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격안(梃擊案): 암살음모인가? 자작극인가?
글: 사마이(駟馬已)
오늘은 명나라말기 삼대사건을 파헤쳐보기로 하자. 명사(明史)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명나라말기의 정치환경은 파휼운궤(波譎雲詭), 착종복잡(錯綜復雜)했다는 알고 있을 것이다. 만력제는 조회에 나오지 않고, 황태자는 돈후하며 연약했고, 정귀비는 기세등등했으며, 대신들을 당쟁을 벌였다. 황제, 귀비, 동림당(東林黨), 제당(齊黨), 절당(浙黨), 초당(楚黨)은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어서 만력제 말기에 이르러, 황위승계는 정치세력의 재편을 가져오게 되므로, 각방세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더욱 투쟁이 치열하게 진행된다. 이어서 역사상 유명한 명말 3대사건이 벌어진다. 오늘은 그 중에서 정격안을 파헤쳐보기로 한다.
먼저 보아야 할 점은 이 이야기가 발생한 시점이다. 명나라 만력43년(1615년)의 오월 초나흘이다. 이날, 황태자 주상락이 거처하는 자경궁(慈慶宮)의 궁문 밖에 돌연 나무몽둥이른 든 사내가 나타난다. 그 사내는 먼저 문을 지키고 있던 환관 이감(李鑒)을 때리고, 자경궁 안으로 뛰어들어가 보이는 사람마다 마구 때리며 소리쳤다. 마지막에 태자의 내시 한본용(韓本用)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전전(前殿)에서 이 미치광이같은 행동을 한 사내를 붙잡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조정은 완전히 뒤집어 진다. 이 일이 너무나 터무니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터무니없어서 사람들은 사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일개 사내가 경비가 삼엄한 황궁으로 들어오고, 게다가 황태자를 때려죽이려 하다니 그건 코미디와 같은 일이다. 다만, 사람들이 냉정을 되찾은 다음 자세히 생각해보니 등에 식은 땀이 흐르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발생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배후의 인물은 찾아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는 우리가 이 사건이 발생한 원인과 결과 그리고 배후에 숨겨진 비밀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사건의 원인을 알아보려면 우리는 시간을 29년전의 만력14년으로 되돌려야 한다. 이 해에 만력제의 총비 정귀비(鄭貴妃)는 셋째 황자를 낳았고, 이름을 주상순(朱常洵)으로 짓는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명나라의 황위승계제도는 적장자계승제(嫡長子繼承制)였다. 적자가 있으면 적자를 황태자로 세우고, 적자가 없으면 장자를 황태자로 세운다. 만력제의 왕황후(王皇后)는 아들을 낳지 못했으므로, 황장자를 황태자로 세워야 했다. 만력제의 황장자는 만력10년에 태어난 주상락(朱常洛)이다. 그의 생모는 왕씨성의 궁녀이다. 뒤에 이어진 이야기를 보면,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궁녀는 만력제의 총애를 받지 못했고, 어린 주상락은 만력제의 눈에 별로 예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만력제는 그를 황태자로 세울 생각이 없었다. 이때의 만력제는 한창 나이였고, 황장자도 아직 어렸다. 조정신하들은 비록 의견이 있기는 했지만, 그다지 크게 우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황삼자 주상순의 탄생은 이런 평정을 깨트려버린다. 왜냐하면 만력제가 황삼자 주상순을 황태자로 세우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폐장입유(廢長立幼)하는 일을 조정신하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만력제는 그런 상황에 직면하여 취한 조치는 매우 간단하고, 직접적이며, 거친 것이었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다.(기실 그렇다고 전혀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큰 일은 관장했다. 다만 조회에 나가지 않을 뿐이었다) 이렇게 하여 황제와 대신들은 황태자를 세우는 일을 놓고 대치하기 시작한다. 만력29년까지. 이때 황장자 주상락은 이미 20살이 되었다. 만력제는 도저히 더 이상 시간을 끌 수가 없게 되자, 주상락을 황태자로 책봉하고, 황삼자 주상순을 복왕(福王)으로 하여 낙양(洛陽)을 봉지로 한다.
이치대로라면, 이 일은 이렇게 끝났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알고 있다. 명나라는 명성조가 정난지역(靖難之役)을 일으킨 이래 번왕(藩王)에 대해 경계심이 매우 강했다. 번왕에 봉해지면, 즉시 북경을 떠나 봉지로 가야 한다. 그리고 조서를 받지 않으면 함부로 봉지를 떠나지 못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반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복왕은 책봉된 후에도 정귀비의 뜻에 따라 봉지인 낙양으로 가지 않고 계속하여 북경에 머무르고 있었다. 만력제도 이런 상황을 보고도 못본척하고 있었다. 만력제의 이런 태도는 대신들을 자극했다. 이건 분명 태자의 자리를 노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비록 황태자를 이미 책립하였지만, 쌍방간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쌍방의 투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조정신하들은 명정언순(名正言順), 이직기장(理直氣壯)하게 황태자의 편에 섰다. 이렇게 대신들은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한다는 숭고한 이상을 가지고 황제와 계속 싸운다. 국본지쟁(國本之爭)은 여전히 시끄럽게 진행되었고, 여전히 명나라조정의 국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만력43년이 되었다. 이때 쌍방의 갈등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최고조에 달해 있었따. 정격안이 바로 이러한 때에 발생한 것이다.
