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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258

제갈량은 왜 위연을 싫어했을까? 글: 조단양(趙丹陽) 육출기산(六出祁山)하면서 영토는 조금도 얻지 못한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피로와 수치가 겹치면서, 병세가 침중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하직할 때, 장사(長史) 양의(楊儀), 장군 위연에게 여러가지로 해석가능한 정치적 유언을 남긴다. 이 유언은 양의가 보기에 자신.. 2015. 2. 12.
교사(校事): 조조 신변의 '특무' 기구 글: 문방장궤(文房掌櫃) 몇년전, 영화 <금의위>가 상영된 후,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대명왕조가 '특무기구'가 가장 많고, 특무가 가장 창궐하고 사회가 가장 어두웠던 시대라고 여긴다. 주원장은 '특무'를 이용하여 비밀리에 정보를 획득하고, 관리와 백성을 감시하는 선하(先河).. 2015. 2. 10.
유비는 왜 관우에게 작위를 주지 않았을까? 글: 생활문적(生活文摘) 고대의 제왕들은 인심을 얻고, 심복의 충성심을 얻어내고, 위엄을 보이고, 은총을 보여주기 위하여 왕왕 가관(加官), 진작(晋爵), 봉후(封侯)등등을 유효한 수단으로 자주 쓴다. <삼국지.촉지>를 뒤적여 보면 알 수 있다. 유비의 서촉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을 .. 2015. 2. 10.
조조는 동탁을 암살하지 않았다. 글: 불감왕언(不敢枉言) <삼국연의>에 조조가 동탁을 암살하는 장면이 있다. 당시 동탁이 권력을 농단하고 있어서, 사도 왕윤이 신하들을 불러모아놓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돌연 조조가 박수를 치며 크게 웃는다. "조정의 공경들이 밤부터 낮까지 곡을 하고, 낮에서 밤까지 곡을 하.. 2015. 2. 10.
3건의 사례로 본 제갈량의 "법치" 글: 호각조(胡覺照) 제갈량의 치국에 대하여 자고이래로 평가가 아주 높다. 진수는 <삼국지.제갈량전>에서 이렇게 썼다: "개성심(開城心), 포공도(布公道), 충성을 다하고 이로운 일을 한 자는 원수라도 반드시 상을 내렸고; 법을 어기도 태만히 한 자는 친하더라도 반드시 벌을 주었다.. 2015. 2. 10.
소년 제갈량은 조조의 손에 죽을 뻔했다 글: 유려평(劉黎平) 제갈량이 띠집(茅廬)을 떠나기 전에 조조와는 거의 만난적이 없는 것같다. 그러나, 소년시대에 제갈량의 목숨은 한때 조조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이는 한헌제 초평4년(193년)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 해, 조조의 부친 조숭(曹嵩)은 전란을 피해, 산동 낭야일대에 거.. 2015.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