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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185

항우가 자결한 후 그의 부인과 2명의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글: 풍상담사사(風尙談史事) 기원전202년, "귀신을 만나면 귀신을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인다"는 서초패왕 항우는 인생의 마지막 열차를 탔다. 그의 첩인 우희(虞姬)가 자결한 후, 그도 이어서 오강(烏江)에서 자결한다. 이렇게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는 "패왕별희(覇王別姬)"의 장면이 펼쳐졌다. 그때 항우의 나이 겨우 30살이었다. 항우는 후손을 두었을까? 우희는 항우의 첩일 뿐이고, 그에게는 원래 정실부인이 있다. 성은 원(袁)이다. 이건 헛소리가 아니다. 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천하의 항씨는 모두 일가(一家)이다"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즉 천하의 모든 항씨성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것이다. 이는 2200여년의 일이다. 항우의 할아버지인 항연(項燕)은 세 아들을 둔다.. 2020. 10. 8.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 왜 함양을 버리고 팽성을 선택했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서주(徐州)의 옛 명칭은 팽성(彭城)이다. 요(堯)임금이 팽조(彭祖)를 대팽씨국(大彭氏國)에 봉했는데, 팽성은 바로 대팽씨국의 도성이었다. 나중에 상(商)의 주왕(紂王)에 멸망했다. 춘추시기에 팽성읍은 송(宋)나라에 속했다. 팽성은 송나라의 중요성읍이다. 왕왕 제후들이 쟁탈하는 목표가 되었다. 기원전 207년 십이월, 항우는 여러 제후의 병력을 이끌고 함곡관(函谷關)을 격파하고 진왕조를 멸망시킨 후 스스로 서초패왕(西楚覇王)에 오르고, 팽성을 도읍으로 한다. 그는 패주의 신분으로 전국을 18개왕국으로 나누어 제후, 부장(部將)과 항장(降將)을 왕으로 삼는다. 그런데, 왜 항우는 함양을 버리고 팽성을 선택했을까? 항우가 함양으로 들어가 진나라황궁을 불태워버릴 때, 어떤 참모는 그에.. 2020. 7. 15.
평민 유수(劉秀)는 황제에 오르면서 왜 "한(漢)"이라는 국호를 그대로 썼을까? 글: 심야요재(深夜聊齋) 한(漢)나라는 전후로 400년간 지속되는데, 둘로 나뉜다: 서한(西漢)과 동한(東漢). 나중의 북송(北宋), 남송(南宋)과는 달리, 서한과 동한의 사이는 끊어져 있다. 중간에 왕망(王莽)의 신(新)왕조가 있었다. 다만, 한동안 '신'왕조는 주류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왕망은 황위를 찬탈한 인물로 덕이 없다고 여겨져서, 왕조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왕조의 중후기 당시의 사회 각계층에도 한왕조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다. 비교적 두드러진 것은 유씨종실(劉氏) 종실의 인물들 중에서 황제를 칭하는 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비록 그 중 대부분은 가짜이긴 하지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한무제의 증손자라고 하였고, 어떤 사람은 한성제의 아들이라고 하였.. 2020. 6. 11.
유비는 익주(益州)를 취한 후 한중(漢中)을 형주(荊州)보다 중시했다. 글: 지역사(知歷史) 유비는 214년 익주를 취한다. 그후 215년 제1차 형주위기가 발생한다. 즉 손권이 유비에게 형주를 돌려달라고 한 것이다. 당시 조조는 한중의 장로(張魯)에 군사행동을 취한다. 유비는 익주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려하여, 동오의 요구를 받아들여 형주를 재분배하고, .. 2020. 4. 2.
"승상(丞相)"과 "재상(宰相)"은 어떻게 다른가? 글: 독립학자(獨立學者) 중국고대역사상 '승상'은 중요한 관직이었다.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라는 역사적 시기를 보더라도 제갈량(諸葛亮), 조조(曹操)라는 두 승상은 각자 조정이 대권을 장악한 바 있다. 승상의 권력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 2019. 12. 30.
소하(蕭何): 진말 영웅각축의 최대의 승리자 글: 곽천민(郭天民) 기원전209년, 얌전하게 농사나 지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부귀'를 꿈꾸던 농삿꾼 진승(陳勝)이 마침내 마음 속의 불만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900여명의 수졸(戍卒)을 이끌고 반란의 깃발을 내걸었다. 이는 진나라통치의 철의 장막의 한 부분을 찢어버리는 것이었고, 동.. 2019. 9. 16.
왜 한무제는 <춘주공양전>을 숭상하고, 한선제는 <춘추곡량전>을 숭상했을까/ 글: 국학분사단(國學粉絲團) <춘추(春秋)>는 유가의 '오경(五經)'중 하나로 공자가 편찬한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거은 그저 하나의 사서(史書)이다. 모두 그 내용을 많이 알지는 못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고대에 <춘추>의 지위와 역할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초월한다. 고대인들.. 2019. 9. 16.
진(秦)왕조의 마지막 왕 자영(子嬰)은 누구의 아들일까? 글: 일합쾌락인생(壹哈快樂人生) 천고일제 진시황은 중국역사상 최초로 통일왕조를 이룬 제왕이다. 그러나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시피, 진왕조는 3세만에 망한다. 기원전207년 유방의 대군이 함양성 아래로 쳐들어왔을 때, 진삼세(秦三世) 자영은 성 밖으로 나와서, 역.. 2019. 6. 26.
중국역사상 2개의 '장초(張楚)' 정권 글: 지봉간적역사(指縫間的歷史) 중국역사상 전후로 2개의 "장초(張楚)"정권이 탄생한다. 각각 대택향의거후 진승이 건립한 정권과 북송이 멸망한 후 여진족이 만들어준 장방창(張邦昌)의 괴뢰정권이다. 역사학자들은 양자를 구분하기 위하여 통상적으로 진승의 정권은 "장초"라고 부르.. 2019. 6. 3.
진시황릉: 역대제왕릉은 남향인데, 왜 진시황릉은 동향일까? 글: 남몽도주(藍夢島主) 진시황 영정은 육국을 휩쓸고, 천하를 통일하여 화하의 대통일을 완성한다. 그는 중국 최초로 황제를 칭한 군주이다. 그리고 고대에 가장 명실상부한 천고일제(千古一帝)이기도 하다. 진시황과 같이 역사의 정상에 선 인물에 대하여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수도 .. 2019.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