사건발생후, 만력제는 즉시 심문을 진행하도록 명한다. 순성어사(巡城御史) 유정원(劉廷元, 절당의 구성원이다)이 심문하여, 이 사내의 이름이 장차(張差)이며, 계주(薊州) 정아욕(井兒峪) 사람이고, 말에 두서가 없어 보기에 미치광이 같았다. 미치광이라면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미치광이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희한할 것이 없으니까. 유정원은 그렇게 만력제에게 보고한다. 이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세상일은 왕왕 마음먹은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유정원 어사와 만력제는 큰 사건을 작은 사건으로 만들고, 다시 작은 사건은 없는 사건으로 만들려 했지만, 대신들은 그렇지 않았다. 웃기지 말라. 미치광이라고? 미치광이가 어떻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몽둥이를 들고 자금성으로 뛰어든 단 말인가? 미치광이가 어떻게 문을 지키는 수위에게 들키지 않고 우회하여, 하필이면 황태자가 거주하는 침궁으로 갔단 말인가? 그리하여, 유어사의 보고서가 올라가자마자, 대신들은 크게 반발한다. 만력제는 이렇게 사건을 눌러둘 수는 없겠다고 여겨서, 다시 형부로 하여금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명한다.
이번에 심문한 사람은 형부의 두 낭중(郞中)이었다. 한명은 호사상(胡士相, 절당의 구성원이다)과 악준성(岳駿聲, 절당의 구성원이다)이었다. 이 두 사람이 반나절 심문하고나서 이 일은 수상하다고 여긴다. 범인 장차도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다만 재미있는 점은 이 두 사람이 진상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계속하여 큰 사건은 작은 사건으로, 작은 사건은 없는 사건으로 만들어 그저 장차를 사형에 처할 생각이었다. 이런 결과를 내놓으면 세상은 이제 조용해 질 터였다. 왜냐하면 보통사람이라면 두 차례의 심문결과가 일치하게 되면, 그건 사실이라고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총명한 사람이라면 혹시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믿는 척하게 될 것이다. 다만, 역시 세상의 일은 사람들이 마음먹은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래서, 총명하면서, 믿는 척하지 않으려는 인물이 나타난다.
사건이 그렇게 마무리지어지려 할 때, 형부에 재직하는 하급관리가 인물이 일을 벌인다. 이름은 왕지채(王之寀)이다. 그는 형부주사(刑部主事)라는 하급관리이다. 그는 총명하면서도 모른 척 넘어가지 않으려는 그런 인물이다. 그에게는 또 다른 신분이 있었다. 바로 동림당(東林黨)이다. 그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그는 장차에게 딱 한 마디만 했고, 그랬더니 장차는 사실을 실토한다. 그럼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장차가 사실대로 진술하게 되었을까? 답은 바로, "사실대로 불면 밥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굶어죽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더 이상 간단할 수 없는 한 마디 말에 따라, 사실을 모두 불었다고? 만일 여기에 음모가 없다고 말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혹시 그 말이 암호였을까? 이전의 심문때는 암호가 들어맞지 않았기때문에 미친 척했던 것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 사전에 정한 암호가 들어맞으니 쓸데없는 소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직접 사실을 분 것일까?
그럼 장차가 얘기한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장차의 진술에 따르면, 배후에서 기획하고 지시한 사람은 궁안에 사는 두 사람의 공공(公公)인데, 그 두 명의 공공은 방공공(龐公公)과 유공공(劉公公)이다. 그리고 방공공과 유공공은 모두 정귀비의 밑에서 일하는 환관들이다. 그렇다. 이게 바로 사실이다. 기실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었다. 단지 아무도 감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을 뿐이다. 정귀비가 황태자의 자리를 노린지 수십년되었고, 이 일은 누구든지 정귀비가 뒤에서 장난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정귀비가 설마 그렇게 멍청하단 말인가? 아무런 무기도 지니지 않는 보통사람을 보내어 태자를 죽이려고 했단 말인가. 차라리 무공이 고강한 사람을 찾거나, 날카로운 무기라도 쥐어주든지 그것도 안되면 과도를 주더라도 나무몽동이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 아닌가." 이렇게 의심하는 것도 정상적이다. 일반적으로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멍청하게 하지 않을테니까. 다만 정귀비는 수십년간 '쟁국본'하면서 보여준 태도는 전형적인 봉건사회의 부녀자 이미지이다. 글이라고는 읽어본 적이 없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울고, 행패부리고, 목을 매어 죽겠다고 하는 삼단계이다. 기실 이것이야말로 사실에 부합한다. 요즘 유행하는 TV드라마처럼 궁안의 사람들이 모두 음모궤계에 뛰어나고 수단방법을 모두 쓸 줄 아는 사람이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황태자 주상락은 계속 만력제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가 거주하는 자경궁에는 수위가 없을 뿐아니라, 젊은 환관도 없었다. 그저 늙고 병약한 환관들만 배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귀비가 그런 일을 벌였다고 해도 아무렇게나 한 것이 아니고, 성공할 가능성이 상당히 큰 것이었다.
