오늘 천하의 영웅은 오직 그대와 나 조조뿐이다." 손권은 이렇게 말한다: "유예주(유.. 2020. 1. 3.
"승상(丞相)"과 "재상(宰相)"은 어떻게 다른가? 글: 독립학자(獨立學者) 중국고대역사상 '승상'은 중요한 관직이었다.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라는 역사적 시기를 보더라도 제갈량(諸葛亮), 조조(曹操)라는 두 승상은 각자 조정이 대권을 장악한 바 있다. 승상의 권력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 2019. 12. 30.
역사상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글: 야독사서(夜讀史書) <삼국연의>를 읽은 사람이라면 유비와 제갈량이라는 군신에 대한 인상이 아주 깊을 것이다. 유비는 일찌감치 사람들에게 '유황숙'으로 불리웠지만, 처지는 비교적 비참해서, 반평생을 여기저기 떠돌며 지냈다. 그리고 시종 자신의 근거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 2019. 7. 2.
삼국시대 구석(九錫)을 받은 4명의 인물 글: 취미적역사(趣味的歷史) 고대에 '구석(九錫)'은 기실 '구사(九賜)'이다. 왜냐하면, '석'과 '사'는 통가자(通假字)이기 때문이다. 구석은 중국고대 황제가 대신에게 주는 최고의 예우이다. 주로 차마(車馬), 의복(衣服), 호분(虎賁), 악기(樂器), 납폐(納陛), 주호(朱戶), 궁시(弓矢), 협월(鋏.. 2019. 6. 4.
형주(荊州)의 상황에 대한 판단은 제갈량과 방통중 누가 정확했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제갈량의 융중대에서는 형주에 대하여, "북거한면(北據漢沔), 이진남해(利盡南海)"라고 하면서, 그 땅의 주인인 유표는 지킬 능력이 없어, 하늘이 유비에게 준 자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방통은 이렇게 말한다: "형주황잔(荊州荒殘)". 이미 이곳을 차지한다고 하.. 2019.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