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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왕의난3

우계마후(牛繼馬後): 사마예(司馬睿)는 우예(牛睿)였을까? 글: 사해심진(史海尋珍) 서진(西晋)이 세워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황족들간에 대규모 내전이 발생한다. 역사에서는 "팔왕의 난(八王之亂)"이라고 부른다. 거듭되는 혼전속에 동한말기이래 원래 심각하게 손상입은 국력이 더욱 소모된다. 북방이 머물던 유목민족은 그 기회를 틈타 남하하여 중원을 차지하고자 한다. 사마예는 세가대족(世家大族)의 보호하에, 남방의 건업(建鄴, 지금의 남경)으로 내려가 동진(東晋)을 세운다. 다만, 사마예의 즉위에 대하여는 말들이 많았다. 그중 중요한 하나의 원인은 바로 그가 사마씨(司馬氏)의 후손이 아니고, 우씨(牛氏)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이 소문은 "우계마후(牛繼馬後)"로 불린다. 그렇다면, "우계마후"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나서 전파된 것일까? 우리는 먼저 시간을 삼국시대 후기로.. 2022. 10. 6.
[황자쟁위술] 차도살인술(借刀殺人術) 승기타겁패(乘機打劫牌) 사마륜편 진혜제 사마충은 백치로 황위에 오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방에서 병력을 지니고 있는 숙부, 백부, 형제들은 그를 눈아래 두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하나같이 세력을 키워서 암중으로 유사시를 대비하지만, 구실을 잡지 못하여 함부로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함부.. 2015. 11. 1.
진무제(晋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세가지 정치적 실수 글: 황작비비(黃雀飛飛) 265년 8월, 사마소(司馬昭)가 병사한다. 아들 사마염이 부친의 자리를 이어 상국(相國), 진왕(晋王)에 오른다. 이 해에 그의 나이 겨우 19살이었다. 십이월, 사마염은 위나라의 황제 조환(曹奐)이 물러나서 선양하도록 강제하고, 스스로 등극하여 진(晋)왕조를 개창한.. 2013.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