왕지채가 "심문"을 통해 진상을 파악한 후, 감히 태만하지 못하고 즉시 만력제에게 보고한다. 그러나 왕지채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는 만력제의 상황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만력제에게 보고하는 동시에 부본을 만들어 도처에 뿌렸다. 그리하여 금방 여론이 들끓게 된다. 방법이 없었다. 사건은 다시 심리하라고 할 수밖에. 이번에 형부에서는 7명이 공동으로 심문했다. 대부대를 동원한 셈이다. 그중 주심관(主審官)은 육몽룡(陸夢龍, 동림당의 구성원이다)이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나머지 6명중에 이전에 심문에 참여했던 호사상(절당의 구성원)과 왕지채(동림당의 구성원)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자기사람'이 심문을 하니 심문은 매우 순조로웠다. 장차는 이전에 왕지채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한번 반복하여 진술한다. 다만 동림당은 절당의 실력을 과소평가했다. 비록 심문관리들 중에 3명이 동림당원이었지만, 그들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은 나머지 4명이 모두 절당의 구성원이라는 점이다. 혹은 나머지 4명의 견해는 완전히 일치했다. 그래서 4:3으로 심문은 종결된다.
궁밖에서 장차를 심문하는 동시에, 궁안에서는 정귀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매일 만력제에게 찾아가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다만 이때 사건의 진행은 이미 만력제가 누르려고 해도 누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정귀비에게 말한다: "오직 황태자가 나서야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 수십년간 미워하고, 수십년간 싸워왔고, 수십년간 대립해왔지만, 정귀비는 "가질 수 있는 것은 버릴 수도 있다!"는 이치를 매우 잘 깨닫고 있었다. 그녀는 황태자의 침궁으로 찾아가서 두 말 하지 않고 즉시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울면서 말한다: "나는 정말 너를 해칠 생각이 없다. 이건 모두 오해이다!" 황태자가 비록 돈후하지만, 어쨌든 궁안에서 수십년을 살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알았다. 마음 속으로 이번에 정귀비가 와서 눈물로 호소하는 것은 부황의 뜻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빠르게 반응한다. 정귀비가 무릎을 꿇는 것을 보자, 자신도 즉시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아주 슬픈 얼굴을 하고, 말한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 일은 장차 혼자서 한 일입니다. 당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서로 연기를 너무나 잘했다. 그러나 그래도 일은 해결되었다.
만력제는 황태자의 태도를 보고 크게 기뻐한다. 그리하여 즉시 대신들을 소집한다. 대신들 앞에서, 만력제와 태자는 부자자효(父慈子孝)의 2인극을 연기한다. 만력제가 말한다: "여러분들도 보라. 짐과 태자는 관계가 아주 좋다. 이전에 짐이 태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말은 모두 유언비어이다. 이 일은 장차 혼자서 한 일이다. 무고한 사람들까지 연루시킬 필요가 없다!" 태자도 적절하게 말을 한다: "너희는 더 이상 시끄럽게 굴지 말라. 내가 보기에 이 일은 장차 혼자서 한 일이다. 너희는 나와 부황의 부자관계를 이간질하지 말라!" 대신들은 황태자(피해자)가 이렇게 말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하루가 지난 다음에 장차는 능치처참된다. 십여일후, 장차가 진술했던 방공공과 유공공도 신비스럽게 형부감옥에서 사망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정격안은 이렇게 끝이 난다.
결론: 정격안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귀비가 황태자의 자리를 노리기 위해 저지른 정치적 암살극이다. 그러나 배후에는 동림당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진행한 싸움이 있다. 그렇다면 동림당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사건을 분석해보면 두 가지이다:
- 정격안을 빌미로 정귀비를 타격하고, 황태자의 지위를 공고히 하여, 미래를 준비한다;
- 정격안을 빌미로 반배파를 공격하여, 조정대권을 장악한다.
사건의 결과를 보면, 위의 첫째 목적은 아주 잘 달성되었다. 둘째 목적은 확실히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두번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하여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이때는 이미 만력43년으로, 그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모르고 있던 것이라면, 그들이 고심하여 얻어낸 결과는 오는 것도 빨랐지만, 가는 것도 빨랐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즉, 위충현)의 굴기때문이다.