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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5

하르빈의 몰락: 1000만클럽에서 탈락하다. 글: 독사(讀史) 얼마전 하르빈은 2021년도 전체시의 상주인구총수가 988.5만명이라고 발표했다. 1년전 제7차인구센서스때의 수치 1000.1만명과 비교하면 1년만에 하르빈은 12만명의 인구가 감소했다. 2020년때 중국의 천만인구도시는 모두 18개였다. 하르빈도 그 중의 하나였다. 2021년에 이르러 하르빈의 인구는 1000만이 무너져 1000만도시클럽에서 탈락하게 된다. 이제 동북(만주지방)에는 더 이상 천만의 대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무원이 비준하여 확정한 동북지구의 중요중심도시 하르빈은 동북에서 유라시아로 향하는 문호였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최근 나오는 ‘동북쇠락’의 목소리를 인증하는 것처럼 하르빈을 떠나는 것이 직면해야하는 어쩔 수 없는 객관적 현실이다. 1. 계속 떠나는 하르빈인구 중국.. 2022. 6. 6.
유태인들은 왜 중국 만주로 몰려들어왔을까? 글: 나일소(那日蘇) 유태인들의 상업적 두뇌는 사람들이 즐겨 얘기하는 주제이다. 과거 중국의 만주는 황량한 땅이라고 여겨졌었다. 유태인의 고향인 중동에서 만주까지는 거리가 수천킬로미터나 된다. 그러나 풍운이 휘몰아치던 근대에 머나먼 공간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유태인과 만주는 서로 얽히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실제로는 연원이 깊다. 19세기말부터 유태인들은 대량으로 중국의 만주지역으로 몰려든다. 그들은 자신의 장사수완을 가지고 만주지역에서 경제기적을 일궈낸다. 하르빈의 길거리에서 유태인들은 한때 상업의 80%를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이 땅에서 사라졌고, 지금은 유태인스타일의 건축과 묘지만이 옛 시절을 기억나게 해주고 있다. 만주의 근대역사는 기본적으로 종횡의 두 철도.. 2021. 4. 16.
1930년대 극동최고부호 유태인 하둔의 유산쟁탈전 글: 마장림(馬長林) 1931년 6월 20일, 상해 <신보(申報)>의 "본부신문(本埠新聞)>난에는 주목할만한 뉴스가 하나 실렸다: "애려원(愛儷園) 주인 하둔(Silas Aaron Hardoon, 중국명 哈同, 1851=1931. 6.19)이 어제 오후 5시 5분에 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83세이다. 그의 병은 천식으로 지난해 가을에 .. 2017. 8. 5.
만주에서의 일본군 매춘업내막: 일본에서 7만기녀를 수입하다 작자: 미상 20세기말, 한 중국의 역사학자는 자료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아말리도 비스파라는 이탈리아간첩이 1930년대에 쓴 자술서를 발견한다. 자술서는 상세하고 진실되게 그가 중국의 만주에 있는 동안 일본군을 위하여 일하고, 나중에는 중국항일유격대를 도와준 파란만장한 경력을 .. 2016. 1. 7.
유태인은 언제 중국으로 들어왔는가? 작자: 미상 유태인은 히브리인 또는 이스라엘인으로 불리며, 고대에 팔레스타인 일대에 거주했고, 이스라엘과 유대왕국을 건립한 바 있다. 나중에 여러가지 원인으로 세계각지를 유랑하게 된다. 중국고대의 개봉(開封), 양주(揚州), 영파(寧波), 항주(杭州), 광주(廣州) 및 하문(廈門)등지에도 유태인의 .. 2011.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