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래(周恩來)와 유소기(劉少奇)의 암중각축(暗中角逐)
글: 고문겸(高文謙) 1966년 8월 5일, 모택동은 에서 이상하리만치 격렬한 어조로 직접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유소기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반동의 부르조아계급입장에 서서, 부르조아계급독재를 실행하여,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거대한 문화대혁명운동을 탄압하고, 시비를 전도하고, 흑백을 혼동하며, 혁명파를 토벌하고, 다른 의견을 억누르며 백색공포를 실행하며 스스로 득의하며 부르조아계급의 위풍을 키우고,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뜻을 꺽었다. 어찌 그렇게 독하단 말인가?" 모택동은 글에서 1962년 조정시기의 소위 '우경'문제를 연결시켜, 기세등등하게 유소기와 최종대결을 벌이겠다는 자세를 취한다. 모택동의 이 글은 그후 전체회의에 인쇄되어 배부되어, 회의참석자들이 유소기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전체회의는 바로 ..
2023. 5. 18.
최후의 귀족: 강동벽(康同璧) 모녀의 인상 (1)
글: 장이화(章詒和) 강동벽(康同璧). 여, 자(字)는 문패(文佩). 호는 화만(華鬘), 광동 남해 사람. 1886년 2월생. 강유위(康有爲)의 차녀. 일찌기 미국유학을 떠남. 전후로 Radcliffe College와 Barnard College를 졸업했고, 졸업후 귀국한다. 만국부녀회 부회장, 산동도덕회 회장, 중국부녀회 회장을 지낸다. 일찌기 부작의(傅作義)가 소집한 화북7성참의회에 대표로 추천되고, 인민해방군과 북경을 평화적으로 해방하는 협상에 참여했다. 1951년 7월 중앙문사관 관원이 되고, 북경시 인민대표가 된다. 제2,3,4기 전국정협위원이었다. 1969년 8월 17일 병사하니, 향년 83세였다. ---에서 내가 학교에서 공부할 때, 동창중에 도시평민출신이 한명 있었는데, 그 시대에는 계급성..
2023.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